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아민 Aug 28. 2022

눈물의 집들이

'내가 그렇게 잘 못한 건가? 난 그냥 오빠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불똥이 나한테로 튀는 거지? 나는, 나는...'

그날, 나는 밤새 울었다.




결혼 후 한 달쯤 되었을 때 집들이 겸 시댁분들을 모시기로 했다.


결혼 준비와 신혼여행의 여파로 사무실 책상에는 일이 한가득이었고 미뤄둔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야근과 주말근무도 감행했다. 눈코 뜰 새 없는 강행군이라 솔직히 집들이도 미루고 싶었다.

내 바람은 무색하게 남편과 시댁 식구들은 집들이 약속을 잡았다. 시어머님이 식당을 운영하고 계셨기에 토요일은 피해야 했고 주야로 일하는 남편 때문에 주간 근무 주인 일요일로 잡아야 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를 생각했다. 자취를 꽤 오래 했기에 간단한 요리는 할 수 있었지만, 간단히 적은 양을 만들어 배만 채우는 요리만 해왔기에 고심스러웠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아셨는지 시부모님은 대게를 쪄갈 테니 음식은 신경 쓰지 말고 다과만 준비하라고 하셨다. 나는 다행이라고 느꼈던 반면에 뭔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누군가를 집에 들이는 일이 처음이었다. 나만의 공간에 누군가 들어오는 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기에 자취할 때도 친구 한 번을 데려온 적이 없었다. 물론, 남편을 제외하고.


남편은 시부모님과 시누이 내외를 데리러 갔다. 난 그 사이에 입맛이 까다로운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위해 그들이 좋아할 만한 과일과 다과를 구매하고 온 집안을 구석구석 쓸고 닦았다. 남편에게서 오후 2시쯤 도착할 것 같다는 톡이 왔다.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나는 다시 한번 집안을 돌아다니며 그새 가라앉은 먼지를 손으로 슥슥 닦아냈다.


베란다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베란다로 얼른 뛰어가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쳐다봤다. 아파트 입구에서 시부모님과 시누이 내외가 주변을 둘러보며 대화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나의 답 없는 고민들이 시작됐다.


첫 번째 고민은,

'잠깐, 내려가야 하나? 그럼 문은 어떻게 하지? 열고 내려가기엔 누가 침입하면? 그럼 현관문 앞에 서 있어야 하나? 그래. 그게 좋겠다.'


나는 현관문을 활짝 열고 그 앞에 서있었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와 활어처럼 펄떡거리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2층 3층으로... 점점 올라와 '띵'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나는 몸을 퍼드덕하며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응. 들어가자!"


눈앞으로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와 검은 봉투들이 재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선 생각 후 행동 타입이라 모든 것이 빠르게 느껴졌다. 눈앞에 짐들이 보이자마자 손을 뻗었지만 이미 시부모님과 누나 내외는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움에 눈을 껌벅거리다 문을 닫고 제일 뒤에서 신발을 정리하고 들어갔다.


두 번째 고민이 시작됐다.

'차를 내드려야 하나? 집을 구경시켜드려야 하나?'


"저, 마실 거라도.. 아니면 집을 구경.."


내 목소리가 작았던가보다. 시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TV를 트셨고,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베란다로 가 밖을 내다보며 중얼중얼거렸다. 나는 뻘쭘하게 부엌에 서서 음료수를 꺼내놓고 발만 동동 굴렀다. 나는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커피라도 드릴까요? 아니면..."

"커피는 무슨! 디저트는 밥 먹고 먹는 거다~"


시어머니는 나를 스쳐 큰방으로 들어가셨고 가구 색깔과 배치를 보며 샐쭉거리셨다.


나는 커다란 시티로폼 앞에서 머뭇거렸다.


세 번째 고민이었다.

'이거 지금 까도 되나? 찜솥도 가져오신 것 같은데 불에 올려야 하는 건가?'


"저, 이거 깔까.."


방을 대충 둘러보셨는지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나를 지나쳐 싱크대부터 부엌 전반을 스윽 둘러보더니 말했다.


"생각보다 깨끗한데?"

"무슨, 우리 온다고 하니까 청소했나 보지."


