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만 열아홉. 1월에 태어난 아이를 누나 따라 학교 일찍 보냈더니, 군대도 일찍 가는군요. 바이러스의 시대, 집밥 정선생으로 거듭나며 날마다 밥상을 차렸습니다. 25년 만에 일을 쉬는게, 저도 다 계획이 있었나 봅니다. 평일에 아이들과 식탁에서 마주한 적 없는 지난 세월이 아쉽기도 했지만요. 그래도 잘 자란 아이들을 보며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는 책 제목이 틀리지 않았다 생각합니다. 비록 엄마의 빈틈이 중학생을 롤 다이아 등급으로 키우긴 했지만, 인생에 의미 없는 시간이 있겠습니까. 21세기를 살아갈 아이를 20세기 엄마 눈으로 보는 한계를 생각해야죠. 세월의 무심한 속도에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아들 입대 날이 바로 그런 순간일 뿐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덕분에 혹시 입대가 연기될까 했는데 그런 상황은 오지 않았습니다. 군대는 오히려 청정지역이란 얘기를 들었는데요. 논산훈련소는 코로나로 입대 행사는 따로 갖지 않는다는 안내와 함께, 가족들 중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은 아예 출입을 금하더군요. 이렇게 사람 많은 곳은 몇 달 만에 처음인데 다들 마스크 쓰고 손 흔들고 돌아섰습니다. 주차장은 붐비지만 질서 있게 정리되고, 마스크 쓴 어린 군인들은 친절했습니다. 부디 끝까지 바이러스 청정지역으로 지켜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입영통지서에는 다 필요없다, 깔창도 준다고 써있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또 막상 노점상이 줄을 이어 뭐라 하시니 귀가 얇아집니다. 발가락 물집 방지 밴드 5000원, 에어 깔창 1만원, 전자시계 3만원에 구입했습니다. 미리 알았어도 현장 가면 생각이 달라지는 법이겠죠. 평소 시계를 보지 않는다는 아들도 결국 뒤늦게 혹하더라고요. 개인이 시간을 관리할 수 있는 곳은 아니라 생각하는데 마음의 괜한 허기 같은게 이것저것 사게 만들더군요. 누군가는 참고하시라고 기록해둡니다. 이런 바가지는 써드리는게 경제에 도움이 될랑가요. 도심(?) 골목의 테이블 세 개 짜리 허름한 중국집 태화루 강추합니다. 갓 튀긴 만두도 써비스로 주시고, 탕수육과 짜장면 솜씨가 훌륭합니다. “난 찍먹인데”, “나두”.. 아들과 교감을 나누면서도 워낙 맛있어서 부먹으로 잘 먹었어요.
평소 책을 멀리해온 아이가 최소한 훈련소에서는 디지털 디톡스를 하면서 과연 책을 읽게 될지, 어떤 전우들을 만나서 인연을 쌓을지 생각이 만 갈래로 흐릅니다. 군대가 많이 달라졌다는 신뢰를 갖고 있습니다만, 엄마로서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게다가 바이러스로 인한 면회 금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서 일단 차분하게 마음 다잡아봅니다. (사실 안 차분해요. 생각 복잡해요. 그래서 다짐하는 겁니다)
왜 여자는 군대를 가지 않느냐, 진지하게 항의했던 아들과 대화도 기억합니다. 2017년 여성 군복무 의무화 국민청원 덕분에 현황 검토하다가 사실 경악했습니다. 끝내 답변은 하지 못했지만, 2010년과 2014년 헌법재판소가 남자에게만 병역 의무를 지우는 병역법에 합헌을 결정한 이유는, 여성의 신체적 특징이 다르고(약하고), 여자가 입대하면 군의 풍기문란이 우려되며, 군의 시설이 남성 기준이라는 거였어요. 몹시 낡아빠진 이유 아닌가요. 군 복무 방식을 다양하게 만들어 남녀 모두 국가와 사회에 대한 헌신할 기회를 주는게 맞지 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최소한 이런 논의라도 시작해야, 아들과 아들 친구들의 문제 제기에 답할 수 있다고 봐요.
아들이 젠더 감수성을 더 갖추기를 간절히 소망하는데, 군 생활이 도움이 될까요. 폭력을 견디라고 하는 시대가 아니란 점은 감사합니다만, 기왕이면 군에서 양성 평등 교육을 비롯해 차별하지 않는 태도, 시민의식도 길러주면 좋겠습니다. 군대 가면 사람된다고 하는 옛말이 인내, 순응과 연결되던 시절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젠더 교육, 민주주의 교육, 생태 교육까지 해주면 어떨까 상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