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인 글쓰기
요새 내 흥미를 끌고 있는 건 웹소설이다.
하루에도 몇 화씩 읽고 있고, 또 1화씩 쓰고 있다.
결혼 후 계속 직장을 다니다가 아기를 원하는 양쪽 부모님과 살림에 집중해줬으면 하는 남편의 바람으로 올해 2월에 그만뒀다. 직장에 큰 미련은 없다. 매일 처음 보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이참에 잘됐다 싶었다.
단지 그리운 건 퇴근 후 동료와 나눴던 술 한잔과 돈 걱정하지 않고 정했던 회사 회식 메뉴 정도?
일을 관두고 3개월 동안은 불안감에 허우적거렸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낙오되는 기분이었고 매일 눈뜨자마자 드는 생각은 '오늘은 뭐하지?'였다.
너무 괴로웠다.
폭주기관차처럼 매일을 달려왔던 나에게 쉼이란 '공허'그 자체였다. 집은 또 왜 이렇게 넓은지.
5평 내외에서 안정감 있게 살던 내가 결혼 후 27평대로 이사와 혼자 집에 있으니 주인 없는 낯선 곳에 버려진 강아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울감이 나를 시도 때도 없이 덮쳐와 남편 모르게 눈물을 훔친 적이 꽤 많다.
아무리 나를 이해한다고 해도 직접 겪지 못하면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한동안은 매일 같은 시간에 청소하고 남편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었다.
냉장고에는 항상 음식으로 그득그득 채웠다.
하지만, 좋아하는 음식 외엔 손도 대지 않는 남편에겐 내 노력은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쉬어 터지는 음식들은 음식물쓰레기가 되었고 난 그것들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효율적이지 않은 시간들이 그곳에 함께 버려졌다.
울적하고 우울한 마음에 직장동료들을 만났다. 결혼 후 1년간 쉬고 다시 일을 시작한 동료가 있어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그들을 만나 술 한잔씩 기울이며 퇴사 후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었다.
역시 제3자의 입장으로 일 얘기를 들을 때는 재밌다. 그렇다고 다시 그곳에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불면증이 생겼고 매일 두통이 찾아와 약을 먹지 않으면 못 견뎠으니까.
"쌤은 집에 있을 때 뭐하셨어요?"
세 명이서 소주 한 병을 겨우 비워냈을 때 나는 물었다. 그녀는 나의 물음에 말없이 씁쓸하게 웃었다.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이 자리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것처럼. 우습게도 눈앞의 조명들이 일렁였다.
"쌤이 우리 부를 때 의아했는데 왠지 알겠네."
"그러니까요."
소주잔을 검지와 엄지 끝으로 잡아 빙글빙글 돌리면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르려고 했다.
호기롭게 뛰쳐나가서는 얼마 못가 이런 꼴이라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나는 좀 걱정했어요 쌤. 출근한 순간부터 퇴근할 때까지 쉬지도 않고 일하던 쌤이 퇴직하면 그 공허함을 어떻게 견딜까 싶었어요."
그래, 공허함이 문제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공허함. 쉬는 게 두렵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그래서 조언 좀 듣고 싶어요. 쌤도 일중독이시잖아요. 쉬실 때 뭐하셨어요?"
"나는 솔직히 쌤 같은 일중독은 아니었어요. 쉬는 게 제일 좋았다에 속하는 편이죠. 지금도 돈 벌어야 해서 일하는 거지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에요."
"아..."
"근데 나는 쉴 때 매일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남편 출근시키고 나면 누워서 영화도 보고 웹툰도 보고 아이돌 영상도 찾아보고 난 하루가 금방 가더라고?"
나는 뭘 했더라. 음... 일어나서 침구 정리하고 환기시키고 청소기 돌리고 선반에 쌓인 먼지 털어내고...
겨우 오전 10시였다. 재미없었다.
"쌤 저번에 해보고 싶은 거 있다 하지 않았어요? 그래, 글 쓰고 싶다며!"
"맞다 맞다. 대표님한테도 교육 보고서 소감문 잘 썼다고 칭찬받았잖아요."
그래, 글 쓰는 거. 내 오랜 숙원이기도 했다.
"쌤은 웹소설을 한번 봐봐요."
"웹소설이요?"
"옛날에 그 인터넷 소설! 그런 느낌이에요. 약간 유치한데 또 시간은 잘 가."
