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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r 12. 202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혼돈에서 살아가는 법

일생을 바쳤다 싶은 일이 무너져내릴 때가 있다. 당시 지구상 어류의 5마리 중 1마리의 이름을 붙였다는 과학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고기를 수집해 유리병에 표본을 넣고 이름을 붙여왔는데, 모든 유리병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지진이었다. 천재지변 앞에 이름표와 물고기는 뒤섞였고, 과업은 사라졌다. 그는 어떻게 했을까.


삶의 변곡점은 때로 벼락 같다. 그 때 괜찮아, 한껏 에너지를 나눠 받으며 선물받은 책이다. S이 읽다가 들고온 책을 그냥 줬다. 분명 좋아할 거라 했는데, 사실 오래 걸렸다. 책을 펼치는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저자 룰루 밀러가 딱 그랬다.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바닥으로 가라앉았을 시기다. 그는 우연히 한 과학자의 삶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지진으로 모든 걸 잃어버린 과학자가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쫓았다. 처음에는 분명 그랬다.

과학자에 대한 일대기처럼 보이지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이한 제목의 책 부제는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19세기 어류학자이자 스탠퍼드대 초대 총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타 조던(1851~1931)의 삶을 추적한 저자는 과학전문기자. 위대한 인물의 삶을 따라갈수록 장르가 바뀔지 몰랐을게다. 인간이란 드러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진실은 여러 갈래의 그림자를 지닌다. 책이 미스테리 마냥 반전을 거듭하는 이유다.

룰루 밀러는 조던의 삶을 쫓는 과정에 자신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과학자이던 그의 아버지는 지구 입장에서 인간의 탄생은 혼돈이고 삶은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작은 것의 장엄함을 발견하며 살아가라는 뜻이었겠지만 저자는 삶의 의미를 찾느라 무너질 지경이었다. 절절하게 고뇌와 성찰을 이어가는 그의 문장은 유려하다. 과학전문기자라는 편견을 벗고 보면 시인의 에세이 같다.

”미지의 생물에게 자신의 깃발을 꽂기 위해 그는 주석 이름표에 그 성스러운 이름을 펀치로 새기고, 그 이름표를 유리단지 속 표본 곁에 담그고 뚜껑을 닫았다. 우주의 또 한 귀퉁이가 포획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마치 전리품처럼 높이, 더 높이 쌓아가며 전시했다. 질서 속으로 끌어다놓은 혼돈의 양이 거의 건물 두 층 높이로 올라갈 때까지.”(106쪽)


또 하나의 물고기에 이름을 붙인 것을 우주의 한 귀퉁이를 포획했다고 하다니. 명명 만큼이나 아름다운 의미 부여인데, 저자는 계속 찾는다.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다면 평생 업적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의 의미는 뭘까. 


”당신 삶의 30년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간 모습을 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무엇이든 당신이 매일 하는 일, 무엇이든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일,
그것이 아무 의미 없다고 암시하는 모든 신호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중요한 것이기를 희망하면서 당신이 매일같이 의지를 모아 시도하는 모든 일.. 그리고 그 일에서 당신이 이뤄낸 모든 진척이 당신의 발치에서 뭉개지고 내장이 튀어나온 채 널브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고 상상해보라.” (111쪽)


설혹 의미없다는 신호에도 불구, 사람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의지를 모은다. 그런 의지를 모아 하는 일은 미친 짓이 아닐지도 모른다. 주저하는 저자는 계속 탐색한다.


사람들은 물을 뿌리고 뿌리고 또 뿌렸다. 이토록 억눌리지 않는 불굴의 끈기는 어쩌면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그건 미친 짓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선에 대한 믿음을, 별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인류의 가슴 속에는 존재하는 따뜻함에 대한 믿음을 조용히 실행에 옮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신뢰 비슷한 무엇인지도 모른다.”(115쪽)

이쯤에서 저자는 조던의 ‘거짓말’을 발견한다. 지진 직후 그는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라고 기록했다. 자연이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은 과학자도 절망 대신 의지를 붙잡는다. 도대체 그런 의지를 어떻게 찾는가. 저자의 질문에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와는 전혀 무관해. 낙관주의에 비하면 훨씬 더 심오하고 자의식은 훨씬 덜하지. 우리는 그 파괴되지 않는 것을 온갖 종류의 다른 상징과 희망과 야심 등으로 가리고 있어. .. 그리고 우리가 일단 그 것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찢어발기고 파괴할 수도 있어.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거지..." (130~131쪽)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는 경이로운 개념. 저자에게 그건 “내가 비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밀고 나아가는 것이 미친 짓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개념”이 됐다. 그렇다고 인생의 비밀이 단번에 모습을 드러낼 리 없지 않은가. 저자가 조던을 추적하는 과정은 애써 의미와 의지를 찾는 강박처럼 보인다. 사실 그런게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언제나처럼 길을 잃었다고 한 뒤 두어달 지나 그는 “내 목덜미로 뜨거운 열을 치솟게 만든 그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저자의 추적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미 베스트셀러에다 꽤 나온 이야기이지만 후반부를 기록하는 건 내게 스포일러 같다. 적어도 내겐 충격적 반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저 이 정도만.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일까? 구름도 생명이 있는 존재일 수 있을까? 누가 알겠는가. 해왕성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비로 내린다는데. 그건 정말이다. 바로 몇 년 전에 과학자들이 그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265쪽)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라고 하는 저자는 과학전문기자. 그가 고군분투하며 찾은 방법이다. 동시에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꼭 정답도 아니다. 저자의 우상이던 조던이 과학자로서 가졌던 확신이 어떤 시대를 만들었던가. 아찔하고 아득하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정작 저자가 이 질문에 대해 실마리를 찾은 곳은 조던이 아니다. 애나와 메리라는 두 여자를 만났을 때 일이다. 저자가 실제 삶에서 답을 찾는 여정도 여기에 맞닿는다. 사람이 마음 가는대로 마음을 다할 때, 혼돈과 질서라는 경계는 의미가 없어진다. 상실을 거쳐 사랑을 하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면 됐다.
단순히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과학전문기자의 몇 줄 짜리 기사가 될 법하지만 그것은 이야기가 아니다. 위대한 과학자가 고난을 극복한 이야기도 전부가 아니다. 진짜 이야기는 혼돈 속에 머물지 않는 인간의 의지, 각자 심장을 뛰게 하는 '파괴되지 않는 것', 오만한 확신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호기심으로 엮인다. 살아갈 힘, 그 의미를 찾는 길 위에서 만들어진다. 간만 베스트셀러를 굳이 리뷰하고 있는 이유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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