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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r 08. 2022

<밀림의 귀환> 나쁘거나 한층 더 나쁜 미국의 선택지

미국 네오콘의 시각에서 자유주의 세계질서 수호란


20세기를 네 시기로 쪼개보자.
1. 1900~ : 1차 세계대전 발발. 공산주의와 파시즘 탄생.
2. 1925~ : 히틀러와 스탈린의 등장. 우크라이나 기근, 홀로코스트, 제2차 세계대전. 핵무기 사용
3. 1950~ : 냉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매카시즘, 쿠바 미사일 위기, 이란혁명
4. 1975~ :
"지난 4반세기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이 참담한 실패였다고 비판하는 이들은 지난 100년의 기간 동안 어느 4반세기가 가장 마음에 드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지난 25년에서 30년 동안에도 여러 가지 실패가 있었지만..."(136~137쪽)
 
이렇게 보니, 지난 세기 대단했다. 특히 4번 시기 미국의 외교정책이 실패가 아니었다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그동안 미국이 잘 관리한 덕분에 유지됐으나, 지금은 '밀림의 귀환(The Jungle Grows Back)'이 우려된다는 로버트 케이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네오콘으로서 세계경찰 미국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묻는 이 책은 그가 트럼프 정부에게 열받았던 2018년 출간됐다. (국내 번역은 21년 12월. 따끈한데다 적절하다) 그는 20세기를 돌아보며 "1945년 까지 만해도 전쟁, 폭정, 가난으로 점철되었고 민주 정치는 너무나도 희귀해서 거의 우발적으로 등장"했을 뿐이었지만, 이후 세상 좋아졌다고 한다. 강대국간 전쟁도 없었고, 70여년 간 세계 GDP는 한해 평균 35% 성장했고, 40억 명이 빈곤에서 벗어났고.. 이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가? 그럴리가. '자유주의 세계질서'라는 온실 안에서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역사에 진보는 필연이라고 믿게 되었지만 그건 낭설"이며, 그 온실을 유지한건 전적으로 미국의 공! 그런데 지금 뭐가 잘못된거냐 하면! 미국이 제 역할을 못하는 처지란다. 정원을 가꾸지 않으면 정글이 돌아온다는게 그의 걱정이다. (정글과 밀림은 뉘앙스가 쫌 다르다 싶지만 넘어가고..) 일단 미국의 공부터 살펴보자.


무엇이 자유주의 질서를 붕괴시킬까? No. 무엇이 자유주의 질서를 계속 지탱할  있을까?

미국이 무엇을 했냐고? 2차대전  마셜플랜으로 서유럽 경제를 살렸다! (세계대전 주범) 독일이라는 기존문제와 소련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을 구축했다! 아시아에서는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일본, 남한과 양자 안보조약을 맺었다! 미일 안보조약은 공산주의 봉쇄가 목표인 동시에 일본이 과거의 야심을 되살리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장치였다. 미국의 리더십 아래 독일과 일본은 군사강국이 아니라 경제대국이 됐다!
과정에 진통(유엔 허가 없는 군사개입이나 비밀작전) 실수(이라크전 빌미가 됐던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는 것은 첩보 부실이 아니라 사기극 아닌가??) 있었지만, 그래도  체제가 괜찮았으니 미국이 수호한 자유주의 세계질서 앞에 소련이 자진 해체된 . 핵전쟁도 없이 냉전 끝나고 경제는 발전하지 않았나!
미국은 급진주의(냉전시대에는 공산주의, 오늘날은 이슬람)보다 차라리 독재체제를 선호한 시절도 있었으나 이념 경쟁의 우위를 위해 민주화를 끝내 지지했다. "미국은 결국 필리핀, 남한, 칠레에서 오랫동안 지원했던 독재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냉전 말기에 온두라스, 볼리비아, 엘살바도르, 페루, 남한에서 군사정변을 막았다." (82~83) 저자가 말하는 자유주의의 수호자 미국의 성과들이다. 무엇이 자유주의 질서를 무너뜨리느냐가 아니라,  질서를 지탱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가 제대로  질문이고, 저자에게 답은 정해져있다. 미국의 의지와 결의.

미국의 선의와 의지가 위선이라고?

