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추첨으로 뽑으면 어떻게 될까요?"
불과 며칠 전에 마침 누군가 말했습니다. 추첨제. 웃고 넘겼습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느냐, 질문을 던지다보니 별 상상을 다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이 책을 어떤 기분으로 봤겠어요. 세상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전통 있는 평등사회의 제도를 무시했다니.
그리스 민주주의에 그다지 호감을 가지지 않았어요. 여성에게 투표권, 참정권을 주기는 커녕 시민으로 존중 않던 시대적 한계에 삐딱했던 탓이죠. 이 책의 1장이 맘에 든건, 제 무지를 깨우쳐줬기 때문입니다. 추첨제에 대한 철학과 의식도 분명했고, 정교합니다. 예컨대 추첨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자발적 의지라는 기준을 넣고, '소명'을 갖도록 하다니. 사후 검증 절차도 깐깐하고 교차 견제하려는 힘의 균형 시스템도 갖췄습니다. 입법과 사법과 행정 제도가 각기 다른 것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구조입니다. 그리스에 대한 감탄은, 피렌체 시대의 제도로 넘어가면서 나름 탄탄한 역사를 구축해온 추첨제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이어지고... 몽테스키외와 루소의 언급에 이르면.. 대체 미국과 프랑스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건가 싶습니다. 9월 모임에서 <페더럴리스트>를 통해 공부하지 못한게 뒤늦게 아쉽군요.
부산행 기차에서 신나게 절반 읽고 독후감 1차 정리. #트레바리 #국경 클럽 토론은 겁나 재미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엘리트', '귀족', '부자'를 선출하는 선거보다 모두가 평등한 '추첨'이란게 민주주의의 출발이었다는 역사를 마주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죠.
아테네 행정부 700명 가량의 행정직 중에서 600명 정도가 추첨을 통해 충원됐다고요. 임기 1년. 평생 다른 행정직에 임명될 수는 있지만 동일한 직책은 한 번만. 30세 이상 시민들(기원전 4세기 약 2만 명) 중에서 직무 수행을 위한 법적 자격 외에, 부모를 대하는 태도, 납세 실적, 군 복무 등 최소한의 심사를 거쳐 임명됐다고 합니다. 미숙하거나 무능하면 임기 중에 직무 정지를 요구할 권리는 시민에게 있었고, 모든 시민들은 행정관이 되면 직무 결산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 탄핵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소송에서 지면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 등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원하는 사람만 이름을 추첨 기계에 넣었다고요. (27~28쪽)
투표로 선출된 행정관은 동일한 직책에 '재선'도 가능하고, 임기 제한 없어서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는 20년 넘도록 최고위직 장군으로 선출됐다고 합니다.
제도가 재미있는게 이들은 (그저) 관리자이자 집행관. 민회의 의제를 준비하고, 소송에 앞서 예비심사를 하고, 법정을 소집하고 주관하기는 하지만 정치적 선택을 내리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건의를 하고, 의안을 제출하는 권한은 공직자의 특권이 아니었으며, 원칙적으로 그 권력은 그것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모든 시민에게 속한 것(31쪽)이었다죠. 모든 시민에게 법안 비합법성 기소권이 있었다고요.
배심원은 별도로 6000명을 추첨으로 뽑았고, 사안에 따라 그 중 501명, 1001명, 1501명이 법정에 들어갔고, 하루 품삭 절반 정도를 줬는데 대부분 빈민층이나 노인들이었다고 하네요. (헬리아스타이, 35쪽)
행정, 입법, 사법 모두 '일'은 추첨 혹은 선출된 이들이 하고, '정치적 결정'은 시민이 해온 고대 민주주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추첨을 통해 집정관을 지명하는 것은 민주적인 것이고, 선거에 의한 것은 과두적"이라고(45쪽) 했답니다. 선거는 과두정치나 귀족적인 것. 추첨은 전문가 중심의 정치에 대한 민주주의자들의 깊은 불신을 반영하는 것이었고, 이들은 선거가 그런 평등을 보장할 수 없으리라는 직관을 가지고 있었다(61쪽)는 겁니다.