처음 말은 시누이였고 두 번째 말은 시어머니였다. 나는 울컥했다.


"오빠가 더러운 거 싫어해서 매일 청소해요. 어머니."


시누이의 눈이 꿈틀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어머니는 입꼬리를 양쪽으로 삐쭉거리며 입을 모아 내밀기를 반복했다. 나는 점점 숨이 막혀왔다.


"아민아 필중이는 주차하고 올라온다고 했다."


시누이는 현관 입구를 힐끔거리는 나를 봤는지 말했다. 시어머니는 누나를 거실로 떠밀더니 사람이 많으면 정신이 상그라우니 가서 앉아있으라 말했다. 나는 시어머니 옆에 바싹 붙어 행동을 예의 주시했다.


"가위 좀 가온나."


스티로폼 박스의 테이프를 떼실모양이었다. 나는 거실에서 커터칼을 가져와 박스를 빙 돌려 한번에 테이프를 끊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게 3마리와 조개 몇 개가 들어있었고 식었는지 비릿한 냄새가 확 풍겼다.


네 번째 고민이 시작됐다.

'내가 한다고 가서 앉으시라 해야 하나? 날 못 믿으실 텐데 어쩌지?'


"어머니 제가 할게요. 앉아 계세요."

"네가 할 줄은 아니?"


어머니는 찜통을 여시 더니 스티로폼 박스에서 대게를 꺼내 차례대로 담고 그 옆으로 조개도 끼워 넣었다.

나는 커다란 쟁반과 가위, 젓가락, 일회용 장갑을 꺼내 한 번에 갖고 가기 쉽게 준비했다.

TV를 보고 계시던 아버님이 대게가 쪄지는 냄새를 맡으셨는지 말씀하셨다.


"어이야, 이게 식탁이 가? 너무 작다. 커다란 상 갖고 온나."


나름 크다고 생각한 6인용 테이블 겸 식탁을 발로 스윽 미셨다.


"네? 아... 커다란 상은 없고..."


나는 재빨리 부엌 한편에 있는 4인용 갈색상을 들고 가 옆에 깔았다.


"아니! 이런 거 말고 다 같이 둘러앉을 수 있을만한 거 없나?"

"네..."

"앞으로 손님들도 많이 초대할낀데 큰 상 하나 사놔라!"

"네..."


그때 '삑삑 삑삑' 현관 비밀번호를 치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들어왔다. 가장 남편이 반가운 순간이었다.

남편은 상을 피며 쩔쩔매고 있는 나를 보더니 다가왔고 시아버지는 남편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없어요. 집에 손님도 안 오는데 큰상이 왜 필요해요."

"그래도 친구들도 초대하고 사촌들도 초대하고 하려면 사놔라."

"보고 필요하면 살게요."


나는 쭈뼛거리며 다시 부엌으로 갔다. 시어머니는 금세 데워진 대게를 큰 쟁반 위에 차곡차곡 쌓으셨다. 나는 껍데기를 담을 볼과 개인 접시들을 꺼내 도울 거 없는지 어슬렁거리며 오던 남편에게 건넸고 남편은 내가 꺼내놓은 집기들을 눈치껏 가져다 상위에 올렸다.


대강 다 차려졌다. 다들 상 주위로 모여 앉았고 나는 다섯 번째 고민을 했다.

'대게를 좀 손질해서 까놔야 하나? 손대는 거 싫어하진 않을까? 각자가 알아서 까먹는 문화인가..?'

나는 이런 고민을 하며 눈치를 살폈다.


"아민아 먹어라. 눈치 보지 말고. 네가 대게나 깔 줄 알겠나."


시어머니는 맛있게 깐 대게 다리 하나를 나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다행히 각자가 까먹는 문화인 것 같았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시어머니는 가위를 들어 대게 다리를 툭 툭 툭 자르고 있었고 대게를 먹던 내 손은 그대로 멈췄다. 나는 눈치를 보며 대게살을 발라 시어머님께 건넸다.


"드세요."

"니나 무라."