  미국은 기꺼이  역할에 애썼다. 하지만 진통과 실수까지 겹친 비싼 패권주의가 그리 오래 지속될까.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외교정책의 정당성과 도덕성에 대한.. 그리고 민주정체, 자본주의, 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낳았다.(109) 막대한 예산과 인명 손실까지 감수했지만 세계 리더로서 자국의 패권을 앞세운 미국의 위선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럼에도 미국이(특히 공화당 정부가) 고심 없이 마구잡이로  일은 없다는게 저자의 주장. 부시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무위로 돌렸고, 페르시아만의 방대한 석유 매장지를 연쇄 침공자의 손아귀에서 해방시켰다. 그는 미국에서 마약 공급 작전을 수행한 혐의로 파나마 독재자를 제거했다.. 발칸반도에  차례 개입해 학살을 막음으로써 유럽 안보를 보장한다는 미국의 결의를 재확인.. 모가디슈 습격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미군 18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하면서 작전은 결국 실패...미국의 개입 정책으로 20 명의 소말리아인이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은 잊혀졌다. (118)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에는 그때마다 미국 내부의 정치 지형, 산업의 이해관계 등도 복합적이겠지만 일단 넘어가자. 논란 많은 일들도 저자는 시행착오 정도로 여긴다. 이라크전에 대한 평가 역시 후한 . 오히려 국내외 비판이 높아진 탓에 냉전시대였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일들을 내버려뒀다고 분개한다. 예컨대 역사상 가장 끔찍한 학살로 손꼽히는 르완다 사태에 개입하지 않았고, 초보 단계였던 북한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해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은 . (만약 저자 희망대로 미국이 북한에 군사행동을 취했다면 러시아, 중국은 가만히 지켜봤을까?)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에 '고작' 경제제재로 대응하고, 우크라이나에 방어용 무기 제공도 거부하고, 시리아 위기에도 소극 대응했다는게 그의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예 세계 리더 역할을 저버렸고... 미국이 (유지하던) 질서가 작동하지 않는 사이 약한 고리에서 고통이 이어진 건 사실이다. 강경한 공화당 지지자인 케이건은 2016 대선에서 세계경찰 역할을 폄하하는 트럼프 대신 차라리 클린턴을 뽑자고 주장했다.

미국의 의지가 약해질수록 커지는 러시아와 중국의 야심

폴란드와 중부 유럽을 합류시킨 NATO 확대는 러시아와 관계를 훼손시켰고 타협의 여지를 없앤 실책, '미국의 오만함과 과도한 팽창의 증거로 간주되는 실책'으로 꼽혔으나 역시  그럴만 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러시아가 끊임없이 개입한 역사 탓에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 나라들에 대한 구제랄까. 이는 논쟁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2018 저자의 분석을 지금 다시 보자.

"러시아의 이익 권역은 우크라이나에서 끝나는  아니라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다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러시아의 이익 권역은 발트해 국가들과 폴란드까지 아우른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길로 들어서면 위험하다... 유감스럽게도 자유주의 질서는 훼손될 만큼 훼손되었고, 미국이 세계에서 하는 역할은 더할 나위 없이 불확실하므로 푸틴은 이러한 약점을 계속 파고들  틀림없다... 푸틴이 자유주의 질서 체제를 시험해보겠다고 마음먹으면 미국의 대통령은 엄혹한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만으로는 NATO 동맹들에 대한 공격에 대한 해답이 되지 못한다. 회색지대에서의 애매모호한 공격에 대해서조차도 해답이 못된다. NATO 재래식 군사력을 이용하면 러시아와 미국,  핵보유국은 한판 대결에 직면하게 된다..." (149~150)

지옥문은 열렸고, 어디까지 갈 것인가. 케이건은 지난 221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같은 주장을 다시 펼쳤다. 우크라이나가 넘어가면 발트3국과 동유럽 국가들이 마주할 위협 말이다. 지도를 보니, 우크라이나가 미국 믿고 NATO 가입을 추진하는게 최선이었나 싶기는 하다.  자리는 중립을 외치는게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어떻게든 줄타기를 했다면? 전쟁과 상관 없이 동남부 친러시아 세력, 우크라이나 내부 정세를 이용해 분쟁이 꺼질거 같지 않은데 걱정이다.
Opinion: What we can expect after Putin’s conquest of Ukraine

케이건의 주장이 지금 현재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것도 덧붙여둔다. 3월4일 NYT 분석도 그를 인용한다.

Robert Kagan, a historian whose latest book, “The Jungle Grows Back: America and Our Imperiled World,” has been widely cited during the Ukraine conflict, said he too had been pleasantly surprised by how quickly the liberal order had “snapped back into place.”

“There has been a significant reconfirmation of a lot of the old lessons we learned a long time ago and forgot about,” he said.


케이건의 말대로 한 시절 강대국간 전쟁 없이 평화가 이어지면서 지경학(geoeconomics)이 지정학(geopolitics)을 대체했다고 믿었으나 다시 20세기 초의 지정학적 구도로 회귀하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러시아와 중국이 한동안 중단했던 과거의 야망을 다시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중국에게 중요한 문제는 과연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자신이 구축한 질서를 수호하시 위해서 전쟁을 감수할 의지가 여전히 있는지, 아니면 1945년부터 지배해온 이 지역에서 물러날지 여부다." (155~156쪽)
이래서 다들 대만 걱정 아닌가. 우리도 휘말릴 수 밖에 없은 리스크.


