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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아민 Aug 30. 2022

신혼집이 불편하다

야간근무 주가 되면 남편은 저녁 8시부터 출근 준비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저녁을 먹고 소파에 기대어 배를 긁으며 쉴 시간에 남편은 베개에 비비적대 떡진 머리를 냉수 물에 망설임 없이 담그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두피를 찢는 고통을 느껴야 잠이 깨는지 욕실로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몽롱했던 눈빛이 또렷해지며 나온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남편은 남들과는 다른 시간에 적응이 됐는지 졸린다느니 출근하기 싫다느니 하는 불평 한마디 없이 조용히 준비한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해가 지고 난 후에 출근하는 남편이 싫다. 남편이 없는 집은 나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결혼 초반엔 남편이 없는 안방은 들어가지도 못했다. 경미한 불안장애로 항상 한눈에 모든 게 다 보이는 집에서만 살다 문을 닫아도 문을 열어도 다 보이지 않는 집에 살려니 불안하고 무서웠다.


우습게도 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일까 봐 무서웠다.

문을 닫고 있으면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해칠까 봐 무서웠고, 문을 열고 있으면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나를 빤히 보고 있을까 봐 무서웠다. 그러니 내가 몸을 뉘 일 곳은 거실 소파뿐이었고 그마저도 눈이 닿지 않는 방의 문은 닫아뒀다.


남편도 처음엔 믿지 않았다. 오전 8시에 집으로 들어오는 남편은 항상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봤다.

그저 자다가 퇴근 시간에 맞춰 나와있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난 거의 소파에서 새벽 4시가 넘어야 잠시 눈을 붙였고 6시면 눈을 떴다. 이마저도 밖에서 들리는 각종 소음에 놀라 잠에서 깨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는 나를 남편이 처연하게 보기 시작한 건 출근할 때 개켜놓은 침대 위 이불이 퇴근 후에도 그대로 놓여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였다.


"소파에서 잤어?"

"응. 방에서 혼자 못 자겠어."

"왜?"

"무섭다고."

"뭐가 무서워. 이해를 못 하겠네."

"이해하지 마. 그냥 그래."

"자긴 했어?"

"잔 기억은 없어."


남편이 야간근무 주면 불안감이 덮쳐와 불면증에 시달렸다. 집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음에 신경이 곤두섰다. 시계 초침 소리, 냉장고 기계음 소리, 마룻바닥이 줄어들고 늘어나는 소리, 소파에서 나는 바스락 소리마저도 잠을 달아나게 만들었다. 잠을 자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우유 한 잔을 데워 마시기도 했고 수면유도 음악을 틀어놓기도 했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기도 했고 어려운 말로 적힌 책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하품만 나왔다.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새면 신체 반응만 봐도 대략 몇 시쯤인지 알 수 있었다. 눈이 뻑뻑해지고 눈알이 뽑힐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면 곧 해가 뜰 시간이었다.


모든 소리가 다 들리는 선잠을 자다 바로 몸을 일으키면 어지럼증이 났다. 그럴 땐 눈을 게슴츠레 뜨고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다 몸을 일으키면 좀 나았다. 벽에 걸린 아날로그시계를 쳐다봤다.

역시나 이 시간. 자나 못 자나 눈 뜨면 새벽 6시를 크게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잠을 못 자 온몸에 힘이 없어도 아침 준비를 해야 했다. 끝끝내 나를 품지 않은 소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으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간 것 같은 몽롱함이 내려앉았다. 두 검지로 이물감이 가득한 눈을 비비고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섰다. 휘청. 아직 몸에 힘이 돌지 않았다. 어슬렁거리며 힘겹게 부엌으로 향했다. 곧게 걷는다고 걸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싱크대를 잡고 앞이 하얘진 눈을 껌벅였다. 세상의 색을 다시 찾았을 때 물을 틀어 고양이 세수를 했다. 몽롱함이 사라지는 듯했다.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랐던 탓인지 갓 지은 밥을 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거의 매일 밥을 지었다. 남편은 갓 지은 밥이 싫다고 했다. 수분기가 많은 밥은 질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나는 내 강박과 남편이 선호하는 그 중간을 위해 일찍부터 밥을 안치고 다 되면 뚜껑을 열어 김을 뺐다. 그러면 적당히 뜨끈하고 적당히 수분이 날아간 밥이 완성됐다. 갖가지 반찬보단 한 두 개 메인 요리로 간단히 먹는 걸 선호하는 남편을 위해 그때그때 반찬을 만들어 올렸다.


