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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r 30. 2023

<서점일기> 서사와 역사성을 잃어버린 사회란

"우리는 사실을 잃었고, 역사를 잃었다."

독재자 마르코스를 위인으로 가짜 역사를 만들고 그 아들이 대통령 된 과정을 지켜본 마리아 레사는 한탄했다. 인류는 늘 권력자가 과거를 세탁하곤 했지만 SNS 덕에 스케일과 속도에 감탄할 지경이다.

점심에 만난 K님이 서사와 역사성을 잃어버린 사회에 대해 얘기하는데 바로 떠오른 사례다. 우리는 사이좋게 #체부동잔치집 들깨수제비를 먹고 #북살롱텍스트북 수다 코스를 이어갔다. 요즘 관심사를 물었더니 일본이라 했다. 어떻게 극우파가 세를 키우는지, 어떤 마인드인지, 사회심리학에 관심 많단다. 무능한 보수와 역시 무능한 진보, 정치권에 실망과 분노가 깊은 그는 여전히 학구적이다. 순한 눈매와 다정하고 수줍은 미소를 지닌 그는 또 직설적이다. 깊게 들여다본 언론의 한심한 실태에 대해서도 조곤조곤 말했다. 내가 오죽했으면ㅋ 그런데 정치와 언론의 내일이 암울하다면, 우리는 뭘해야 하지? 역사를 잃어버린 일본의 사례에서 우린 뭘 봐야 하지?


다시 마리아 레사를 빌려오면,

’우리 대 그들’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지 말라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고 했다. 외로움, 고립이야말로 극우의 자양분이라는 #고립의시대 분석을 본다면 누군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게 중요하긴 하지. JMS 사이비 교주에게 혹하는 것도 결국 외로움을 구원받았다는 감각 때문 아닐까?

그런데 어떤 가치와 주의, 이즘을 잃어버린 시대에 이것만으로 될까? 역사마저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역사를 괴랄하게 해석하는 지도자의 시대에? 함께 하는 이들이 지치지 않도록 다정함으로 부축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그집 부부를 잘 아는데 부인은 부잣집 딸로 맛집 좋아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는 모씨의 발언도 소환됐다. 부잣집 딸이 선량함의 기준이 될리 없건만. 혁신 전도사로 알려진 그는 SM(사모)을 그렇게 기억했다. SM 덕에 대통령실 인사가 개판이란 소문의 실상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 의전비서관, 외교정책비서관, 안보실장을 다 날려버린게 V1보다 V2 입김이 셌다는 얘기의 실체도 솔직히 안 궁금하다. 안보라인 심각한 문제들 대신 블랙핑크가 진짜 트리거였다는 소문도 대략 난감. 역시 맛집 좋아하고 꽤 괜찮은 인간인 나는 그냥 부자로 즐겁게 사는 편이 나았을 몇몇이 떠오를 뿐이다. 대체 공적 마인드란 무엇인가. 공에 대한 개념 없이 공적 권한을 남용하는 몇몇에 대한 비평도 이어졌다. 봄날에 어울리는 수다로구만.


그가 갑자기 K온니 안부를 묻는 바람에 온니 얘기도 나왔다. 온니는 워커홀릭으로 부족하신지, 하루를 마감하며 중국어 교재를 펼쳤는지, 업무에 상관없는 책을 한 장이라도 봤는지, 체조는 했는지 체크한다. 그 체크리스트에 rustic meal, 소박한 식사 항목이 있단다. 단순한 방식으로 풍미를 살리며 불필요한 것들을 배제한 식사? 오마카세나 파인 다이닝 분위기는 분명 아니다. 온니는 옥수동 #로컬릿 음식에 대단히 만족하시면서도 선을 분명히 그었다. 버터와 치즈를 넉넉히 쓴 단호박 카넬로니는 소박한 식사에는 들어가지 않는단다. 소박한 식사는 왜 중요하지? 일상의 태도란 이렇게 구체적인 점들에서 다르게 갈라진다. K온니도 K님 만큼이나 오로지 탐구하고 학습하며 공적 마인드를 중시한다. 내 주변엔 왤케 훌륭한 이만 있을까. 유유상종이지. 아무렴.


서점 앞마당의 나무에 연두빛 새 잎이 맹렬하게 움트고 있다. 신록,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서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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