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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Dec 12. 2016

<개인주의자 선언> 이미 개인주의 시대


책을 <트레바리 36> 클럽에서 읽은지라.. 어찌됐든, 짧게 독후감을 정리하기는 했습니다. '개인주의'라는 것을 새삼 절절하게 느낀 건, 아무래도 주말 사이 '시민의회' 파문 덕분일 것 같습니다. (시민의회 "대표" 유감.. 이라는 이 글을 참고..)


제도권 의회가 제 기능을 다 하고 있는가. 시민이 직접 나서야 하는게 아닐까. 고민은 비교적 분명했고, 어쩌면 시대가 요구하는 상황이라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시민들은 '국회사용설명서'를 다 익힌 듯, 의원에게 카톡과 문자를 보내면서 압박하기도 하고, 주갤러처럼 직접 제보를 통해 국회를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촛불'이란게 그야말로 '개인'으로서 시민들이 참여한 것이지, (그 많은 재미난 깃발들을 생각해보세요. 너도 나도 즐겁고 신나서 만들던 희한한 깃발들) 조직화된 단체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화된 힘'이라는 명제가 이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게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때 개인주의라는 말은 주홍글씨였고, 굳이 글쟁이 판사님이 '선언'까지 하는 개념이었으나.. 이 시대는 이미 '개인주의'로 정의되는게 아닐까,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실감하네요.


겸사겸사, 트레바리에 올렸던 짧은 독후감.. 마감 시간에 쫓겨서 20분 만에 마구 썼던 소감을 옮겨놓습니다.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 개인주의자에 대한 어떤 설명보다 마음에 든다. 개인의 행복 따위는 언제든 희생될 수 있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성장한 이들은 다들 마음 한구석 불충함을 숨기고 있다. 배신자로 낙인 찍히기 싫다는 불안에 정해진 룰을 따르면서도 늘 흔들리는 마음들. 그렇게 살아온 세대인가 싶다. 


인류는 신에 대한 신앙으로, 군주에 대한 충성으로, 개인은 늘 뒷전이었다. 경제가 어려워도, 나라가 위기에 빠져도 늘 ‘애국’이 우선이었다. 오랜만에 개인의 창의성이 더 평가받는 시대를 맞아서도 소심하게 개인주의를 탐하거나, 유치하게 개인주의를 뻐긴다. 더구나 이 사회는 뿌리 깊은 꼰대들의 세상. 우리에게 각인된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은근히 깊다는데 종종 좌절하지 않던가.

...


저자는 ‘개인주의’라는 말을 법학 서적에서 제대로 배웠다고 한다. “그 불온한 단어야말로 르네상스 이후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이라는 역사적 진실. 인류는 기껏 수술법을 연구하고도 인간을 치료하는게 신의 뜻에 반할까봐 그걸 버리기도 했다. 도구로 시도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겸허하게 포기했다. 신의 이름으로 그렇게 중세 천 년 암흑기를 보냈다. 그리고 인류를 다시 구원한게 ‘개인’이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신 대신 인간을 노래한 ‘신곡’이 그 분기점이다. 개인주의라는 단어 앞에 설레이는 게 본능 아닐까.


책은 개인주의자 선언을 위한 서문이 가장 좋다. 문유석 판사의 글은 <판사유감>이라는 전작에서 홀딱 반했는데, 글의 유려함보다는 ‘세상을 성찰하는 법관’이라는 개인에 끌렸던 것 같다. 그의 생각과 독자로서 내 생각의 싱크로율이 높아서, 판사라는 지위에 걸맞지 않게 개인주의적인게 매력적이라서 글이 좋긴 하지만, 감동에 눈물 흘릴 정도는 아닌 듯. 전작 <판사유감>에서는 심지어 울어버리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나저나 술자리에서 내가 그날 처음 뵌 문판사님에게 트레바리 하시라고 강하게 설득했던 걸, 그 분은 기억하실랑가. 

언제나 그렇듯, <숙제 끝>에 의의를 두겠다.



장금아, 사람들이 너를 오해하는게 있다. 네 능력은 뛰어난것에 있는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데 있어. 모두가 그만두는 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시작하는 것. 얼음속에 던져져 있어도 꽃을 피우는..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한상궁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집단 내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 기준인 사회에서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야 비로소 


우리 사회는 누군가 강력한 직권 발동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악인을 엄벌하는 걸을 바란다. 정의롭고 인간적인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나타나는 사회..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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