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에 대한 교과서 같은데 결론이 겸손해지라는 것이라니. 운이 좋을 뿐이란 걸 인정하는 건 쉽지만 그리고?
21년 1월 #트레바리 #기막힌논픽션 책이라 그때 리뷰도 남긴줄 알았더니.. 달랑 저것 뿐? 22년 4월 #국경 모임 책이라 리뷰가 필요한데 망했다. 브런치 서랍에 메모만 남아있었다.
얼마전 아들이 블라인드 채용이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라고 한 것 아니냐, 그럼 그만큼 보상이 있어야지 학력을 가리고 경쟁하려면 뭐하러 노력하냐고 했다.
순간 당황했으나 침착함을 유지한 나란 엄마. 얘야, 네 말대로 열심히 공부한 결과물이 학벌이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면학열 높은 동네에서 부족함 없이 공부한 것도 특혜일 수 있단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건 이미 공정하지 않지. 또 단순히 학벌이 아니라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수업을 듣고, 좋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미 또 얻는게 많아. 블라인드 채용은 그런 상황을 딛고 같이 겨뤄볼 기회를 주는 거지. 아주 최소한의 공정 아닐까?
학력이 모든 능력의 척도도 아니지. 대학 입학의 기준일 뿐이야. 샌델 가라사대, '가장 뛰어나고 가장 똑똑한 자들'이 정치를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은 능력주의적 교만에 기초한 허구'라 했지. 사실 현실세계에서 매번 확인하는 사실이기도 해.
"성공은 미덕의 증표. 나의 부유함은 나의 몫. 이런 식의 사고는 힘을 내게 해준다. 스스로 자기 운명의 책임자. 우리보다 운이 덜 좋았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힘들어진다. 내 성공이 순전히 내 덕이라면, 그들의 실패도 순전히 그들 탓이 아니겠는가. 이 논리는 능력주의가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논리.." (106쪽)
메리토크라시 조금 들여다본 수준에 불과하지만, 실전에서 아이와 논쟁을 벌이다니. 당연히 엄마 승.. 아이가 공부 좀 더 하고 얘기 다시 하잔다. 와이놋. 엄마가 이런 사람인거 네가 운이 좋았던 건데 알랑가 모르겠다.
같은 책으로 1년여 만에 독서모임 토론을 가졌다. 그래도 가장 어려운 건 아들과 대화하는 일이다. 능력이 아니라 노력해서 얻은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건 문제라 생각한단다. 노력에 따른 정당한 보상 대신 덜 노력한 이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라는 블라인드 채용을 공정하지 않다고 하는 논리. 아들이 밀렸다. 평소 이런 책 좀 들여다본 보람이..
토론도 만만찮았다. 단순화하면 성공이 노력의 댓가가 아니라 운이라면 노력할 이유가 있겠냐는 질문. 그리고 아이유가 학벌 좋아 성공한게 아니듯, 학벌주의도 시대에 뒤떨어진 얘기란 지적도 나왔다.
성공에 운이 따랐다고 해서 노력의 필요성이 없다는 식의 극단적 사고는 곤란하다. 노력의 의미를 폄하할 이유가 없다. 사람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일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기회를 차단하는게 문제다. 특별한 아웃라이어 개인들 외에 대다수에게 학벌주의는 여전히 강력하고, 엘리트 대학생은 여러가지 혜택을 받고 출발한다. 투명인간처럼 지워진 비 엘리트 청년들의 고통을 다 노력 부족이니 감수하라고? 노력을 할 수 있는 환경조차 운이다. 운을 인정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건 논의의 종결이라기보다 시작점이라는 ㅈㅊ님 얘기에 공감한다. 그렇다면 겸손과 존중이 솔루션일까? 이를 위해서는 메타인지를 높여야 하는데, 이게 어렵다는 ㅌㅎ님.