오전 8시, 남편이 퇴근하고 욕실로 씻으러 들어가면 나는 아침에 만든 따끈한 밥과 반찬, 국을 그릇에 덜어 TV 앞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남편은 고양이 혓바닥이라 뜨거운 걸 잘 못 먹어 나오기 5분 전에 상을 차려놓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나는 아침을 잘 먹지 않아 남편이 밥을 먹으면 그 옆에 앉아 책을 읽거나 폰을 본다. 하지만 며칠이나 잠을 못 잔 탓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한 상태로 앉아있기도 했다. 그러면 남편은 내 상태를 확인하고 물어왔다.


"오늘은 방에 들어서 잤어?"

"아니."

"몇 시간 잤어?"

"... 못 잤어."

"며칠 짼데?"

"오빠가 야간근무인 주는 거의 매일이야."

"침대에 누워서 눈 감고 있어 봐."

"누가 들어오면 어떡해 밖에서 나 빤히 보고 있으면 어떡해."

"안 그래. 현관문 닫아놓는데 누가 어떻게 들어와."

"... 아는데 집에 아무도 없을 거란 거 아는데 있을 것 같아서 무서워."

".... 없는 걸 아는데 왜 있을 것 같다는 거야. 아무도 없어."

"안다고. 알아도 무섭다고."


답이 없는 입씨름은 매일 계속되었다. 처음엔 장난치는 줄로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다크서클이 심해지고 하얗던 얼굴이 까매지는 걸 보더니 믿기 시작했다. 남편은 거의 오전 10시쯤 자러 들어갔다. 나도 남편을 따라 그제야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마저도 12시가 지나면 눈이 떠져 밖으로 나오지만 집에 남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이제 결혼한 지 1년이 다되어가고 나름대로 잠을 잘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게 첫 번째다. 모든 방문을 열어 구석구석을 확인했다.

그다음은 날 수 있는 소리들을 미리 생각해 머릿속에 입력해 뒀다.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날엔 창틀에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 차들이 미끄러져 나는 소리, 경적소리, 혹시나 칠지도 모르는 천둥소리 등. 그럼 한결 나았다. 그리고는 나한테 세뇌시킨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다. 괜찮다.'


오늘도 야간근무를 위해 남편은 오후 8시에 일어나 씻고 현관문을 나선다.

나는 남편을 졸래졸래 따라나가 누가 볼세라 문 뒤에 몸을 숨기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남편에게 손을 흔든다.


"잘 다녀와."

"방에서 자."

"응, 노력해볼게."

"어제도 이불 그대로 있더만."

"영화 봐서 그래. 도어록."

"... 혼자 있는 거 무섭다면서 그런 영화를 왜 봐. 보지 마. 날 추워졌으니까 소파 말고 침대에서 이불 덮고 자. 감기 걸려."

"응, 알겠어."

"......"


남편은 엘리베이터가 도착할 때까지 처연하게 날 쳐다본다. 말하지 않아도 남편이 뭘 걱정하는지 안다.

난 아마 오늘도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잠들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중간에 깨지 않고 4시간 정도 자는 편이다.

비록 꿈이 험해 꿀잠까지는 아니더라도 오전 7시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는 혼자서도 잠이란 걸 잔다.

언젠간 세뇌시키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잠이 들 날이 오지 않을까?

아, 애를 키우면 쥐 죽은 듯 잔다고 하긴 하더라. 자기 위해서 육아를....?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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