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아민 Sep 02. 2022

압박의 시작

임신 준비 1

'예민하면 임신도 안 되는 건가?'


내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피임을 하지 않으면 단번에 임신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건강하니까,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임신을 계획한 지 두 달째 되던 날 나는 생각했다.

주야 근무로 남편이 피곤해 관계 횟수가 적긴 하지만 시기만 잘 맞추면 얼마든지 임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 생각은 허황된 꿈이었다.


결혼 후 5개월 동안은 직장을 다니느라 피임을 했고 2개월 동안은 임신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겁이 나기도 했고 다정했던 부부가 육아문제로 이혼까지 가는 사례도 많이 봤기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 다 아직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시댁에서 압박이 들어왔다. 결혼한 지 1년이 다되어가도록 아무 소식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시누네는 결혼 후 곧바로 딩크족을 선언했다. 우리에게서 빨리 손주를 보고 싶어 한 이유이기도 했다.

친정에서도 아기 소식이 없는지 여러 번 물어왔다. 신혼을 즐기고 싶어 했던 우리에겐 부담이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오롯이 우리의 몫인데 왜 양가 부모님들이 난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같은 세상에 낳기만 한다고 부모가 아니지 않나? 옛날과 달라진 걸 모르는 게 아닐 텐데 말이다.


친정에는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결혼 후 줄곧 피임을 해왔고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1년 후 생각해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시댁에는 솔직하지 못했다. 손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결혼 전에 궁합을 보면서 나와 남편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는 장차 큰 인물이 될 거라는 점쟁이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냥 놔둔다고 그런 아이로 크는 게 아닌데 말이다.


그저 에둘러 아드님이 피곤해한다, 체력이 안된단다, 아직 생각이 없다고 한다며 남편 핑계를 댔다.

그랬더니 으레 들려오는 말은,


"네가 조금 적극적으로 해봐. 네가 옆에서 옆구리 찔러야지. 그런 건 여자가 알아서 하는 거야. 네가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닌데 빨리 가져야지."


.... 더 갖기 싫어졌다.


사회에서 배운 대로 속에서 끓는 용암을 바닷속으로 잠재우며 나는 용케도 "네, 노력해볼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며 아양을 떨었다. 여전히 임신과 출산을 여자의 몫으로만 생각하는 인식이 싫었다.


그랬던 내가 병원을 찾게 된 건 시어머니의 말도 있었지만 덜컥 겁이 나서였다.


"아민아, 얼마 전에 점을 봤는데 너네 부부 임신 언제 하냐고 물어보니까 자연임신이 어려울 수 있으니 시험관 아기도 생각 보라고 하더라. 너 병원은 가봤니?"


여자라면 제 건강을 위해서 찾는다는 산부인과를 난 태어나서 딱 2번 가보았다.

고등학생 때 한 번, 성인이 되고 나서 한 번.

고등학생 때는 앉아서 공부만 하다 보니 흔하게 걸리는 질병 때문이었고 성인 때는 허리디스크 치료를 위해 맞았던 주사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초경부터 20대 때까지 생리불순이 온 적도 없었고 항상 규칙적이었다. 하지만 30대가 되면서부터 온갖 스트레스와 마음의 병으로 조금 늦거나 약간 빨리지는 경우도 있었고 없었던 생리통이나 생리증후군들이 나타나면서 조금씩 걱정되기는 했었다. 한 번은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며 미뤄왔다.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당장 아기 생각이 없더라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검사는 받아보기로 했다.


산부인과의 첫 기억이 좋지 않은 나는 산부인과 앞에서 망설였다.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자세와 인간적이지 않은 고통이 어렴풋 떠올랐다. 접수처에 인적사항을 적고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잠시 후 내 이름이 호명됐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어요?"

"산전검사를 좀 하려고요."


차분하고 온화해 보이는 의사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나를 보며 어떤 검사를 진행하는지 설명해주었다.

병원 방문 전 미리 어떤 검사들을 하는지 알고 갔던 터라 추가되는 검사는 그게 왜 필요한 건지 물어보며 정했다.


옷을 갈아입고 오라는 간호사의 말에 진료실 안쪽에 있는 탈의실로 가 환복 했다. 고문대처럼 보이는 검사 의자에 올라앉았다. 역시나 거부감이 드는 자세였다. 난 괜찮은 척하며 대기했지만 내 손가락은 아니었나 보다. 잘게 떨리고 있었다.


마스크와 장갑을 낀 의사가 들어와 다리 사이에 앉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댔다.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하얀 가림막이 내려와 나의 시야를 가렸다. 병원 측의 배려겠지만 보이지 않으니 더 무서워졌다.

생각보다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이전에 간 병원의 의사가 나와 맞지 않았었나 보다. 약 5분 간의 검사가 끝나고 의사가 말했다.


"환자분, 옆에 모니터 보시면 자궁경부가 심하게 헐어있어요. 자궁경부 이형성증이에요. 꽤 심한 편이라 정밀검사를 해봐야 해요."

"아.... 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내가 봐도 불에 덴 것처럼 심각하게 헐어있었다. 무서워졌다.


걱정을 한 아름 안고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의사는 내 표정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혈액검사 결과나 정밀검사 결과는 이틀 후에 나오니까 그때 말씀드릴게요. 우선 오늘은 초음파 검사랑 영상 촬영술을 했고 자궁경부가 많이 헐어있어서 약을 처방해드릴게요. 초음파 검사상에..."


초음파 검사상 왼쪽 나팔관에 작은 혹이 있다고 했다. 사실, 이건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사라질 수도 있다고 했는데 아직 그대로인 모양이었다. 진료실에서 나와 데스크로 갔다. 시원하게 인쇄되는 처방전을 받아 들고 결제금액을 물었다. 세상에나......


"네? 얼마라고요?"


뭐가 이렇게 비싸?! 병원비만 30만 원에 육박했다. 최소비용을 찾아보고 왔으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출산율 문제에 병원비는 왜 빼는 걸까. 돈 없으면 애도 못 낳는다는 말이 병원비부터 시작인 것 같았다.

자궁경부암 예방백신도 추천받았다. 남편과 함께 맞는 게 좋다고 했다. 둘이 합쳐 1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첫 접종 후 2개월, 두 번째 접종 후 6개월. 거의 8개월 간 주사를 맞아야 하니 임신을 계획한 우리로서는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자궁경부 이형성증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감염.

내 상황에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 건 스트레스가 가장 컸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혹여라도 정밀검사에서 암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사실을 양가 부모님들이 아신다면 나에게 뭐라 하실까.

혹시 '사랑과 전쟁'에서처럼 아프고 손주도 못 낳는 며느리는 필요 없다며 이혼시키시지는 않을까?

남편은 뭐라고 할까.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왔다. 제 문자에 30만 원이 육박한 금액이 찍혀있으니 집에 오자마자 결과를 물었다.

나는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의사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불안해하는 나에게 괜찮을 거라며 검사 결과가 나오면 함께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이틀 뒤,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문자를 받고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작가의 이전글 극 현실주의 남편, 극 이상주의 아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