나는 머쓱해서 입술을 말아 깨물었고 천천히 식어가는 대게살을 입에 넣었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세 마리를 모두 먹어치웠던 것 같다. 몸통 살로 라면을 끓여들일까 했지만 배부르다며 거절하셨고 나는 다 먹은 껍질을 한 곳으로 모아 두고 얼른 부엌으로 가서 과일과 다과를 준비했다.


"커피 드릴까요?"

"그래~ 내 거랑 느 아부지 거랑 좀 타온나."


나는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찬장에서 믹스커피를 꺼내 도자기 컵에 털어 넣었다. 싱크대에는 설거지거리가 잔뜩 쌓였다. 한숨이 나왔다. 평소에는 요리는 내 담당 설거지는 남편 담당으로 정해놨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과일과 다과, 커피를 작은 쟁반에 받쳐 상위에 올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커피를 비워내셨다.

나는 시계를 곁눈질하며 울렁거리는 속을 가다듬었다.


"왜, 우리가 빨리 갔으면 좋겠나?"


시어머님은 장난반 진담반으로 방울토마토 하나를 입에 넣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어색하게 웃었고, 시누이는 시어머니의 옆구리를 찌르며 인상을 썼다.


"좀! 아민이 난감해한다이가. 장난치지 마라고."


시어머니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으셨다. 장난이었나 보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30분이 더 흘렀고 이제 정리하고 집에 가자는 시아버님의 호령으로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모두가 가시면 천천히 느긋하게 설거지를 해야지 생각했다. 아무래도 손이 느린 나는 스피드 하게 흐르는 그들의 행동에 맞출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행주로 상을 닦고 있을 때 부엌에서 약간은 화가 나신 말투로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어이고, 우리 아들이 설거지 하나?"


나는 고개를 획 돌려 부엌을 봤고, 시어머님은 삐딱하게 서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과 나를 번갈아보셨다.


"집에서도 내가 맨날 설거지했는데 뭐."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나는 '망했다...'라는 생각이 정수리에서 튀어나왔다. 시어머님은 한숨을 쉬며 한쪽에 치워뒀던 게 껍질을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으셨다.


"가정집에서 게 껍데기 치우는 거 힘들 테니까 내가 도로 가져간다. 나는 이제 갈란다."


남편은 설거지를 끝까지 마무리하고 수건에 손을 닦으며 차키를 집어 들었다. 나는 놔두고 가는 게 없으신지 한번 쭉 보고 밑에까지 배웅하기 위해 TV를 껐다.

슬리퍼를 신고 현관에 있는 짐을 들고나가니 남편이 손을 뻗어 내 손에 들린 짐을 뺏어 들고는 말했다.


"자기는 집에 있어. 집에 모셔다 드리고 올게."

"응? 으, 응. 어머님 아버님 안녕히 가세요!"


나는 90도에 가깝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턱, 닫히면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나의 마지막 고민이 시작됐다.

'어? 이대로 보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따라 내려가서 인사해야 하나? 어떻게 하지? 시어머님이 나 집에 있으라고 하셨나? 그러니까 그렇게 얘기했겠지?'


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하다 일단은 집으로 들어가 마저 정리하기로 했다.



데려다 드리고 집으로 오고 있다는 남편과의 통화 후 곧바로 시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우선, 잘 먹었습니다라고 하고 덕분에 편하게 집들이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해야지. 다음에 제대로 음식 해서 다시 초대하겠습니다라고도 해야겠다.'


"어."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통화연결음이 끊겼고, 전화기 너머의 시어머니 목소리가 무서우리만큼 차갑게 들렸다. 처음 듣는 목소리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아... 네 어머님 잘 들어가셨어요?"

"응."

"덕분에 너무 잘 먹었어요. 감사해요 어머니."

"그래."

"아.... 목소리가 안 좋아 보이시는데 어디... 편찮으세요?"


