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
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의 대표주자다.
누가 보고 있든 없든 법이나 규칙으로 정해져 있는 건 꼭, 지키려고 노력한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꽃을 꺾지 않는다. 신호가 빨간불일 때는 멈추고, 초록불일 때는 건넌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통행속도 30km를 지키고 계단은 오른쪽으로 붙어 올라간다.
고속도로 제한속도도 단속카메라 여부에 상관없이 칼같이 지킨다.
장바구니를 이용해 달라는 안내문을 보면 장바구니를 이용하고 정숙이라는 팻말을 보면 발소리도 죽인다.
'당기시오'라고 되어있는 문은 당기고, '미시오'라고 되어있으면 민다.
화장실에서도 소변기, 대변기 레버가 따로 있으면 용변에 맞게 물을 내리고 핸드타월은 1장만 쓴다.
노약 좌석이라고 표시된 곳은 아무리 힘들어도 앉지 않고 문이 열리고 일어서서 내리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문이 열리면 일어선다. 제출기한이 정해져 있으면 그 기한을 지키고 모든 물건은 사용설명서를 숙지하고 사용한다. 나는 가이드라인이 확실한 걸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주로 듣는 말은 '융통성이 없네'였다.
현실적인 남편과 함께면 항상 같은 문제로 아웅다웅했다. 상황에 맞게 움직이면 된다는 남편과 정해져 있는 건 지켜야 한다는 나는 일상 곳곳에서 트러블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횡단보도 앞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집 앞에는 네 걸음만 가면 건너편으로 갈 수 있는 횡단보도가 있었다. 아무리 좁은 곳이라도 차가 빠르게 지나다니는 길이라 신호등은 존재했다. 장을 보고 온터라 양손에 짐이 가득했다. 골목을 지나는 차는 없었고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살짝 뛰면 2초도 안되어 건너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난 파란불로 바뀌길 기다렸다.
"뭐해, 안가?"
"빨간불이야."
"차가 없잖아."
"응 알아. 빨간불이잖아."
"차도 없고 사람도 없잖아. 그냥 가도 돼."
"안돼. 빨간불이라니까?"
처음 몇 번은 남편도 같이 기다려줬다. 연애 때부터 그런 나의 성격을 알았고 지키지 않으면 죄책감까지 느끼는 나에게 맞춰줬다. 결혼 후에는 달랐다. 남편은 차가 없는 걸 확인하고 내 팔을 잡아당겼고 나는 인상을 쓰며 뒤로 당겼다. 나는 눈짓으로 신호가 바뀌지 않았음을 알렸고 남편은 한숨을 쉬었다.
"그럼 신호 바뀌면 와."
남편은 나를 스쳐지나 거침없이 횡단보도를 건넜다. 나는 입을 뻐끔거렸다.
'저러다 사고라고 나면...'이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다 건넌 남편은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제 갈길을 갔다. 나는 멀어지는 남편을 초조하게 바라보다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재빠르게 뛰어갔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만났다.
"거봐. 일찍 건너든 빨리 건너든 어차피 또 여기서 기다려야 하는데 왜 그냥 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게 더 비효율적이야."
"횡단보도가 있었고! 빨간불이었다니까? 유치원 때 안 배웠어? 초록불에 건너는 거야!"
"그래, 알았어요. 자기는 꼭 손도 들고 건너세요."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3차선 도로가 있다. 다른 동네로 이어지는 도로라 통행하는 차가 많다.
그러다 보니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상당히 많았다.
역시나 옆쪽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초록불이 되었음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차가 위험하게 지나갔다.
"저봐 저봐. 교차로 우회전하면서 속도 안 줄이는 거 봐. 사고 나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신고해서 포상금 받자."
"아 뭐래, 좀!"
어디서 알고 왔는지 남편은 내가 지적만 하면 교통위반 신고해서 포상금 받자며 히죽거린다.
법보다 포상금에 눈이 반짝거리는 남편의 어깨를 찰싹 때리고 우리가 서 있는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렸다.
신호가 바뀌지도 않았는데 6차로 위를 서슴없이 뛰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리 차량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고 해도 아직 보행자 신호는 초록불로 바뀌지 않았다. 한 사람이 뛰니 눈치를 보던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따라 뛰었다. 나는 탄식을 하며 혀를 끌끌 찼다.
