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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an 03. 2016

<밤이 선생이다> 뒷북 간단 정리


그 시절에 우리는 모두 괴물이었다.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에 사람들은 분노를 내장에 쌓아두고 살았다...유신시대의 젊은이들은 자기 안의 무력한 분노 때문에 더욱 불행했다. <밤이 선생이다>

뒤늦게 읽기 시작. 가슴이 뛴다.


그러나 정작 비극은 그 다음에 올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다른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말쑥한(진은영 용산 멜랑콜리아) 

가슴이 철렁했다. 찔리는 곳을 들킨 것 마냥. 현실이 그렇다. 말쑥한 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는 살아간다. 쫓겨난 이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는지 굳이 궁금해하지 않겠지. 


그때부터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우리가 아는 정의, 평화, 혹은 민주주의. 많은 단어가 뜻이 바뀌고 있다. 황현산 선생님 글은 왜 이렇게 콕콕 가슴을 후벼 파는가. 어딘지 피를 차갑게 식히면서. 


그의 시는 이 모욕 속에서, 이 비루함 속에서 이렇게밖에 살 수 없다고 생각하려던 사람들을 다시 고쳐 생각하게 한다. 인간이 수수 천년 사용해온 말 속에는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고통과 슬픔이, 그리고 희망이 

시가 그런 거였다.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고통과 슬픔, 희망을 노래했다. 우리가 잊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들. 그래서 오늘날은 시를 읽지 않는 시대다. 


이 유례없는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 있다. 그렇더라도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때 그 무거운 마음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도 우리의 의무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듯이, 나라 잃은 백성이 독립운동하듯이. 

마음 무거운걸 피하지 않는다는게, 그게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걸. 때로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걸, 아마 0416 그 때 마음으로 깨달은 것 같다. 여전히 어렵다. 


한말의 지적 열기..나라가 망했다고 그 열기가 헛된 것은 아니다..온갖 수단으로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의 열정으로 이어졌고, 광복후 민주적 문화와 사회를 건설하려는 노력의 토대..열정의 시간속에서 막다른 골목은 멀리 흐르는 강이 되었다. 

누군가 그랬지. '암살'의 안윤옥 같은 이들이 상징하는, 아니 김구와 김원봉 등 독립운동가들은 35년의 식민지를 버텨냈다. "해방이 이렇게 일찍 올지 몰랐다"는 친일파와 달리 그들은 기약도 없이 한 해 한 해, 그렇게 싸웠고,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기반이 됐... 될 뻔 했지. 


'술' '담배' 노래 금지곡.. 나는 이 조치가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착한 마음에서 비롯하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저 환상적으로 엄혹했던 유신 시절의 독재자도 국민들을 나태와 방종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착한 생각이 마음속에 가득 <밤이 선생이다>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착한 마음..  게임으로부터, 음란함으로부터..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밤이 선생이다> 


개혁의 시대에는 열정을 지닌 개인의 과격한 언어들이 밑바닥 진실의 힘을 업고 관행의 언어들을 압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개혁 프로그램들이 한때 무기로 삼았던 과격한 말들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무산된 예를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관행의 언어를 압도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구호와 선동이 아니라, 실체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대개 말 뿐이란 얘기인거지.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부도덕자 취급..개인의 행불행을 그 사람의 도덕성에 연결..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지 못한 사람들..도덕을 빙자해 두 번 죽이는

모든 것은 개인의 책임. 바르게 사느냐 마느냐 다 당신 책임. 그냥 그런거라 생각했는데 선생은 말한다. '도덕을 빙자해 두 번 죽이는 거'라고. 잔인한 사회의 무심한 말들. 


2주에 걸쳐 야금야금 독서. 탈탈 털린 듯 피곤한 밤, 신경줄 날카롭던 퇴근길 지하철에서. 굳이 펼쳐들 때 마다 마음을 차분하게 달래주는 효과를 누렸다. 정갈한 문장, 담담하게 전갈되는 삶의 가치와 기준. 진통제 같은 위안이었다. 


선생님 트위터가 요즘 내게는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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