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Mar 08. 2022

<세상을 움직이는 글쓰기>말과 글이 정치이고 사람이다

글이 고민이다. 평생 그렇다. 직업적 글쟁이 그만둔지 십수년인데 왜 아직도 매달리냐는 말이 아프다. 직업일 때는 잘 썼나? 쓰는 단어가 고작 100개도 안됐다. 건조하게 정해진 틀에서 생산했다. 핑계다.
글이 더 큰 고민이 된 건 올초까지 1년 넘게 올인했던 미디어 서비스 탓이다. 어지간한 글로는 승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들었다놨다 하는 강연을 좋아하듯, 사람을 사로잡을 글이 고팠다. 결국 이야기다. 글 뿐만 아니라 영상 홍수 속에 훅 걸려들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 그런 글 쓰는 이가 늘어나야 할텐데..
그렇게 글쓰기 관심 많을 무렵 만난 책. 저자 이진수님과 독서모임 #초월회 통해 1년여 줌으로 만난 인연도 있었다. 그런데 이건 글이 문제가 아니었다. 부제가 '정치글 쉽게 쓰는 법'. 읽다보니 질문이 달라졌다. 정치란 무엇인가. 왜 말과 글에 홀리는 정치에 갈증이 나는가. 정치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은 어떤 것인지 찾다가 마주한 화두다.


"정치의 부재가 정치 글의 빈곤으로 악순환 하고 있다. 정치는 말과 글로 하는 전쟁이다 말과 글은 정치 무기다. 그런데 정치인이 자신의 무기인 말과 글을 제대로 구사 하지 않고 있다. 고로 지금 국회의원은 정치를 하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 되면 대다수는 뻔한 말만 하고, 극소수는 독한 말만 한다. 정작 말과 글로 정치를 제대로 논하지 않는다." (8쪽)


정치인이 되는 순간 대개 지역구 챙기기에 급급하다. 정치는 이제 기자와 평론가와 논객, ‘인플루언서’와 ‘셀럽’과 ‘페부커’가 한다. 정작 국회의원들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데이비드 이스턴) 갈등의 중재? 최소한 공동체의 시민들에게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줘야 하지 않나? 그건 결국 말과 글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데 300명의 국회의원 중 누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서사가 없으면 매력이 없다. 말과 글이 납작한 이들은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비슷비슷한 말로는 존재감이 없다. 사실 금방 보이지 않던가? 생각하고 토론하고 오래 고심한 일을 말과 글로 내는 이들과 생각 없이 뱉는 이들은 다르지 않던가? 인플루언서의 따옴표 인용이 정치 기사를 도배하는게 싫었다. 제대로 된 정치 이야기가 없으니 자극적인 조각들만 나돌았다.
국회 경력 27년의 저자의 분석은 기대 이상 구체적이다. 정치, 정책, 국회활동, 지역구 활동, 일상 등으로 분류해 실제 정치인들이 어떤 글을 쏟아내는지 분석했다. 좋은 글과 나쁜 글을 비교하며 꼼꼼하게 따졌다. 읽다보면, 이야기를 가진 정치인과 그렇지 못한 정치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좋은 글이 점점 더 고파진다. 와중에..

정치는 본질적으로 투쟁이다. 총칼을 들지 않는 대신 말과 글로 싸우는 전쟁이다. 치열하게 싸우는 정치인의 글은 지루할 수가 없다. 남과 불편 불편한 관계를 맺는 게 두려운 어설픈 평화주의자의 글은 어떻게 써도 따분하다. 공자님 말씀이나 입에 발린 소리는 읽는 이에게 아무 감동도 주지 못한다. (144쪽)


정치 글은 한사코 점잖으면 안 된다. 누가 봐도 옳은 소리만 하고, 시비 걸릴 말은 피하는 태도는 위선적이다. 너도 잘못이고, 나도 다 잘한 건 아니라는 양비론은 무책임하다. 구경꾼처럼 한발 물러서서 관조하거나, 남 이야기하듯 하는 태도는 비겁하다. 소소해서도 안 된다. 확실한 주장이 없는 글은 밍밍하다.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게 정치화된다. 어떤 사안이라도 정치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정치적 시비를 가리고 자기 판단을 당당하게 밝혀야 한다. 특히 정치적 사안은 적극적으로 자기 입장을 세워야 한다. 판단이 서지 않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났다. 판단할 생각을 아예 안 하면서 슬금슬금 뭉개는 게 더 나쁘다. 정치 현안에 대해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일을 글로 밝히는 글이 ‘정치 글’이다. 이런 정치 글를 부지런히 써야 한다. 소통이랍시고 신변 잡기나 늘어놓는 건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94쪽)

