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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Dec 18. 2016

<사피엔스의 미래> 괜찮아 vs 아니 계속 우울할거야


3천명이 30~95달러를 내고 토론을 듣기 위해 모인다. 토론 멤버는 그야말로 슈퍼스타급. 90분 동안 당대의 가장 뜨거운 쟁점을 놓고 토론이 벌어진다. 청중들은 투표로 심판한다. 캐나다의 멍크 디베이트다. 금광기업으로 돈을 번 멍크 부부가 만든 공익재단 Aurea가 주관한다.   <감시국가> 쎈 선수들의 쎈 토론


1년 전 쯤 저렇게 호들갑 떨면서 ‘멍크 디베이트’를 소개했다. 캐나다의 국격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토론이다. 당시 “가장 최근 토론은 진보(Progress)를 주제로 출전 선수가 스티븐 핑커, 매트 리들리 vs 알랭 드 보통, 말콤 글래드웰이다!”라고 감탄했는데, 바로 그 토론이 책으로 정리됐다. 흥분되지 않을 수 없지 않나.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 4인 대격돌’ 같은 진부한 수식어를 마다할 수 없는 토론. ‘감시국가’에 대해서도 꽤 만족했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일단 선수 수준이 세계 최고면, 토론의 질도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과 비관으로 한 판 붙는다는 것도 핵심 포인트다. 당장 우리는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서도 한편 낙관하면서도 동시에 종종 불안해 한다. 계급장 뗀 자유로운 소통이 민주주의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줄거라 기대하다가도 혐오표현이나 비판 아닌 비방의 전투를 보면 가슴이 죄어온다. 이것은 과연 정답이 있는 질문일까.


인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하는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로서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로 꼽히는 그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최신작에서도 현대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덜 잔인하고 덜 폭력적이고 더 평화로운 시대라 주장했다. 전쟁과 약탈, 강간, 살인 등 고고학, 인류학적 측면에서 분석, ‘폭력의 역사’를 재구성한 그는 데이터까지 과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가 꼽은‘긍정적인 사실 10가지’를 살펴보자.


1.     인간의 생명 : 150년 전 인간의 수명은 30년. 지금은 70년

2.     건강 : 천연두 등 치명적 질병의 퇴치. 소아마비도 곧 없어질 전망

3.     물질적 번영: 두 세기 전 세계 인구의 85%가 극심한 빈곤층. 오늘날 그 수치는 10%

4.     평화 : 강대국 간 전쟁은 60년 동안 한 차례도 없었음. 2차 세계대전 기간 10만명 당 연간 300명이 사망했지만, 2000년대에는 0.2명. 시리아 내전 감안해도 현재 그 수준

5.     안전 : 세계 폭력 범죄율 감소

6.     자유 : 전세계 민주주의 지수는 사상 최고 수준. 세계 인구 60% 이상이 열린 사회의 시민

7.     지식 : 1820년 세계 인구의 17%가 기초교육을 받았으나 지금은 82%

8.     인권 : 현대 인권 주제는 아동노동과 사형, 여성 폭력 등. 과거에는 인신 제물, 식인 풍습, 영아 살해, 노예매매, 이단자 화형, 공개 교수형 등

9.     성평등: 전세계적으로 여성교육 수준은 올라가고 결혼은 늦춰지고 있음

10.  지능 : 모든 나라에서 지능지수가 10년에 3점 꼴로 향상


최소한 저 10가지에 대해 반박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은 알고 보니 깐족거리는데 일가견이 있다.


“‘안나 카레리나’를 아십니까? 이 소설의 어떤 인물도 핑커씨가 이야기한 10가지 때문에 고통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소설이 행복한 이야기였을까요?”


스위스 출신인 보통은 대표적 부자 나라 스위스조차 완벽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이란게 이성에 의해 제거되는 것이 아니고, 빈곤은 GDP가 올라간다고 근절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전쟁이 줄었다한들 인간의 저열함이나 폭력, 잔인함에 뭔 상관 있냐는 식이다. 세계 최고의 석학들을 모은 건 좋았는데, 핀트가 좀 안 맞는다. 가위바위보로 공격을 펼치는데 묵찌빠로 대응하는 느낌이 살짝 든다. 하지만 이 네 사람은 가히 초고수. 공수를 주고 받는 자체를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다. 1만 시간의 법칙, 블링크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 낸 베스트셀러 제조기이자 ‘뉴요커’ 기자인 말콤 글래드웰의 반박을 보자.


“리들리 씨는 서양 역사에서 최고 한직 중 하나인 영국 상원의원이십니다. 그리고 핑커 씨는 하버드대학교 교수인데 이 직위는 미국에서 영국 상원의원에 비견할 만 합니다. 그렇게 볼 때 두 분의 앞날에는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게 틀림없습니다.”


저 대목을 읽다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건 도무지 부인할 수 없는 팩트인 동시에 공감지수를 확 높이는 효과가 있다. 사실 이 네 명이 워낙 잘난 사람이란게 오히려 논의의 보편성(?)을 해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매트 리들리는 옥스퍼드 동물학 박사에 ‘이코노미스트’ 과학 전문 기자였고 역시 ‘이타적 유전자’ 등 명저가 한 둘이 아닌 분이다. 이어지는 글래드웰의 그 다음 주장은 더 기막히다.

 

“캐나다의 앞날에는 더 나은 미래?..확실히 그럴 겁니다. 여러분 캐나다인들은 최근 국가 지도자를 뽑는 과정에서 엄청난 진전을 이뤘습니다. (2015년 10월 쥐스탱 트뤼도가 캐나다 총리에 취임)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가 모두 캐나다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만 해도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의 공화당 대선 후보 토론을 5분만 지켜봐도 캐나다 국경 남쪽 저 너머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낙관적인 명제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를 맞이하는 글래드웰은 어쩌면 조금 더 우울해졌을지 모른다. 글래드웰과 그의 친구들은 미국의 향후 4년이 ‘더 나은 미래’가 될 가능성을 얼마나 보고 있을까. 브렉시트 이후 절반의 영국인들이 깊은 절망과 분노에 빠진 걸 감안하면, 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보통 역시 더 삐딱해지지 않았을까. 사실 지표로 따지면야 ‘한강의 기적’을 비롯해 고성장을 거듭해온 한국은 지난 반 세기 가장 성공한 국가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미래를 마냥 낙관하는 이는 별로 없다. 어쩌면 숫자로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라는 보통의 지적도 곱씹어 볼 만 하다. 사실 아무리 인류 전체가 잘 살아도, 한 줌 기득권층만 상상 못할 자유를 누리는 건 아닌지. 대다수는 중세 소작농이나 근대 노예 같은 노동자에서 얼마나 달라졌을까. 불평등이 심해지고, 차별과 증오가 스멀스멀 힘을 얻는 시대가 아닌가.


진보. 인류의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인가(Progress. Be it resolved humankind’s best days lie ahead...)  이 토론의 관중들 중에 여기에 찬성하는 긍정론자들은 71%에 달했다. 토론이 끝난 뒤, 이들은 다시 투표를 했다. 멍크 디베이트의 특징은 90분 토론을 지켜본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결론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어느 쪽인지는 책을 보시거나, 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길. 인류의 미래에 대해 우리는 늘 진지하다.



이 서평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저널에도 실렸습니다요~  사실은 숙제하느라 정리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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