"아, 보라고요?"
"보다가 필 꽂히면 써보는 것도 좋고."
"에이 저는 소설은 못써요. 제 이야기 쓰는 건 좋아하는데... 보지도 않고 경험도 안 한 이야기를 어떻게 써요."
"그러니까 허구지! 웹소설도 보면 막 거창하지는 않던데? 술술 잘 읽히면 됐지 뭘 더 바라."
중학생 때 인터넷 소설을 즐겨보긴 했다. 아마 그맘때 나온 인기작들은 대부분 영화화된 걸로 알고 있다.
나는 팬픽을 좋아했다. 얼굴도 모르는 소설의 주인공들보다는 현재 활동하는 가수들이 등장하는 게 좋았다.
나도 팬픽을 올리는 사이트에 몇 회분을 적어 올리기도 했다. 그것도 현타가 와서 때려치우긴 했지만.
집으로 돌아와 웹소설에 대해 찾아봤다. 인터넷 소설과 같은 느낌이었다.
광고로 많이 봤던 카카오페이지 웹소설란에서 표지가 예쁜 걸로 눌렀다.
까만 글씨들이 액정을 가득 채웠다.
와, 눈 아파.
첫 느낌이었다.
소설은 컴퓨터나 책으로만 봤는데 이렇게 폰으로 보니 10분도 못 가 폰을 덮었다.
눈이 심하게 피로했다.
다음날에 밝기를 줄이고 블루라이트 차단 모드를 설정하고 다시 봤다.
초반 3~5회 무료로 푸는 회차만 찾아 읽었다. 아직은 돈을 내면서까지 보고 싶지 않았다.
읽다 보니 문체나 분위기, 주인공 캐릭터가 마음에 쏙 드는 웹소설도 있었다.
재미있어지려고 할 때 유료 전환 결제창이 떴다.
"아... 결제를 해야 하나?"
일벌레 습성이 여기서도 나온다. 광고 보기, 앱다운, 카드 포인트 모으기 등등 최대한 할 수 있을 만큼 캐시를 모아 소장권을 구매했다.
"하, 어이가 없네. 벌써 남편 퇴근시간이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 채 웹소설에 빠져들었다. 눈은 피로했지만 재밌었다.
소설 속 세상에 빠져들어 주인공의 감정을 함께 느끼며 따라갔다.
"아..."
문득 고등학생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문예창작학과를 가고 싶었다. 글 쓰는 게 너무 좋았다.
내가 만든 세상 속에 내가 만든 캐릭터들과 내가 생각한 대로 사건을 만들어가는 게 흥미롭고 짜릿했다.
소설 속 세상에 있을 때면 어둡고 불안한 내 마음이 진정됐었다.
하지만, 글쟁이는 가난하다는 부모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원하는 학과로 진학했다.
소감문이나 주제에 대한 생각을 쓰는 과제는 언제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시험을 망쳐도 과제 점수로 A를 받기도 했으니까.
복지 쪽 일을 하면서 간간히 주간지나 월간지를 발간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다.
그 달의 행사나 뒷이야기를 몇 안 되는 페이지에 구성하고 간간히 내 생각이나 인터뷰 내용을 편집해 발간하면 그게 또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수많은 일들 중 그런 일들만 머릿속에 남아있다. 기획하고 구성하는 건 힘들었어도 내 생각대로 편집하고 내놓으면 그걸 읽는 사람들이 웃거나, 다음 월간지를 기대한다는 피드백이 올 때, 가끔 행복하다는 생각도 했다.
결국, 나는 글을 써야 행복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학창 시절처럼 기발하고 창의적인 문장보단 공문서에 특화된 문체만 남아있어도 그거야 다시 바꾸면 될 일이다. 아직은 내 글에서 딱딱한 느낌이 많이 난다. 쓰는 단어들도 사실적인 표현에 국한되어있다.
그래도, 계속 쓰다 보면, 쓰고 쓰고 또 쓰다 보면 먹고사는데 찌들었던 그때보다는 나다운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요새 글감을 찾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변 곳곳에 널린 게 소재라고는 하지만 내면화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웹소설도 쓰고 있다. 아직은 부끄러워 연재란에 올리지는 못하지만,
어느 날 밤 아니면 새벽녘의 그 분위기 취해 '에라이!' 하고 올려버릴지도 모른다.
그 용기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