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아민 Jul 15. 2022

극 현실주의 남편, 극 이상주의 아내

나를 지키는 힘은 이상한 상상이다.

"어떻게 고민조차 안 할 수 있어?"

"하, 그런 고민을 왜 하는 거야?"


우리가 자주 싸우는 원인이다. 남편은 극 현실주의자, 나는 극 이상주의자.


나는 간혹 미칠듯한 불안에 휩싸인다.

가만히 소파에 앉아 혼자 떠들어대는 TV를 습관처럼 틀어놓고 스마트폰을 가로로 눕혀 게임에 몰두하는

남편을 보며 난 무서워질 때가 있다.

사랑하는 남편을 보며 무섭 다라... 처음엔 그 이상한 생각이 드는 이유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이상한 생각이다. 답이 없는 그저 내가 갖는 '이상한'... 상상.





나는 연애할 때 그때는 남자 친구였던 남편에게 '이상한'말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나 예민해서 위나 장이나 안 좋아. 라섹수술도 해서 각막도 얇고 팔 수 있는 거 없어."


처음 그와 조금은 멀리, 하지만 2시간 이내인 곳으로 여행을 갈 때 했던 말이다.

남편의 차를 타고 큰 도로를 지나 인적이 조금씩 줄어들고 산길을 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내가 했던

'이상한' 상상은 그가 장기밀매업자에게 날 팔아먹는 것이다.


"술 안 좋아하니까 간은 좋겠네."


연애전부터 나의 이상함을 밝히고 시작했기에 나의 이상한 말에도 쉽게 받아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진짜로 산 중턱 어딘가에 차를 세우고 봉고차에서 무기를 든 덩치 좋은 폭력배들이 나를 향해 입맛을 다시며 오지 않을까 겁을 먹었었다. 그래서 들고 있던 가방을 손에 꽉 쥐고 언제든 튀거나 달려들 준비를 했던 것 같다.


그런 상상이 무색하게 산 중턱을 넘어 차는 내려가고 있었고 조금씩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TV에 한 번 나왔던 예스러움을 체험할 수 있는,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여하튼 볼거리가 가득한 곳에 도착했다. 난 또 한 번 '이상한'상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렇게 나 믿게 만들어서 어느 순간 기절시키는 거 아니지?"


예스러움을 좋아하는 남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멈칫하며 나를 돌아봤다.

대충 아마 '적당히 해라.'라는 느낌이었다.


주말이라 차가 밀릴 것을 걱정해 일찍부터 출발했던 우리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라 배가 많이 고팠고, 남편이 미리 찾아둔 맛집으로 향했다. 아! 그리고 이건 남편한테는 꺼내지 못했던 의심이었는데,


'방향제에 마취시키는 물질이 있는 건 아니겠지?'


이것까지 말하면 진짜 '이상한'사람 취급받고 만난 지 한 달도 안돼 차일까 봐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식당에 가면 다 먹고 나가기 전까지 화장실은 잘 가지 않는다.

왜냐면, 혹시나 내가 먹을 음식이나 물에 약이라도 타지 않을까? 의심해서다.

생각해보니, 남편과 처음 갔던 카페도 내가 사고 내가 가져왔던 것 같다.

혹시 가져오는 길에 약 탈까 봐.


여기까지 보면 남편은 나랑 왜 결혼했나 싶기도 하다.




난 여전히 남편을 의심하고 있다.

1년이 지나면, 혹시 '이제 시간이 됐으니 슬슬 작업을 준비해볼까?'라며 자고 있는 사이에 날 팔아넘기지 않을까? 모르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신호하면 나와서 날 때려눕히지 않을까?라는. 그런 이상한.


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소파에 누워 고단했던 하루를 폰 게임으로 풀고 있는 남편에게 갖가지 '이상한' 상상으로 내가 그를 온전히 믿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다.


"내가 오빠랑 혼인신고하면 뭐 받을 수 있는 거라도 있어? 뭐 보험금이라던가 그런 거?"


또 시작된 나의 피해자 놀이에 조금은 귀찮아졌는지 고개는 그대로 둔 채 눈동자만 나에게 고정하고 대답한다.


"들어놓은 보험이라도 있어야 그런 계획을 짜지."


하긴, 내가 결혼 당시 들어놓은 보험이라곤 3천만 원짜리 암보험이 전부이긴 하다.


남편은 극 현실주의지만 난 편집성 성격장애의 형태를 띤 극 이상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