아테네만 특이한건 아니고 시민적 인문주의와 공화주의 부흥의 지적 중심지였던 피렌체에서, 공화주의 체제의 핵심은 추첨을 통한 행정관의 선출 이었다고요. 관직 분배를 인간의 영향력 밖에 있는 절차로 바꾸어..그 독특한 공평무사성으로, 갈등하는 파벌들로 하여금 그 결과를 좀 더 쉽게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추첨제에 대한 설명도 설득력 있습니다.(77쪽) 로마에서 재산 자격을 따진 '금권정치'도 흥미로운데, 가난한 시민과 부자의 표가 똑같지 않았던 역사도 여기서 나옵니다. 다만 낮은 계층은 부유한 엘리트 사이에서 갈등과 분열이 있는 경우에 그것을 중재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요. (72쪽) 선거는 '좁은 정부(귀족 정부)', 추첨은 '넓은(열린) 정부'라는 이분법적 정리가 15세기 일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힘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의 차별이 없어야 하며, 공직에 대해 "가능한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철학. 당대 정치가 구이치아르디니의 공화주의는 이랬습니다. (86쪽)
몽테스키외는 추첨의 명백한 결점, 무능한 이들이 선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바로잡는 것을 입법자의 몫이라 보면서 추첨에 '지원'하거나, '심사'받거나, '고발되는' 절차를 주목했고요. 루소 역시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정의 본질"이라는 몽테스키외에 동의했습니다. "인민이 주권자이고 동시에 정부"라는 말을 여기서 또 확인합니다.(101쪽) 문제는 루소 이후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미국과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추첨이 사라진 것.. 귀족적이라 여겨졌던 선거의 시대로 넘어갑니다. 미국 민주주의 초창기 "헌법에 규정된 대표성은 가장 부유하고 중요한 계급의 이익을 위해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했던 얘기가 나오기는 하는데, 귀족 대신 '부, 지위 또는 재능에 의해 주어진 사회적 우월성' 개념이 등장하죠. (145~146쪽)
추첨제는 '우리를 대표하는 이가 우리'라는 동일성을 갖고 있지만, 선거제는 '최고의 지혜', '최고의 덕'을 가진 이들, 동료 시민보다 우위에 있는 이들을 뽑습니다. 이게 누구나 한 표를 똑같이 행사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지만, '선택된 소수'는 견제를 필요로 합니다. 그게 계속 선거를 치르도록 요구하는 구조를 만들기도 했고, '소환제'의 역사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 책을 함께 읽은 #트레바리 #국경 클럽의 직전 9월 책이 미국 정치사를 다룬 <페데럴리스트>였는데, 바빠서 그 모임은 걸렀거든요. 기왕 공부하려면 같이 볼 걸.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훌륭한 통치자가 된다거나(트럼프 대통령이 부자이긴 했죠), 많이 배운 이들이 더 낫다는 건 착각이죠. 한국의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일을 망친 이들 중 상당수 역시 서울대 나온 법률가, 학자들 아니었던가요.
