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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Dec 18. 2016

<불구가 된 미국> 자기자랑의 새 경지, 트럼프 만세

다 형편없어, 다 나빠. 나만 빼고


정치인? 언론? 기업? 다 형편 없어. 나만 빼고 


거창한 말만 늘어놓다가 막상 자리에 오르면 형편없는 패자처럼 행동하는 정치인,
우리의 돈을 훔쳐가는 로비스트와 이익단체들,
공정성 잃고 사실과 의견을 구분 못하는 언론인들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의 정책 비전을 정리한 책. 트럼프는 저런 맹비난으로 시작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아니 트럼프란 사람의 가장 중요한 기조가 저게 아닌가 싶다. '너희들은 다 형편 없어! 나만 빼고' 특히 정치에 대한 염증과 혐오를 바탕으로 정치인을 직설적으로 까대는 그의 언어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질 지경. 선동의 언어가 제대로 먹혔다고 본다.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야 더 지루할 수 있을까..각본대로 얘기"해서 따분하고, "말실수를 할까, 대본에 없는 말을 해서 공식 입장에 어긋날까봐 두려워서 마비되어 있다"고. 반면 자신의 언어는 그야말로 사이다. 통쾌하게 기득권, 엘리트를 씹어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랑이다. 정말 간단하고 명쾌하다.


트럼프는 알고보면 대단한 선동가다. 어쩌면 87년 <거래의 기술, The Art of The Deal>(아래 사진) 이라는 자서전을 400만부 넘게 파는 것으로 시작,  <정상에서의 생존> <재기의 기술>, <트럼프의 부자 되는 법>, <트럼프의 억만장자처럼 생각하라>, <기요사키와 트럼프의 부자> 등 쓰는 족족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히트작 제조기. <거래의 기술>은 진짜 괜찮다는 평을 들었는데 역시 고스트 롸이터가 썼다는 얘기가 있다. 어쨌거나 수완가. 2004년 시작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어프렌티스>도 곧바로 시청률 1위를 찍고 무려 14시즌 장수했다. 2800만명이 시청한 첫 시즌 마지막회는 그 해 수퍼볼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시청률이었고, 2015년 그가 출연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조차 그 해 최고 시청률이었다니, 대단한 흥행사. 이런 사람을 힐러리를 비롯해 너무 쉽게 생각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 나빠. 불만은 당연해


정치인은 현재의 불만을 집요하게 건드린다. 초특급 선동가와 흥행사에겐 쉬운 일이다. '불구가 된 미국', 그의 주장은 이렇다. 20%의 미국인이 무직이거나 부실한 일자리에서 일하는데, 무려 1100만명인지 사실 집계도 잘 안되는 불법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뺐는다. (나쁜 나라들이) 질 나쁜 사람들을 감옥에 넣지 않고 미국에 보내는데, 마약 문제를 일으키고, 강간범도 있고, 살인범도 있다는 둥.. 중산층과 빈곤에 허덕이는 4500만 미국인은 지난 20년 간 소득이 감소했고, 역사상 최고의 강대국인데 사방에서 당하기만 하고. 국민은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하는 지겨운 정치인들로부터 해묵은 공약을 듣는 일에 질렸다고,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이게 누구 탓? 불법이민자 외에도 많다. 일단 강대국의 자리를 위협하는 중국.

중국은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여 여러 산업을 파괴했고, 수만 개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었고, 우리 기업들을 염탐했고, 우리의 기술을 훔쳤으며, 화폐 가치를 낮춰서 때로는 수입이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 제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동아시아 작은 나라라고 하기엔, 우리도 많이 컸다. 트럼프의 타겟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독일을, 일본을, 한국을 지켜준다. 이 나라들은 강하고 부유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받는 것이 없다. 

현재 한국의 국경에는 2만8500명의 우리 훌륭한 미군들이 있다. 그들은 매일 위험을 안고 산다. 오직 그들만이 한국을 지켜준다. 그런데 우리는 그 대가로 한국에서 무엇을 받는가? 그들은 우리에게 상품을 판다. 좋은 이윤을 남기면서 말이다. 그들은 우리와 경쟁한다.  


언론 탓을 안 할리가. 그는 말한다.

미국의 언론이 얼마나 부도덕한지 놀라울 지경이다. 사람들은 때로 신문과 방송이 영리 기업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정직한 보도와 이익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들이 무엇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안타까운 일은 진보와 보수 언론이 모두 부끄러움 없이 거짓말을 하고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니 편 내 편, 우리만 잘 살면 됨 


그는 선동가 답게 '니편 내편'도 잘 가른다. 전선을 명확하게 한다. '불법 이민자'에 대한 적개심과 별개로 '합법 이민자'의 아메리칸 드림을 칭송한다.  

"우리나라, 우리 국민, 우리 법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말이 어찌나 강렬한지. 히틀러도 이런걸 잘했다고들 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를 지키고.. 기승전트럼프만세. 대단한 구조를 가진 책이다. 아니, 책이라기보다 셀레브 정치인의 연설. 현재의 미국은 평화를 사는데 돈을 쓰지만, 차라리 군대에 돈을 쓰자고 대놓고 말한다. 비행기와 선박을 만드는 것도 어차피 미국의 노동자들. 산유국 카르텔의 인질 노릇은 그만하고, 미국에 매장된 2조 배럴 석유나 파쓰자고 한다. 녹색 에너지? 기후 변화가 탄소 배출 때문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이끌렸다. 우리는 환경주의자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 아주 큰 비용을 들이고 있을 뿐이다. 


