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Jul 28. 2023

<국체론> 네 개의 공포, 무엇을 위한 한일관계인가?

대체 ‘국체론’이 뭐란 말인가? 낯선 제목에다 ‘천황제 속에 담긴 일본의 허구’라는 부제를 봐도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번역된 지 3년 되어가는 책을 왜? 도입부 옮긴이의 말을 읽다가 당황했다.

“이 책은 말하자면, ‘아베 정권은 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가? 아베 정권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럴 수 밖에 없는 일본 사회의 구조는….”

한반도 전쟁을 오히려 바라는 이웃이라니, 새삼 섬뜩했다. 이거 공포물인가? 책은 선배들과 독서 모임에서 읽었다. ‘책보다 토론’, 끝내줬다.


국체가 튀어나온 이유


‘국체(國體)’란 ‘천황제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통치 체제’다. 2차 대전 직후 일본 정부는 ‘국체호지護持’, 즉 천황제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항복했다. 당시 일본 천황은 왕을 참수하는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수호신 마냥 미국의 군사 주둔을 요청했다. 미국은 입맛에 맞는 체제를 위해 천황이 필요했고, 경멸과 편견 대신 경애하는 행위로 포장했다. 일본은 주권을 내줬고, 미국은 천황제를 유지하는 '국체호지'를 수용했다. 당시만해도 절박한 단어였으나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다. 일본 특파원 출신으로 이 책을 함께 읽자고 제안했던 S선배의 말이다.


사라져가는 단어를 꺼낸 일본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는 ‘국체’를 중심으로 ‘파멸로 가는 일본’을 분석했다. 2016년 8월 천황의 '생전 퇴위' 발표가 전후 일본 민주주의의 위기, 상징천황제의 위기이자 대미종속 체제의 위기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조금 어렵고 지루한 이야기인가 싶다가도 거침없이 통렬한 일본인의 자아비판이 흥미롭다. 이분 좌파다. 일본의 소수의견일듯.


”전후 민주주의의 위기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그리고 제2차 아베 정권 성립과 그 시정을 통해 폭발적으로 표면화됐다. 원전 사고의 발생 경위를 살펴보자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국책이 추진되는 방식에서 민주주의 따위는 눈곱만큼도 작동하지 않았음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장기 집권 중인 아베 정권의 상궤를 벗어난 국회 경시와 거짓 답변, 삼권분립 파괴 등 의회제 민주주의 또한 파산하고 있다.”


2차대전 이전 천황 중심 국체의 형성기, 안정기, 붕괴기는 전후에도 반복됐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다만 전후 국체는 천황이 아니다. 미국을 떠받드는 체제다. Y님은 “역사는 두 번 되풀이된다. 그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으로”, 마르크스의 말을 떠올렸다고 했다.


“일본 대미 종속의 핵심은.. 일본은 독립국이 아니며, 독립국이고자 하는 의지조차 갖고 있지 않은데, 심지어 이러한 현실을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이 공포로 다가온 이유


일본은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을 넘어 전쟁을 진정 원하게 될까?  첫번째 공포다.

“존 볼턴 전 미국 대통령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도 거듭등장하지만, 아베 총리는 문재인 정부 등장 이후 급진전되고 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과정 내내 북한에 대한 제재 압박 수위를 높이라며 시종일관 한반도 긴장완화를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 옮긴이 한승동

당시 아베 총리는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주권의 문제”라며 아베 총리의 내정 간섭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지금 만일 아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의 힘을 필요로 할 경우, 일본은 동원에 응해 대활약을 펼칠 것이다. 일본은 내내 전쟁과 더불어 번성했다. 몰락하고 있을 경우에는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무작정 전쟁에 협력할 것이다.” - 모리시마 미치오,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1994)


저자는 저 문구를 인용하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한에 더욱 압력을’ 가하라고 주장한 이 정권은 요컨대 한반도 유사 사태가 발생하기를 기대했던 것이고, 그렇게 할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피폭국으로 헌법9조를 통해 전쟁에 반대하고, 전력을 보유하지 않겠다고 한 평화국가다. 동시에 2차 대전 이후 거의 중단 없이 전쟁을 수행해온 미국의 세계 최대 협력자라는 모순을 안고 있다. 저자는 한반도 유사 사태(전쟁)이 모든 현안을 해결해준다고 분석한다. 평화헌법에도 불구, 자위권 발동이 가능하고, 한반도 복구 수요가 있다.