얼결에 내 글의 문제점을 들킨 기분이다. 누가 봐도 옳은 소리. 시비 걸릴 소지를 줄인다. 기업에 있을 때도 '나름' 조심했고, 공직에 있을 때는 말해 뭐할까. 심지어 가족에게 누가 될까 몸을 사린다. 한마디로 비겁한 걸 점잖은 걸로 위장중이다. 이 고민은 내 문제이니 그렇다치고.. 실질적 조언 몇 가지 더 챙겨보자.

글이 쉽고 어렵고는 결코 문장이나 문체 문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논점이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해야 한다. 읽는 이를 힘들게 하는 글은 대개 논점이 분명치 않은 글이다. 논점이 흐릿하거나 헛갈리는 글은 무조건 어렵다. 글을 쓰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논점을 잡는 일이다. (151쪽)

글은 논조보다 논지가 더 중요하다. 글이 미문이라야 명문이 되는 게 아니다. 문장은 비문만 아니면 된다.


말하는 바? 결국 이야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분명해야 한다. 내 생각이 정리되어야 글이 된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으려면 논리도 중요한데, 그 논리가 어려운 문제다. 논리의 함정에 빠지면 안된다.


정치 글을 쓸 때 마음을 향해 글을 쓰면, 글로 사람을 가르치려는 태도도 제거할 수 있다. 논리는 속성상 끝까지 가면 독선이 되기 일쑤다. 논리는 나와 남을 가르는 경향이 있다. 그 과정에서 함부로 비판하고 평가하고 가르치려 든다. 비유컨대, 비운동권 학생이 운동권 학생을 싫어 하는 이유가 그런 것 때문이었다. 대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신념이 확고한 것까지는 좋은데, 자기 논리가 너무 강해 듣는 사람을 질리게 한다. 아는 것도 많아서 남의 말은 무시하고 자기 말만 한다. 남의 마음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담긴 글을 쓸 수 있을까? 공감부터 시작이다. (168쪽)

이거 내게 하는 말이다. "사람은 웃다가 생각을 바꾸지 설득당해 생각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B선배의 카톡 소개 글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나는 여전히 논리로 설득하려는 철부지 아닌가. 내심 공감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쉽지 않다.

“우리는 흥미 격정 두려움 분노 경멸을 유발하지 않는 주장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감성적 울림이 느껴지지 않는 지도자에게 감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정책이 우리 자신이나 가족, 아니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 무엇에 감성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토론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163쪽) 이 부분은 드루 웨스턴 <감성의 정치학> 인용한 건데.. 어려운 이야기로 토론까지 이끌어가는 거, 이거 그래.. 일단 올초까지 고민한 걸로.


짧은 문장은 글을 쉽고 명확하게 해 준다. 짧은 문장의 미덕이다. 글의 속도는 그에 더해 글쓴이가 어떤 인간인지를 느끼게 한다…정치인이 자기 글을 통해 자신을 보여 주지 못 한다면 그는 정치에 실패 하는 중이다. 보여 주지 않아도 문제고 잘 못 보여줘도 문제고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도 문제다. (133-134쪽)


수식어 걷어낸 문장에 대해선 익숙하지만, 글의 속도는 낯선 개념. 궁금하면 책을 보시라. 사례가 무려 시저와 처칠 글이다. 지도자의 말과 글이란! 정치인의 글을 보고, 새삼 반하고 싶다.


정치에 관심 없더라도 괜찮다. 어차피 글에 대한 책이다. 말과 글에 책임을 지는 인간이 되고 싶다면, 말과 글로 생각을 가다듬고, 성장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국회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선물했는데 분명 도움 됐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밀림의 귀환> 나쁘거나 한층 더 나쁜 미국의 선택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