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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Nov 16. 2015

<정의를 부탁해> 현장을 지키는 미친 성실함으로

시간이 지나도 울림이 이어지는 칼럼을 보셨나요. 보세요 

  

<권석천의 시시각각>의 팬이라면, 기다려왔을 책. 감질나게 표지만 구경하면서 두근두근 기다리던 책이 왔습니다! 라고 잽싸게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자랑한 책이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지하철에서 주로 야금야금 읽었다.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다. 이기는 게 정의다' 이 지랄 같은 상식을 깨는 건 슈퍼 히어로 한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우린 결국 서로에게 정의를 부탁해야.. 

한다는 이 책을 꼭꼭 씹어 완독했다. 칼럼집은 여간해서 읽지 않는데, 역시나 달랐다. 성실한 칼럼니스트는 예전 칼럼을 묶어내면서도, 글 하나하나 코멘트를 얹어서 생각거리를 던진다. 그게 아니더라도, 몇 년 전 이야기를 현재에 돌아보는 마음이 또 여러가지로 흔들린다. 


"국가의 명예란..스스로 그 명예를 주장하며 국가와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을 처벌한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닌..비록 악의적이고 상당성을 잃은 비판이라도 국민에 대한 설명과 설득을 통해 극복하고 통합을 이뤄나가는게 국가의 존재 이유" 

라는 김태선 선생님의 글을 인용한 대목. 유언비어 엄정처단 원칙 아래 국가의 명예는 얼마나 보호되고 있는지, 우리는 다양한 사례를 지켜보고 있다. 국가의 명예를 위해 언론사 소송을 불사해야 한다던 참여정부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가 생각을 해본다. 


<사당동 더하기 25>라는 서점 신간 코너에서 발견한 그는 출판사를 통해 연락처를 수소문, 저자인 조은 교수를 직접 찾아간다. 

"가진게 맨몸밖에 없고 사나흘 버틸 여유도 없는..이들을 중산층의 시각으로 재단하는 것은 문제",  "이런 빈곤층이 전체 가구의 15%를 넘는다. 계층 간 이동 통로마저 닫히면서 사회 불안은 커질 수 밖에 없다. 한국 사회와 정책 입안자가 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길 바랄 뿐"

이라는 조 교수의 멘트를 인용한다. 저 책은 나 역시 '내 인생의 책' 10권에 꼽으며 <우리 사회의 레 미제라블>로 정리해서 각별히 관심. 저 칼럼은 2012년 글이다. 그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2012년 글 몇 대목 더 보자. 


"이제 경제논리와 정치논리를 넘어서 쌍용차 문제를 사회적 상처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상처만 있고 치유가 없을 때 흉터는 크게 자리 잡는다. 왼손의 이름이 '희망'이라면 치유와 중재의 오른손도 있음으로 보여줄 때다."

(안타깝게도, 쌍용차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 


"남성 서울대 판사 기수.. 주류 중심의 대법원 구성은 토론의 중심을 다시 오른쪽으로 돌려놓을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에서 소수자의 감수성이 사라질 때 사회적 약자들은 법정 밖의 정의를 찾아 거리를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 

(대법관 구성은 이후 계속 더 나빠졌다는 것이 일반적 평. 소수자 감수성을 기대하긴 더 어려워졌다) 


그동안 팬을 자처하며 SNS로 퍼나르기 바빴던 인간 중 하나인지라, 이런 트윗도 올리곤 했고, 


[권석천의 시시각각] 착한 바보로 살기 싫어서 이 여름. 가장 문제적 인간 둘. 계나가, 안옥윤에게 쓰는 편지. '군소리 없이 말 잘 듣는 사람들. 당신이 살던 시대의 황국신민', 거세된 모범생들의 사회에 일갈


[권석천시시각각] 생각할 사, 슬퍼할 도 생각을 하면 슬픈 현실이 더 슬퍼지고, 생각을 하면 슬퍼하지 않을 도리가 없고, 생각을 하면 순응하기 틀렸고, 생각을 하면 부조리와 불의, 불공정이 오롯하게 느껴지니 


손석희가 추천한 칼럼니스트라는 칼럼 큐레이션에도 환호했는데.. 글 읽다가 몇 몇 대목에서 참 울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시다. 예컨대 이런 대목. 


좋은 집안 출신만 뽑는 건 문제? 대표변호사가 발끈했대. 사건 수임부터 영향력 확대까지 로펌 경영에 도움 될 사람 뽑는 게 뭐가 잘못됐냐는 거지..계층 간 이동이 막힌 사회, 새로운 중세中世가 시작된거야. 뭐가 어디서 잘못된 걸까. 

(아아. 중세라니. 새로운 중세가 시작됐다니.. ) 


이 대목은. 본인의 명 문장도 아니고, 그냥 인용을 했을 뿐인데.. 

이승에서의 정의는 늘 반쪽이라지만..  " <정의를 부탁해> 늦은밤 논설위원실에서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는 대목을 읽다가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침 지하철 문이 열렸고 걸음을 재촉했다...  


이렇게 정리하면.. 사실 끝도 없을 것 같고.. 굳이 이렇게 작심하고 정리에 나선 이유는 다른데 있다. 이런 성실함에 대해서는 깊은 존경심을 반드시 밝히는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널리 알려야 한다고ㅎㅎ 

그는 성실하다. 법조와 현실 세계를 그린 픽션, <추적자> 라는 드라마를 봐야 한다고 판단하자.. 주말 내내 16회를 공부하듯 몰아서 보는 분이다. 


