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아민 Sep 05. 2022

몸아, 예민해서 미안해

임신 준비 2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에 들어갈 때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산부인과를 처음 와봤겠지?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자동문이 열리고 병원에 발을 들인 후엔 조금 달랐다. 병원 전체를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며 스캔했다. 내가 처음 산부인과를 방문했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조금은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 드는가 보다.


접수대에서 접수를 하고 소파에서 대기하는데 왠지 남편과 나란히 앉아 있는 게 어색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기실에는 여자들뿐이었다. 진료를 받고 나오는 여성분이 남편을 보고 흠칫했다. 의사와 못 나눈 이야기를 간호사에게 하려고 했는지 간호사에게 바짝 다가서서 중얼거렸다.


"오빠, 화장실 갔다 올래?"


괜히 남편이 앉아 있어 편하게 이야기를 못하나 싶어서 남편에게 화장실을 다녀오길 권했지만, 남편은 괜찮다며 핸드폰 게임을 했다. 이럴 때 보면 참 눈치가 없다.

진료를 보러 온 사람이 꽤 있었다. 배가 나온 사람은 없는 걸로 보아 여성질환 중심으로 진료를 보는 모양이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온 거라 적잖이 긴장이 됐다. 집안 내력에 위암으로 돌아가신 분은 여럿 있었으나 여성질환으로 병이 있던 분은 없어서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첫 방문 때 병원 전반을 둘러봐서 대기하는 동안 할 게 없었다. 게임에 집중한 남편에게 기대 SNS를 열어보았다. 다 봤던 것뿐이라 감흥이 없었다.


"오빠, 무슨 생각해?"


게임을 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냥 말이 걸고 싶었다. 남편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폰을 들고 있던 손을 내려 나를 쳐다봤다.


"시술비가 비싸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초음파 검사도 비싸다고 하던데 애를 가져도 안 가져도 걱정이다, 라는 생각?"


참 현실적인 생각이었다. 남편은 나만큼이나 지출에 예민한 사람이었다. 비급여 항목이 많은 산부인과에서 금액이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뒤 내 이름이 호명됐다. 남편이 먼저 일어나 앞장섰다. 진료실로 들어가니 의사가 살짝 놀란 것 같았다. 아마 평일 오전이었던지라 남편하고 같이 온 게 의아했던 모양이었다. 의자에 앉자마자 모니터에 검사결과표를 띄웠다.


"혈액검사에서는 다른 문제는 없었어요. 임신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꼭 필요한 비타민D가 결핍이셔서 주사를 맞아야 하고 몸에 염증이 좀 있어서 관리가 필요해요. 그리고..."


의사는 남편을 보며 말했다.


"엄마의 건강 말고도 아빠의 건강도 중요해요. 이왕 오신 거 소변 검사하고 가시는데 어떠세요?"

"아... 굳이 필요한가요? 회사에서 일 년에 한 번씩 건강 검진하는데요?"

"건강검진과 임신에 필요한 검사는 달라요."

"검사비가 얼만데요?"

"*만원입니다."


남편은 잠시 고민하더니 알겠다며 간호사와 진료실을 나갔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건강에 자신했다.

주야 근무하는 회사다 보니 일 년에 한 번씩은 의무적으로 건강검진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임신과 직결된 검사라고 하니 순순히 따라나갔다. 의사는 남편이 나간 후 모니터에 다른 검사 결과를 띄웠다.


"지난번에 정밀 검사한 결과예요. 걱정했던 암은 아니고 인유두종 바이러스 고위험군 16번에 감염이 되어있어요."

"아..."


얼마나 위험한 건지 감이 오지는 않았다. 그저 자궁경부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 말고는 아는 바가 없었다.

나는 직접적으로 질문했다.


"그럼 아기 갖는데 문제가 되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는 거지 암은 아니니까요."

"그럼 문제가 없는 건가요?"

"임신하는데 당장 문제가 있지는 않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백신도 맞으시고 경과 보면서 준비하시는 게 아무래도 좋겠죠?"

"그럼 임신을 미뤄야 할까요?"

"그건 아빠 분과 상의해야 할 것 같네요. 16번은 고위험군이긴 하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혈액검사 결과를 한 번 더 물어본 후 평상시에 조심해야 할 부분도 물어봤다.

염증 수치도 높고 면역성도 많이 떨어져 있으니 규칙적인 생활과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남편을 데리고 나갔던 간호사 들어왔다. 나는 간호사를 보며 물음표를 띄웠다.