자본주의는 불평등,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능력주의는 강자가 누리는 것을 정당하게 만들고, 약자에 대한 연대를 약화시킨다. 이 책은 2020년에 출판됐는데, 미국 사회는 돈으로 아이비리그에 들어간 스캔들 때문에 난리였다. 한국은 표창장 이슈가 컸고, 현재진행형이다. 실제 어느 한 가족 얘기라 할 수 없다. 엘리트 부모들이 시스템을 활용해 아이들에게 유리한 걸 세습한 사례는 넘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 중 일부는 자기들 노력만 생각한다. 노력했으니 정규직이 되는게 당연하고, 덜 노력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드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보상의 차별이 벌어지는게 공정하다고 한다. 부당세습에 분노하지만 몹시 선별적이다. ㅌㅎ님 말대로 미디어로 인해 포지티브 프로파간다가 먹히지 않고, 네거티브 프로파간다만 어필하니까, 또 이슈를 차별하니까. 겸손해야 한다는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겠지.
사람을 편가르고 계급 나누고, 가르는 기준을 어떻게든 만드는게 우리네 속성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결국 사람이 먼저다. 약자를 루저로 보는 대신 존중하려면? 다 같이 행복하자고는 못해도 적어도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려면? 결국은 기승전 기본소득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고, 기본소득이 계급사회를 더 공고하게 만든다는 얘기도 나왔다. 능력주의 대신 겸손하게, 그리고 누구나 존엄을 유지하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이 가능하려면 더 뭐가 필요할까.
줌 토론에 이어 밤에 ㅅㄱ님이 단톡방에 남긴 글. 토론의 위엄이랄까.
“아까 ㅎㅅ님이 던져주신 인국공, 기간제교사 문제와 능력주의의 문제를 좀 더 생각해봤습니다. ㅈㅊ님이 제시해주신 능력주의의 정의는 "정원이 정해진 집단에 속하게 된 사람만 과실을 취할 자격이 있다"는 명제로 다시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능력주의의 본질은 제로섬게임(사다리 걷어차기가 이루어지면 마이너스섬?)이고, 능력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제로섬의 감각을 체화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로섬은 일단 협력, 연대와는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기도 하고.... 아까 토론에서 이야기했던 능력주의에 따른 불평등의 심화로 부실해진 사회적 안전망과 제로섬의 감각이 합해지면 인국공, 기간제교사 문제때 사람들이 보였던 반응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 샌델쌤이 하고 싶었던 말은 "'(제로섬 게임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의 평등'보다는 (모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지켜지는 파지티브섬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의 평등'을 구현하는 사회가 더 정의로운 사회이다"라고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모두에게 신분상승의 기회가 열려있는 아메리칸 드림 !' 같은건 더이상 그것만으로는 정의로운 사회의 조건이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게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the tyranny of meritocracy'는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마음'보다는 아마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과 유사한 맥락에 있다고 보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하, 21년 1월의 밑줄 메모 붙여놓는다. 제 때 정리를 했어야ㅠ
제러드 쿠슈너는 250만 달러 기부하고 하버드. 트럼프는 트럼프 주니어와 이방카가 다닐 때 와튼스쿨에 150만 달러 기부.
수만 달러 사설 입시 컨설턴트가 만들어주는 입시 스펙. 무용, 음악 레슨. 펜싱, 스쿼시, 골프, 테니스, 조정, 라크로스, 요트 등 엘리트 체육. 해외 봉사활동 알선. 고급 교과과정(AP) 이수 등.
입시 목매는 건. 최근 수십년 점점 불평등이 늘어난데서 기원. 학사와 고졸 소득 격차 벌어지고.
민주주의의 위기. 트럼프가 각종 불안, 고민, 합당한 불만의 결과 당선된 것. 주류 정당들은 그런 불평불만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함.. 단순히 경제적 불만 뿐 아니라 도덕적, 문화적 문제라는 거 인정해야. 임금과 일자리 뿐 아니라 사회적 존중과 관련. (42)
실패의 핵심은 주류 정당이 지난 40년간 공공선(public good)을 기술관료적으로 인식. 승자와 패자를 능력주의적으로 정의..
시장주도적 세계화는 불평등 시화. 국가적 정체성과 애국심 약화.. 보호주의, 종족주의, 갈등.. 협소하고 파편적 정체성으로 치부. 민주당은 기술관료적 자유주의 정당으로서 한때 그 지지기반이던 노동자, 중산층 유권자 대신 전문직업인들에게 한껏 기울어져 있었다. (46) 민주당은 불평등 심화와 금권정치 강화에 대해 별 내색을 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를 길들이고 경제권력을 민주적으로 제어한다는 원래의 사명에서 벗어난 진보 진영은 그 매력을 상실해 버렸다. (47)
사회적 상승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 기회의 평등을 늘림으로써 증가하는 불평등에 대응.. '누구나 재능이 이끄는 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사회적 상승 찬가'는 이제 속빈 강정이 되었다.