나는 4650만명이나 되는 빈곤층과 집을 살 형편이 못되는 대다수 중산층을 걱정한다. 자녀들 교육비를 대지 못하는 사람들을 걱정한다. 요컨대 나는 부자들에게 심하게 치우친 재정 정책 때문에 아메리칸 드림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걱정한다. 지나치게 복잡하며 부자들에게 치우친 세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직접 개발사업을 벌이고, 협상을 이끌며, 기업을 사들여서 되살리는 등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벌었다. 


루저만 아니면 됨. 나를 봐. 정말 잘났지. 


아이들을 기쁘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기는 것이다. 

성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최저 수준으로 교육과정을 낮추었고, 등급평가를 없앴다.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 자존감 따위는 잊어라. 우리는 아이들이 도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수많은 실패를 견뎌낸다. 

교육의 방향성은 성적 평가가 아니라, 배움과 협업의 즐거움 쪽으로 가는 줄 알았더니 트럼프는 적자생존. 노력 않으면 실패하도록 만들고 경쟁시키라고 강조한다. 오바마도 교육 문제에 있어서 비슷한 스탠스로 한국의 교실을 칭찬하고는 있지만, 차라리 마이클 무어가 보고 온 핀란드 교실을 보지..


트럼프는 건물을 짓는다.

트럼프는 멋진 골프장을 개발한다

트럼프는 일자리를 만드는 투자를 한다

트럼프는 합법적 이민자들과 모든 미국인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든다. 

(오글오글......)


나는 좋은 사람이다. 정말이다. 그러나 내게는 대다수 직업 정치인들에게는 없는 나쁜 버릇이 있다. 바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을 그대로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를 누가 높이 평가하는 줄 아는가? 바로 미국 국민들이다. 

(와우......)


내가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한 사람은 우리 회사의 조직을 살펴보면 된다. 여성에 대한 나의 긍정적인 인식은 우리 회사에서 일한 여성의 수에 반영되어 있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 일찍 여성들을 주요 보직에 앉혔다. 뉴욕시에서 여성을 주요 건설사업 책임자로 처음 앉힌 사람도 나였다.

(그의 언행을 모두 아는데......)


왜 트럼프에게 매료됐을까 


가난한 중하층 백인 남자들, 불안하고 위태로운 이들이 트럼프에 열광했다는 해석은 비겁하다. 게다가 한 발 더 들어간 분석을 방해한다. 실제트럼프는 매력적인 선동가였고, 불안을 달래줬고, 달콤한 제안을 제시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두는 로빈 후드를 자처했다. 수퍼팩의 돈 선거가 문제가 되는 와중에 억만장자로서 자기 돈 쓰면서 선거하니까 로비스트로부터 자유롭다고 했다. 정작 금융과 산업을 대변하는 울트라부자들로 내각을 구성했지만, 어차피 말과 행동이 다른게 전혀 놀랍지 않은 이 아닌가.  


언론은 그를 폄하했다. 힐러리의 열광적 유세도 조작된 이미지, 트럼프가 어마어마한 군중을 몰고 다닌 것도 사실 몰랐다.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정보가 주어지지 않은 건, 언론 잘못 맞다. 아래 동영상 보면서, 사실 충격받았다. 그의 책을 보면, 그는 제대로 선동했고, 매력적인 제안을 많이 내놓았다. 내각 구성에서 짐작되듯, 말한 그대로 통치할지 믿는 이도 없다는게 문제지만.. 쉽게 말 바꾸고 입장을 뒤집는 그의 특성이 어찌보면 희망이다. 그는 오바마케어에 대해서도 계속 말을 바꾸고 있다. 한반도 정책도 그렇지 않을까?


트럼프 책에서 새로 알게 된 사실들도 있다.


수정헌법 2조는 분명하게 말한다.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할 수 없다". 이것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언론 자유, 집회 및 청원 권리를 담은 수정헌법 1조에 이어 2조를 만들었다. 

Freedom pf Press 를 말하는 수정헌법 1조에 이어 2조가 저런지 몰랐다. 박지형 쌤은 "허허벌판 인적 드문 미국의 중서부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총기를 방어 수단으로 삼는 건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맥락 있는 주장이란 얘기다.


현행 세법은 터무니없다. 연방세법은 7만4608쪽에 달한다. 누구도 제대로 이해못한다. 납세자들이 신고양식을 채우도록 돕는 세무사도 마찬가지. 단지 국민들이 정부에 얼마나 세금을 내야하는지 파악하도록 돕는 일이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현행 세법은 돈이 가장 필요한 국민들에게 너무 많은 돈을 가져가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세 부담을 줄일 허점을 찾도록 허용한다. 

이런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국 기업들이 해외 지사 낼 때, 세법 전문가를 보내는건, 그만큼 장난 칠 여지가 많다는 것. 테슬라코리아 한국지사장도 조세 변호사란 보도를 봤는데..


이 책은 독서모임 트레바리 '36 클럽'에서 읽었다. 난 트럼프 책을 찾아 읽을 만큼의 관심도 없고, 사실 읽기 싫어서 빠질까도 고민했지만, 결과적으로 유익한 독서였다. 세계의 리더가 어떤 인물인지, 그가 어떻게 이겼는지 조금 더 이해된다. 이제 쫌 그를 알겠다. 고백컨대, 쥐꼬리 인세도 보태주기 싫어서 서점에서 완독했는데..쏘리요.


어젯밤 잠깐 대화를 나눈 박지형 쌤은 "트럼프는 대통령 직에 관심이 없어요. 그는 트럼프 제국의 시장 가치를 100배 키우는데 주력할 겁니다. 결국은 탄핵될 걸로 봐요"라고 말했다. 나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이 우리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 궁금하다. 이래저래 살펴볼 포인트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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