"나쁜 건 금방 따라 해. 저러다 사고 나면 누구 책임인데."
"자기야 봐봐. 저 위에 차량 신호가 빨간불이잖아? 5초 뒤면 보행자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어."
"내가 바보야? 나도 알거든?"
"그러니까 사고 안 난다는 판단하에 가는 거라고."
"아니 그럼 신호가 무슨 소용인데. 왜 안 지키냐고. 교통법규는 괜히 있어?"
"자기처럼 다 지키고 사는 사람도 별로 없어."
"나라도 지켜야지, 나라도! 우리 옆에 꼬맹이들은 앞에 뛰어가는 몰상식한 어른들 보고 뭘 배우겠어!"
"쟤들도 나이 들면 다 똑같아져."
"저 사람들도 제 자식한테는 초록불에 건너는 거라고 교육했을 거잖아! 본인 말도 안 지켜?"
"교육은 교육일 뿐 지키는 건 극소수지. 사고 나면 죽는 거고. 그럼 저 사람 가족은 사망보험금 타겠지."
사망보험금을 타서 남은 가족들이 잘 먹고 잘살면 된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남편이 어이없었다.
먼저 뛰어간 사람들이 반대편 인도에 다다랐을 때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었다. 나는 좌우를 살피고 횡단보도 위에 발을 올렸다. 길을 건너가면서도 나는 말을 이어갔다.
"정해진 법규만 잘 지켜도 사고는 안 날 텐데, 왜 저렇게들 안 지키는 거야?"
"가고 싶으니까 가겠지."
"법이 계속 생겨나고 교육하면 뭐해. 지키지를 않는데. 그러면서 불편하니까 법 폐지하라는 건 또 뭐야."
"원래 하라면 하기 싫고, 하지 말라 하면 더 하고 싶은 법이지."
"오빠는 그러지 마."
"아까 거기는 안 건너는 게 더 이상한 거야."
"아무튼!"
"융통성 있게 살아가는 것도 필요합니다요."
참 이상하다.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교통사고를 보도한다. 음주운전으로, 교통신호를 안 지켜서, 무단 횡단해서, 속도를 위반해서, 통행방향을 무시해서, 꼬리물기 하다, 시야 방해로, 차선 변경이 금지되어 있는 곳에서 차선 변경을 하다가... 그러다 사고가 나면? 쯧쯧거리며 헐뜯기 바쁘다.
그러는 본인들은, 교통법규를 잘 지키나?
남편도 도로 위에서는 범법자가 된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도통 들어먹지를 않는다.
"지금 속도 100km 넘었어!"
"응 적절한 80km야."
"아니 지금 120km라니까? 100km까지야."
"응 적절한 90km야."
"100km 이하로 줄여. 2차로로 들어가. 1차로는 추월차로야!"
"아오! 알았다 알았어!"
장난식으로 티키 타카하다 내가 진심으로 화를 내야 속도를 줄이고 1차로에서 2차로로 차선을 변경한다.
그러면 우리를 무서운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을 발견한다. 어디 목숨을 담보로 레이싱 경주라도 하는가 보다.
나는 속도에 대한 불안도가 높다. 교통사고를 당한 적은 없지만 일정 이상의 속도감이 느껴지면 내 머릿속에서는 갖가지 아찔한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나는 그래서 운전대를 놓았다. 최저속도를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때론 괜찮다는 자기 위안이 문제가 된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자. 괜찮을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까지 법을 지키는 이유는 한 가지인 것 같다.
나는 나한테 떳떳하고 싶다. 원칙주의자라도 해도 상관없다. 내가 세운 원칙을 깨고 싶지 않다.
먼 훗날 내 자식에게 떳떳한 부모가 되려면 우선 나에게 떳떳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키지 않는 규칙을 내 아이에게 지키라고 하는 건 위선이고 모순이다.
원칙이 바로서야 변칙도 가능하다.
그러니, 당장 편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지 말자.
뭐, 남편의 말대로 사망보험금을 위해서라면 상관없고. 아, 그건 보험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