하버드와 스탠포드 2/3는 소득 상위 5분위 출신. 아이비리그 대학생 중 하위 5분위 출신은 4% 미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스스로 불렀다. 직접민주주의 내켜하지 않았다. 선동정치 우려. 간접선거로 능력주의적 통치 도모..
기술관료들은 공동선을 GDP로 환산할 수 있는 걸로.. 정치 논쟁에서 중요한 도덕적, 시민적 문제들 즉 '불평등 증가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국경 문제에서 살펴야 할 도덕적 부분은 무엇인가?' '일의 존엄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우리는 시민으로서 서로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하나' 등이 소외되고 있다. (57)
마이클 영. <The Rise of the Meritocracy> (1958)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퍼뜨릴 것.. 노력, 성과에 대한 당연한 보상 vs 실패자는 다 내가 못난 탓.. 능력주의는 사회적 불화를 불러오는 제도.
2.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
신의 섭리. 가뭄과 역병은 죄에 대한 징벌. 배가 폭풍을 만나면 선원 중에 누가 신을 노하게 한 것.. 여기서 이어진다. 부는 재능과 노력의 상징이며, 가난은 나태의 상징.
루터는 구원받을 자의 선택은 주어지는 것. 개인의 노력과 상관 없다. 칼뱅, 구원은 은총. 인간의 실적이나 자격에 구애되지 않는다... 소명으로서 직업이라는 칼뱅주의 관념이 청교도 직업윤리에 녹아들면서, 구원은 힘써 얻는 것. 세속적 성공은 구원받은 사람의 훌륭한 증표로 등극.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 자수성가의 윤리는 감사와 겸손의 윤리를 압도. 신에 대한 믿음이 퇴보하면서 인간 능력에 대한 신뢰가 힘을 얻었다.. 운 좋은 사람은 운이 좋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대신, 자신이 그런 행운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납득할 필요가 있다. 그럴 자격이 있다. 그럴만 하다.. 고.
2008년 금융위기, 세금으로 구제금융. 그러나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은 스스로에게 수백억 달러 보너스. "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쑥대밭으로 만들자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성적 타락, 죄업으로 얼룩진 악의 도시에 대한 신의 응보라고 선언. 2009년 아이티 지진으로 20만명 숨지자 악마와 계약 결과. 제리 폴웰 목사는 9.11 당시 미국의 죄에 대한 신의 응보.
21세기 초, 번영 복음은 근면한 노동을 장려하고 사회적 상승, 적극적 사고 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아메리칸 드림 자체와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미국은 선하기 때문에 위대하다 .. 능력주의 신념을 국가에 적용 .. 부유한 개인은 자신의 미덕으로 부유해진 거라는 도덕론적 능력주의적 아이디어를 밀어내기란 쉽지 않다. 국가의 도덕적 특권을 인정한다면.. 같은 논리가 1%에게도 적용.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 은총 받았다.
3. 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성공은 미덕의 증표. 나의 부유함은 나의 몫. 이런 식의 사고는 힘을 내게 해준다. 스스로 자기 운명의 책임자. 우리보다 운이 덜 좋았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힘들어진다. 내 성공이 순전히 내 덕이라면, 그들의 실패도 순전히 그들 탓이 아니겠는가. 이 논리는 능력주의가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논리 (106)
능력주의적 직관은 정치적 성향 불문. 소수집단 우대정책 경우..나는 죽어라 노력해서 하버드에 왔으며, 따라서 나의 지위는 능력으로 정당화된다고 여긴다.
