어른들의 너스레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다.
과한 웃음,
필요 이상으로 친근한 말투,
그리고 농담을 가장한 선제적 완충 멘트.
“아~ 이거 좀 그렇지? 내가 눈치가 좀 없어서 하하.”
겉으로 보면 부드럽고 꽤나 유쾌해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 난다.
감정의 실제 값과 표현 값이 맞지 않을 때 생기는,
그 미묘한 불협화음.
그래서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너스레를 싫어하는 건가?
아닌 것 같다. 정확히는, ‘가벼움으로 상황을 정리하려는 방식’이 불편하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너스레라는 건 꽤 기능적인 언어다. 불편한 감정을 가볍게 처리하는 동시에, 대화의 흐름까지 먼저 정리해버리는 방식.
어색함은 농담으로,
긴장은 웃음으로,
미묘한 관계의 호흡은 친한 척으로 덮는다.
분위기를 먼저 잡는다.
불편한 질문은 웃음으로 봉인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항상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둔다.
“농담인데 왜 그래?”
겉으로는 가볍고 무해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미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상황은 가볍게 지나가는 걸로 하자.”
나는 그 방식이 불편하다.
관계는 수평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감정의 흐름 역시 누가 먼저 규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있어도 되고, 긴장은 긴장인 채로 존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스레는 나에게 이렇게 들린다.
“같이 직면해보자”가 아니라
“이 상황, 대충 넘어가자.”
이 차이를 모른 척하고 지나치기는 어렵다.
가끔은 스스로를 의심해보기도 한다.
내가 예민한 건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단순히 예민함의 문제라기보단 추구하는 대화의 결이 다른 쪽에 가깝다.
나는 가볍게 퉁치는 언어를 신뢰하지 않는 편이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감정을 그대로 두려는 쪽이다. 그래서 너스레가 ‘유머’가 아니라 어딘가 감정을 흐리게 만드는 방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모든 너스레가 악의적인 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불안을 버티는 방식일 수도 있고, 갈등을 피하기 위한 나름의 예의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불편한 감정은 인정하되, 사람 자체를 단정하지는 말 것.
너스레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너스레를 쓰는 사람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으니까.
어쩌면 어른들의 너스레가 불편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내가 기대하는 관계에서의 감정이 조금 더 정직한 쪽에 가까워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