5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 무섭고 무거운 침묵에 침을 삼키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래, 말 나온 김에 해야겠다. 내가 너 밤낮없이 일하는데 음식까지 하면 힘들까 봐 40만 원 치 대게도 내 돈 주고 쪄서 가져가고 집에서 처리하기 힘들까 봐 껍데기도 다 가져오고 네 집 가서도 내가 부엌에서 일하고... 그런데 너는 배웅도 안 하니? 그리고 우리 아들이 설거지하더라? 내가 니 편하라고 좋은 마음으로 한 거지만 너무한 거 아니가? 니는 내가 우습나? 우리 무시하니? 니 행동은 우리를 무시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짐을 들고 들어가면 받아야지 멀뚱히 서있니? 그렇게 배웠어? 이러나저러나 네가 배웅하면서 잘 먹었습니다~ 했으면 아직 결혼한 지 얼마나 안돼서 그러겠거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기본이 안되어있네 어?!"


꾸중하는 말로 40분 넘게 계속된 통화는 수십 개의 송곳이 되어 귓구멍을 지나 심장으로 와 꽂혔다. 그저, 처음 생긴 시댁이 어려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동안, 오해가 쌓이고 쌓여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을 낳았다. 명치끝이 막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억울하고 분해 울컥울컥 목구멍으로 치솟는 뜨거운 울음이 전화기 너머로 들리지 않길 바라며 숨죽여 울었다.


"필중이가 아무리 들어가라고 해도 그렇지. 넌 그런 예의도 없니? 눈치도 없어?"

"저, 저는 어머님이 오빠한테 시키신 줄 알았어요."

"우리 아들도 그렇지만 너도 생각이 없네. 30살 넘게 먹고 그런 건 기본 아니니?"

".... 죄송합니다..."

"오늘 일 너한테는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네가 전화해서 하는 거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내가 너를 안 보지 않겠니?"


마지막 말에 결국 목구멍 너머로 넘기고 넘기던 울음이 입 밖으로 탁, 터져 나왔다. 억울함과 분노, 죄송스러움, 앞으로의 두려움 등이 뒤섞여 나를 옥죄어왔다.


"너 우니? 내가 뭘 했다고 우니?"

"그게, 아니고요. 죄송해서.."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말면 되지 울긴 왜 울어! 너 그래 가지고 이 험한 세상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래 응?"


전화를 끊고 싶었다. 마음이 요동치다 못해 범람하기 시작했고 점점 몸이 떨리면서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제발 그만...


다음에 볼 때 웃으며 보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아직 남편이 도착하지 않은, 대게의 비릿한 향이 가득 남아있는 집에서 난 철저히 혼자였다.


20분 후 남편이 들어왔다. 슬리이딩 도어 문 앞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손을 벌벌 떨며 눈물로 범벅이 된 나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남편을 보자마자 나를 잠식했던 분노에 찬 울음을 남편에게 토해냈다. 남편은 아무 말도 없이 듣고만 있었다.


"내가 왜 오빠 때문에 욕을 들어야 하는데! 왜 예의가 있니 없니 생각이 있니 없니 같은 말을 들어야 하냐고! 오빠한텐 엄마지만 나한텐 아니야! 오빠는 잘못해도 아들이라 용서받지만 나는 그 배로 떠안아야 한다고! 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그런 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거야? 난 왜 욕만 먹어야 하는 건데! 왜!! 이런 감정 느끼기 싫어서 결혼하기 싫었어!"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온몸을 웅크리고 끅끅거렸다. 남편은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 나를 끌어안아 일으켰다.


"나는 어차피 내가 모셔다 드리는 데 굳이 자기까지 내려올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 집 앞에서 인사도 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봐. 나도 차 안에서 혼 많이 났어. 왜 내 마음대로 들어가라고 했냐고. 당연히 어른이 가시는데 차까지 배웅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내가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나는 어머님이 오빠한테 시킨 줄 알았어. 엘리베이터에 사람도 많았으니까 나는 내려올 필요 없다고 하라고 시킨 줄 알았어."

"응... 무슨 말인지 알아. 미안해."

"내가, 내가 대게 사달라고 한 적 없어. 힘들어도 오빠랑 같이 준비하면 되니까 상관없었다고. 껍데기도 내가 처리할 수 있었어. 나는 괜찮다고 내가 하겠다고 했단 말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의사는 하나도 없었어. 나 편하라고 나서신 거 알지만 난 하나도 편하지 않았어. 눈치 보이고 부담스럽고 불편하고 무서웠어."

"..... 앞으로는 집으로 초대하지 말자. 그냥 우리가 가자."