대의제의 민주적 특징인 '여론의 자유'도 생각할 여지가 많습니다. 투명하게, 의견을 공개하고, 피통치자들 스스로 연결시키는 효과를 가지는게 여론. '자신들이 서로 비슷한 시각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때, 각각의 개인들은 자기만이 어떤 특별한 의견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사람들이 고립되지 않았다고 느낄수록, 그들은 자신의 잠재적 힘을 더욱 깨닫게 되고, 스스로를 조직할 능력을 더 많이 갖게 되며, 정부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213쪽) 우리는 이런걸 국민청원을 통해 경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중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청원을 통해 움직이는 것을 놓고 대의제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했던 일부 보도들이 떠오릅니다. 여론조사의 경우, 특정 사회 집단이 주제를 선택하고, 질문을 제시한다는 특징이 한계입니다.... 토론의 여지가 많습니다. 모든 법안은 토론의 심판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우리 의회가 토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지배 엘리트와 평범한 시민 사이의 간극이 좁혀졌는지, 아니면 유권자가 그들의 대표에 대해 갖는 통제권이 증대되었는지조차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리낌 없이 오늘날의 대의 체제를 민주주의 정체로 분류한다... 하나의 역설.. 원래는 비민주적이라고 이해되었던 대표와 그들이 대표하는 사람 간의 관계가, 오늘날에는 민주적인 것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287쪽)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저자의 결론과 마주하면 당혹스럽습니다. 번역된 제목은 '선거는 민주적인가'라고 묻지만, 사실 책 중반 이후에는 대의 민주주의의 여러가지 모습을 살펴보거든요. 원래 제목 자체가 '현대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비판적 고찰'입니다. 어떤 제도가 시대를 초월해 완벽하긴 힘들텐데, 그러면 뭔가 보완하는 절차와 장치들이 분명 필요합니다. 토론에 대해, 여론에 대해, 국민소환제에 대해 논의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저는 정치학도가 아닌지라, 책이 좀 어려웠습니다. 중간중간 딴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계속 질문이 떠오르는 책이라 좋았습니다. 토론 과정에서 추첨제는 아테네처럼 '시민 규모'가 적을 때 가능한거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는데, 저는 선거구 조정을 통해 해결 가능한 문제로 봅니다. 정치가 원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라고 할 때, 선출된 이들이 부자나 권력자를 '과대표'하는 문제, '이해관계'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구성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보완 장치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지역구 기반으로 선출된 이가 의회에서 활동하는게 2020년 이후에도 계속 유효한 방식인지, 그것도 따져볼 일입니다.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 누구를 비례해 대표해야 할지, 그 룰도 다시 얘기해야 할 것 같고요. 우리 입법가들은 오래된 제도, 본인들에게 불리할게 없는 제도를 고치는데 소극적이지만, 주권자인 우리는 공부 좀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뉴욕대 교수인 버나드 마넹의 이 책은 1997년에 나왔습니다. 아, 이런게 고전이구나, 공부하는 재미가 있네요.
페이스북에서 '버나드 마넹'을 검색하면 천관율님의 짧은 리뷰가 나옵니다. 책을 읽는 족족 까먹어서, 나중에 찾아보기 위한 용도로 주절주절 정리해두는 저와 달리 명쾌하게 요약. 저만 감탄할 일은 아닌지라, 링크와 함께 퍼날라봅니다.
주민소환제는 민주적인가 반민주적인가? 정당공천은? 비례대표제는? 지금껏 내가 제도설계 차원에서만 다뤄 왔던 질문들을 뒤집어버리는 정치사상의 계보학. 한번쯤 들어본 모든 정치적 아이디어의 놀랍고 역설적인 계보를 드러냄으로써, 우리 시대의 아이디어들을 거의 전부 새롭게 보도록 만든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지층을 탐사하는 지질학적 시야를 장착시킨다.
책은 300쪽 남짓해서 아주 만만해 보이지만, 정작 펼쳐보면 요약이 불가능할 정도의 밀도. 제목에 대해서만 짧게 메모하자면, 정치사상의 계보에서 선거란 '민주주의에 반하는 귀족주의적 아이디어'였다. 민주정과 선거의 결합이야말로 진정 흥미진진한 사건이었으며, 그것이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를 특징짓는 핵심 융합이다. 이 짧은 책에서 이런 식의 역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요약이 불가능할 정도의 밀도'라는 말씀에 동의. 촘촘하게 책장을 접었습니다.
#트레바리 #국경 파트너 오윤근님이 준비해주시고, 이끌어주신 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