"남편분은 밖에 앉아 계세요."

"아,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간호사 안내에 따라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자궁경부를 소독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처치가 끝나고 비타민D 주사를 맞으러 주사실에 들어갔다. 인상 좋아 보이는 간호사가 웃으며 반겼다.

따끔거리는 주사를 맞고 난 조심히 물어봤다.


"저, 인유두종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거나 난소에 작은 물혹이 있으면 임신이 힘든가요?"

"아이, 아니에요. 뭐 다른 건강하신 분들에 비해 노력은 좀 필요하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라도 임신하신 분 많아요.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 스트레스받아하면 더 힘들어요."


주사 맞은 부위에 테이프가 붙여졌다. 옷을 챙겨 입고 천천히 나오라며 간호사는 나갔다. 나는 어깨까지 꽉 끼게 올렸던 소매를 내리고 잠시 침대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주사실에서 나와 소파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다가갔다. 남편은 자연스럽게 데스크로 가 청구서를 받아 들고 결제를 했다.


"오늘도 꽤 나왔네."

"그래도 저번보다는 덜 나왔네. 소변검사도 괜히 한 것 같아. 아무 이상 없을 텐데."


소변검사 결과까지 듣고 가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다음 방문에 듣거나 문자로 받기로 하고 우리는 병원을 나왔다. 남편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내 기분을 살피더니 카페로 향했다.


"자기 단 거 먹을 거지?"

"응. 돌체라떼."


기분이 좋지 않거나 걱정이 많을 때는 항상 단 커피를 먹었다. 그러면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검사 결과를 남편에게 말했다.


"자궁이형성증인데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 중에서 고위험군에 감염이 됐대."

"치료는?"

"지금 쓰고 있는 약 꾸준히 바르고 백신 맞으라고 하던데?"

"직접적인 치료는 못한대?"

"별다른 말은 안 했어. 6개월씩 경과 지켜보자고 하던데."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임신 계획은 어쩔까? 미룰까?"

".... 완치가 되는 거래?"

"그건 모르지."


남편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님이 있으니 쉽게 결정 내릴 수 없는 문제였다.

몇 마디 주고받았을 까 우리 앞으로 커피 두 잔이 놓였다. 하나씩 집어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길을 걸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궁경부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말을 들었는데 내 첫 질문은,

'임신할 수 있을까요?'였다. 언제부터 내 건강보다 임신이 중요하게 됐을까.


난 남편에게 어떤 반응을 원했던 걸까. 남편은 한 번도 '임신은 가능하대?'라는 말 따위 하지 않았다.

물어볼 틈도 없이 내가 조잘조잘거렸던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치료라던가 약이라던가 조심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만 물어봤다. 임신을 걱정하고 있는 건 나뿐인가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야간근무를 했던 남편은 아침을 먹은 후 바로 잠이 들었고, 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 16번이 임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카더라 통신보다는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

주로 학술지와 병원에서 올린 정보들을 모았다. 6개월 후 다시 한번 검사를 해보자 한 걸로 보아 나는 아직 자연치유가 될 수도 있는 1단계인가 보다.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대신 정말 면역력 증강이 최우선 과제인 것 같았다.


거실 소파에 누워 멍하게 있었다. 내가 내 자궁에 이토록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결혼 생각이 없었던 탓에 2세에 대한 생각도 당연히 없어 자궁을 들여다볼 생각도 못했다.

막연하게 건강할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건강의 적신호가 반짝거리고서야 생각이 달라졌다.

건강도 건강이었지만 내 아이에 대한 욕심도 피어났다. 유일하게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기관이 나에게 있다.

궁금해졌다. 나와 남편을 반반씩 닮아 나올 아이가 궁금해졌고, 그 아이가 성장해서 어느 부분에서 내가 묻어 나올지 궁금해졌다. 이왕 여자로 태어난 김에 이왕 결혼한 김에 이왕 검사받은 김에, 그런 김에 아이도 가져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생겼다. 2세에 대한 압박이 없었더라면 난 아마 산부인과에 발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날, 남편에게 소변검사 결과가 문자로 날아왔다. 다른 이상 없이 '정상'이었다.

마지막으로 검사한 내 자궁경부도 약을 꾸준히 발라 깨끗해졌다는 소견을 들었다.

이제 꾸준히 노력할 일만 남았다.


하지만, '노력'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노력은 나 혼자만 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었다.

작가의 이전글 압박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