한국어판 서문에서 케이건은 한국을 '2차대전 이후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대단한 성공사례' 꼽는 동시에 중국의 야심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한국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동시에 지난 30년간 미국인들은 해외 개입을 꺼리는 정서가 커졌고, 변덕이 심하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게 아쉬워서 격정적으로  책이 나왔겠지만 의문이 남는다. 케이건은 "자유주의 질서에 합류한 나라들이 전통적인 지정학적 야망을 포기하고 미국이 군사력을 거의 독점하도록 허락하는 대신, 미국은 개방적인 경제 질서를 유지하고 다른 나라들이 서로 경쟁하고 성공하게 해주었다"(172) 했지만, 우리는 트럼프 이후 변덕스러운 미국을 같은 방식으로 신뢰할  있을까? 미국이라는 세계경찰이 군사력을 거의 독점하게 하는 것이 평화를 보장할  있을까?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한 ㅅㅇㄷ님은 이라크 전쟁을 비롯해 미국의 죄악을 과소평가하는 저자의 경향을 지적했다. 네오콘으로서 보수 정부의 모든 행위를 합리화하는게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앞으로 세계 질서를 어떻게 지탱할 것인가. 그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한때 세계경찰자국 이익을 앞세워 보호무역으로 회귀하며 자유무역을 흔들고, 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수호할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세계는 어떻게 돌아갈까. 이라크전쟁은 없는 WMD(대량살상무기) 있다고 주장하며 시작했던 미국이지만 정작 WMD 증거가 분명한 시리아 사태는 방관했다. 미국이 개입을 주저한 동안 시리아에서 50 명이 희생됐다는데 ㅇㄴㅅ님은 괴로워했다.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키운 러시아는  지역의 반미 정서를 사그러뜨릴만큼  나쁘다고 한다. 미국의 잘난 우월주의가 불편할  있지만 세계 질서를 지킨게 마냥 허튼 소리가 아니라는데 고심이 이어졌다. 인류 역사에서 평화가 오히려 이례적이다. 위대한 과거의 영광을 쫓거나 내부 독재용이거나 어떻게든 이웃을 위협하는 강대국이 등장하는데 경찰 없이 어떻게 평화를 지킬  있을까? 가뜩이나 미국이 회비도 안내고 무시한 국제기구가  힘을 키울 가능성은 있을까? 강대국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은 어떻게 가능할까? 다자주의가 분쟁 없이 자리잡을  있을까? 2014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은 2 대전 이후  국경 침탈이었음에도 국제 사회가 아무 것도 못했다는게 ㅇㄴㅅ님의 설명. 팍스 아메리카나가 다시 가능할  같지 않은데 세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가뜩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족주의, 민족주의가 부흥하면서 국가 내부의 분열과 갈등은 첨예해지고 있다. 세계경찰이  놓고 있는 사이 난민은 급증했고 유럽 각국은 극우세력이 커지고 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핵무기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미국은 좋거나 나쁜  가지 선택지가 아니라 나쁘거나 한층  나쁜  가지 선택지에 직면하고 있다.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유지하고 그에 따라 치러야 하는 모든 도덕적, 물질적 대가를 받아들이든가,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붕괴하도록 내버려두고 이에 필연적으로 뒤따를 재앙을 불러들이든가 양자택일해야 하는 문제다. (204)

저자는 미국이 비용을 치르고 세계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네오콘인 저자와 바이든 정부의 입장은 과연 비슷하게 갈까? 그렇다치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미국이 치르는 비용은 동맹국에게도 청구서로 돌아오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계속 비싸질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어느새 강대국인 한국은 러시아, 중국과도 긴밀하다. 유럽이 러시아와 삐그덕대는 사이 러시아 자동차 시장 1위를 차지한 현대차가 최근 고심에 빠졌듯 챙겨야  관계가 복잡하다. 그나마 이게 쉬운 고민. 우리는 한반도 평화가 가장 문제다. 북한이 미국과 우호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면 러시아와 중국은 어떻게 나올까? 북한이 미국과 적대 관계를 유지하는데 미국이 네오콘 방향으로 강경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와중에 중국과 북한의 긴장관계를 빌미로 일본이 군사강국으로 재무장할 가능성은?

이런 시대, 과연 차기 정부는 어마어마하게 괜찮은 외교력을 구사하며 줄타기를 이어갈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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