"그런 말이 아니잖아. 왜 극으로 치달아! 어차피 나만 욕먹게 되어있어! 며느리란 자리는 그런 자리야! 오빠가 뭘 해도 다 내가 시킨 거로 돼버리고 나만 죄인이야 나만!"


나는 그제야 현실을 깨달았다. 내가 결혼한 사람이라는 것을.

남편은 눈을 질끈 감고 코로 숨을 뱉었다. 그리고는 나를 꼭 안아 토닥였다. 저도 분명 차 안에서 모진 꾸지람을 들었을 것이다. 자기의 부모이니 어떻게 말했을지 알 테고 비판과 비난에 약하디 약한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을지도 알 것이다. 그렇게 말없이 5분 이상은 울었던 것 같다. 조금씩 떨림이 잦아들고 눈물도 멎었다.


펑펑 울고 난 뒤에 현자 타임이 찾아왔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천천히 다시 생각했다.

나는 손님을 맞이해본 적이 없다. 본가에 살 때도 외부인을 극도로 꺼려했던 나 때문에 부모님이 손님을 초대하지 않으셨다. 온다 하더라도 안면이 있는 몇몇 분만 오게 했다.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에 대한 예의라는 개념을 몰랐고 솔직히 알 생각도 없었다.


대게를 쪄오시겠다고 하셨을 때도 없는 솜씨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먼저 했었고 쓰레기까지 전부 가져가시는 모습에 한편으로 편했던 것도 있었다. 나는 뭐가 그리 억울하고 화가 났던 걸까.


결국,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다는, 한없이 부족했던 나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니 하나둘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얼마나 되바라져 보였을까. 아무리 모른다고 하지만 저렇게까지 모를까 싶었을 것이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더라면 눈치 보지 않고 집주인으로서 내 자리를 지켰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더 크게 혼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내 행동이 중요했다.

수동적인 내 행동을 바꿔야 한다. 뭐든 물어보고 행하는 습관을 바꿔야 한다. 누군가의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살아가야 한다면 나라는 주체를 조금 더 분명히 보여야 한다. 행여 그 모습이 때론 되바라져 보일 순 있지만, 그 모습 또한 내 모습이라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신분을 연기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연기하는 삶을 살기 싫다. 그러려면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남편과도 그랬듯 시댁과도 맞춰가야 한다. 나는 아직 시댁이 어렵고, 새로 생긴 가족이 불편하다. 30년 넘게 따로 지냈는데 몇 년 만에 맞춰질 리가 없다.


며칠 뒤 나는 용기를 가지고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음이 울리고 약간은 어색하게 '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말했다.


"지난번에는 다시 한번 죄송해요. 제가 부족했던 거 알아요. 얼마나 안 좋게 보셨을지도 알고요."

"뭐 또 그 얘기를 꺼내노 불편하게. 됐다."

"어머니 그런데 제가 좀 많이 느려요. 행동도 느리고 생각도 많아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에요. 아직은 어머님 아버님도 어색하고 어려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노력해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안다. 나도 결혼하고 시집살이하면서 많이 울고 도망가고 싶고 했다. 어에 모르겠노. 니한테만 뭐라 하는 거 아니다. 필중이도 생각 없는 놈이라 많이 뭐라 했다. 나도 아직 니가 어렵고 불편하다. 그래도 며느리가 됐고 내가 니 시부모가 됐으니 부딪히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니 말대로 천천히 가보자."


통화를 끝내고 뭔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해결된 건 없지만 내 목소리를 냈다는 게 뿌듯했다. 뭐, 뒤에서 나에 대해 뭐라 이야기하실지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난 그저 내 방식대로 며느리의 역할을 하면 된다.

원하는 대로 다 따라가다가는 내 가랑이가 찢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질 테니까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생길까. 이번처럼 또 오해가 생기고 눈물을 흘리며 결혼을 후회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다 하더라도 내 삶이 아닌 우리의 삶에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내 모습을 분명히 보이고 내 생각을 명확히 말하면서 말이다. 이런 나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뭐, 상대방 몫이겠지. 난 몰라!



작가의 이전글 언젠가 다시,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