"그 자신의 실수가 아닌 일로"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공동체의 도움을 주겠다는 레이건 연두교서. 철저히 개인에게 책임. 빌 클린턴과 오바마는 레이건보다 이 문구 두 배 사용. 은연중에 도움 받을 바격이 있는 가난한 사람과 그런 자격이 없는 가난한 사람을 구분. (113)
클린턴은 공약으로 "우리가 알고 잇는 복지를 끝내겠다".. 개인 책임 원칙.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복지 혜택을 줄 것. 그들이 받는 복지 수혜 기간을 한정할 것. 블레어도 새로운 복지. 기회와 책임이 함께 가도록. 야스차 뭉크의 지적처럼 이제 책임이라 "우리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이자, 그렇게 못할 경우 겪게 될 고난에 대한 책임"
사회적 상승 담론은 오바마의 핵심 테마. 능력주의 지향. .. 레이건 취임 당시보다 2018년 4배나 많이 NYT에서 사용된 "자격이 있다"는 말. 클린턴은 레이건의 두 배, 오바마는 세 배 쓴 말. 트럼프는 쓰지 않는 말.
트럼프와 브렉시트, 포퓰리스트 정당에 표를 던진 노동계급 사람들은 사회적 상승에 대한 약속보다는 국민 주권 원칙의 재확인, 국가 정체성과 국가적 자존심 등의 강조에 동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123)
중국의 소득 불평등 수준이 미국과 엇비슷. 미국보다 세대간 이동성 정도가 높다.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이 중국보다 밑바닥에서 위로 올라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뜻.. 아메리칸 드리은 플라톤의 '고귀한 거짓말'. 사실은 아니지만 시민들이 불평등을 정당하다고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사회의 조화를 유지.
4.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
학력 자기방어에 나선 트럼프와 바이든. 내가 얼마나 엘리트인줄 아느냐.
브렛 카바나. 인사청문회에서 성폭력 고발을 묻자, 혐의를 부인했을 뿐 아니라 뜬금없이 학력 변호.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아느냐, 예일대 로스쿨 입학.. 대학 학력의 무기화. 능력주의의 폭정. 세계화 시대는 노동계급에게 큰 폭의 불평등 확대를, 임금의 정체를 안겨주었다. 가장 부유한 10%는 대부분의 이익을 챙겼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진보 정당은 이 불평등을 다루지 않았고, 경제의 구조 개혁을 외면했다.
학력주의는 노동계급의 사회적 지위에 악영향. 1) 미국인 학사 소지자는 3명 중 1명. 힘든 상황을 자업자득이라며 은연중 멸시. 2) 학력이 떨어져 그런 꼴이 된거라며 능력주의자들이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일에 도덕적 정당성 부여. 학력주의를 조장하고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고약한 편견.
오바마 두번째 임기 내각 삼분의 이는 아이비리그 출신. 호화찬란한 학력자로 내각을 꾸린 케네디.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늪으로. 정치적 판단 착오는 능력주의적 오만과 무관하지 않다... 월스트리트는 전문직업인 동료.. 혁신가들.
'스마트하냐 둔하냐'는 '정의냐 불의냐', '옳으냐 그르냐' 등의 윤리적 이념적 비교평가를 대체하기 시작. 클린턴과 오바마는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닌, 실행해야만 스마트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윤리적 옳음보다 스마트한게 백 배 낫다는 인식을 심을 수 있다.
엘리트는 편견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에는 반대할지 모르나, 저학력자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는 '그러면 어때?'라는 태도.
1960년대 상원 하원 1/4, 비대졸자. 지난 50년 의회는 인종, 민족, 성별에 있어서는 더 다원화됐지만 학력과 출신계층에서는 훨씬 일원화.
좋은 통치는 실천적 지혜와 시민적 덕성을 필요로 한다. 공동선에 대해 숙고하고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 둘 중 어느 것도 대학에서 함양될 수 없다.
오늘날 고학력자들은 중도좌파 정당에 투표하며, 저학력자들은 우파 정당에 투표한다.. 피케티는 이런 패턴 역전이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놀랄 만큼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바마는 민주적 반대란 보통 사람들이 충분한 정보가 없어 생기는 거라고 여겼다. 정보 부족이 문제라면 해법은 정보를 충분히 아는 사람이 동료 시민을 위해 결정을 내리는 것. 아니면 그런 사람이 동료 시민을 계몽하여 뭐가 제대로 된 결정인지 깨우쳐주는 것. (국민들은 단지 잘못된 정보를 갖거나 너무 바쁘거나 하기 때문. 이라고) .. 173. (가짜뉴스 떄문. 언론 때문...)
기후변화 논쟁 저변의 도덕적 정치적 고려를 간과하고.. 외면과 어리석은 행동이냐, 가치중립적 기술관료적 해결책이냐..만 있다고 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