빚 때문에 아내를 살해하려던 남편의 사연을 보자, 사건 검색을 해보고.. 항소심 재판에 찾아간다. 세상사, 어찌 그런 참담한 일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듣기 위해 법정에 들어가 재판을 지켜본다. 그리고, 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불운들의 원인과 사회적 모순을 세심하게 살펴본다. 


소년보호교사 변동식의 삶을 추적하던 그는 그가 죽은 이후, 그의 블로그도 살펴본다. 어쩌면 누군가의 삶을 바꿨을 고인과 소통하는 제자의 글을 놓치지 않는다. 


17살 소녀를 불러내 살해한 19세 심모씨 사건. 그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현장검증이 이뤄진 용인 모텔 현장도 쫓아간다. 아는 사람은 안다. 논설위원이 이렇게 현장 쫓아다니고, 법정에 가보고 하는게 정말 흔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아니, 현장검증까지 쫓아가는 것은 수습기자 혹은 혈기왕성한 젊은 기자나 하는 일이지 짬밥 많은 기자가 이러는 것을 솔직히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보통 칼럼을 출고하기 하루 전날 초고를 써놓은 뒤 다음 날 스타일을 바꾸거나 문장을 다듬는다니... 초치기 마감 인생을 살아온 이로서는 하루 전날 마감한다는 이 대목에서 거의 쓰러질 뻔 했다.. 나도 그렇지만, 모두 마감이 다가와야 글이 써진다는 핑계를 대는 사람들만 본지라.. 


호들갑스럽게, 책 읽기 전에 이런 글을 페북에 남겼다. 


Sukchun Kwon 님이 매우 겸손하게 법조기자 시절을 돌아보는 서문을 보니, 처음 법조기자 할 때, "참 괜찮은 법조기자"라며 전설처럼 떠돌던 그 이름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훨씬 많아졌다지만 당시에도 서초동에는 100여명의 기자들이 우글거렸고, 특종 잘하는 선수, 귀신 같이 정보를 빼내는 선수, 그 바닥 모르는 사람이 없는 선수, 온갖 선수들이 온갖 기사를 썼죠. 그 와중에 취재원들이나 기자들이나 무조건 신뢰를 표시하는 저런 평판 갖기 쉽지 않습니다. 꼭 만나뵙고 싶던 소망은 그 이후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이뤄졌지만, 법조기자라면 만나보고 싶은 레전드 선배 중 한 분이었죠.

저는 직접 법조를 취재하기 전까지만 해도 법조 기사는 절대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시절엔 이름만 들었던 분. 글은 <시시각각>으로 제대로 만났는데 매번 지인들과 한숨을 쉬며 감탄하곤 했습니다. 아니, 어쩜 이리 글을 잘 쓸 수 있냐며 제 주변에 팬클럽이 만들어질 지경이었죠..

매 사건마다 깊이 돌아보고, 팩트를 곱씹으며 때로는 조곤조곤, 때로는 격하게 내달리는 글을 다시 마주합니다. 다양한 형식 실험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한 줄 한 줄 묵직했던 그 문체. 그러나 글은 단순히 기교나 스타일로 만들어지지 않죠.

서문에서 밝히시길, "매너가 신사를 만든다면 기자는 사건이 만드는 것"이라는 대목.

"칼럼을 쓰면서 목격했던 총리실 사찰, 국정원 댓글, 세월호 참사 같은 사건들이 저를 만들었습니다. 법조 분야를 담당해온 저로서는 일련의 사건들을 씨줄로, 권력의 생리와 검찰의 기능, 사법의 역할을 날줄로 삼아야 했습니다. 소심한 데다 정의롭지도 못한 제가 정의를 이야기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사건이 기자를 만든다, 그렇게 명 칼럼니스트가 탄생한 거군요.. 시대를 살아내는 각오가 일개 시민인들 다를 수 있을까요. 다양한 업무가 회사원인 저를 만들듯이ㅎㅎ 무튼 설레발 그만 떨고 책을 펼쳐봐야겠습니다. 잘 읽을께요


기자는 사건이 만든다? 거기에 반드시 더해야 한다. 현장을 찾아가고, 약자들을 직접 만나는 노력 없이 이런 글은 나오지 않는다. 모든 기자는 사건을 경험하지만, 이렇게 치열하고 성실하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다. 나도 그렇고 그런 기자 중 하나였다. 그냥 멋지고 훌륭한 글쟁이라고, 그 재주를 부러워할 일이 아니었다. 업에 대한 태도부터 달랐다. 이런 깨달음, 거듭 고맙다. 


마지막으로.. 사족처럼 붙인다. 트윗도 올렸던 내용..  한 없이 겸손하게 사연을 풀어냈던 그 서문. 서문을 읽어보시라. 그리고, 그냥 흔한 언론인의 칼럼집이라 마시고, 읽어보기를 권한다. 칼럼 다 읽은 애독자라면, 시간이 지나도 울림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볼 것을 권한다. 


"그냥 서문만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는 손석희님의 추천사.. 에 이어 진짜 서문을 통째로 전면광고로 내버린 동아시아 출판사의 패기ㅋㅋ  것두 저자가 일하는 신문에 자기소개서가 나버린 셈ㅎ<정의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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