두번째 공포는 이성적이지 않은 일본 정치판의 몰락 과정이다. 나름 정통 보수가 살아있던 자민당은 불과 10여년 만에 ‘어리석은 우익’에 점거당했다는 것이 저자 분석이다. 자유주의, 민주주의를 신봉하던 보수는 쫓겨나거나, 침묵하거나, ‘어리석은 우익’과 한패가 됐다. 합리적 친미 보수는 ‘어리석은 우익’을 끝내 숙청하지 못한채 오히려 흡수됐다. 그들은 집회에서 성조기를 흔들고 혐오를 외친다. 아아, 이거 일본 얘기다. 그런데 왜 무서울까?


일본은 광대한 국토를 미군기지로 제공하면서 경비의 75%를 부담하고 있다. 부담률은 독일의 배가 넘는다. 불만이 없을리 없다. 그런데 일본의 극우 보수는 오키나와 미군 주둔 관련, 반미=반일=친중 공식으로 낙인을 찍는다. 성조기와 일장기가 같이 등장하는 이유다. 미국과 한편이 됨으로써 아시아에서 오직 일본만 근대인이라는 차별의식은 강화된다. 미국이 전후 일본인에게 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다른 아시아인들을 차별할 권리'였다.


아베노믹스를 찬양하는 이들은 일본 경제의 부활을 찬양하면서, 중국과 한국 경제는 파탄을 맞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일본의 부활만으로 만족할 수 없고, 중국과 한국이 몰락해야만 마음이 놓인단다.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은 서구를 향한 열등감과 다른 아시아 국가의 국민에 대한 인종차별을 이어왔는데, '아시아 유일의 일등국'이 흔들리면서 집단적 발광 상태에 들어갔다는게 저자 분석이다. 저자는 복고적이고 퇴행적인 전범 우파세력의 손에 일본을 계속 맡겨두는 한 파멸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일본 정치권은 변화의 조짐이 안 보인다. 저자는 자민당 등 일본 정치권력이 ‘미국의 명령에 따를 이유를 찾아내는데 광분했다’고 분석한다.


그 미국이 흔들리는 것도 문제다. 차기 대통령은 다시 트럼프가 될 것 같은데, 미국의 미래까지 내가 왜 걱정하는지 모르겠지만 답답하다.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아프간전쟁을 치르며 미국의 명분은 쇠락했고 미국의 경제는 안으로 곪았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트럼프의 슬로건이야말로 현재 위대함이 사그라들었다는 미국의 위기의식을 반증한다. 미국은 자기 이익을 챙기는데 급급해진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이 계속 일본의 전후 국체란다. 저자가 미국을 국체라고까지 외치는 것은 미일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로 부족한 탓이다. 전쟁 전의 국체가 망했듯, 전후 왜곡된 국체도 망할 것이라는 절절한 경고다.

미일안보조약에는 ‘세계에서 가장 미국에게 유리한 지위 협정’이 달려 있다. 저자는 “미국의 괴뢰인 아프가니스탄 정부보다, 북한과 전쟁 상태의 한국 정부보다도 일본 지위가 낮다”고 개탄한다. 이런 종속 관계를 감추기 위해 미일 관계는 정서적인 말을 공적으로 사용한다. 배려 예산, 친구 작전 같은 식이다. 외교의 실체 대신 양국 정상이 친밀하다는 것만 강조한다.


”일본의 거대 미디어들은 이 뻔히 보이는 어설픈 연극을 시시덕거리며 연출하고.. 외국의 미디어에서 ‘트럼프에게 아부하는 일본의 아베 신조’가 심심찮게 나오는 동안 일본 국내 여론에서 ‘미 대통령과 잘 지내는 일본 총리’라는 이미지를 유통한다”


이처럼 일본의 현재는 극우 정치인들과 더불어 언론의 작품이란 것도 내겐 공포다. 미국에서 조금이라도 독립하려는 정치인은 늘 언론이 쳤다는 뒷담화도 무섭다.


그런데 일본 지식인 사회는 저변이 탄탄하지 않나? 시민사회는 뭘하고 있지? 순진한 내 질문들에 대해, 일본은 민주주의 대신 엘리트주의로 움직였고, 동아시아 세 나라 중 중국과 일본은 엘리트들끼리 해먹는 구조라는 S쌤 답변이 서늘했다. 4.19, 6.29 등 한국 시민들의 저항, 항쟁을 부러워는 일본인 친구들이 있단다. 일본은 밑바닥부터 끓어올라서 체제를 뒤집어본 경험이 없는 나라다. 대중이 움직이고, 대중정당이 권력도 바꾸는데, 일본이나 중국은 일당 독재에 가깝다. 그런데 그 엘리트들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국가를 이끌어 왔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벌였고, 전후 복구를 누구보다 빠르게 진행했다.

여기에 미일 동맹이 작동했다. 미국은 대소련 전략에 이어 중국 봉쇄정책을 벌이면서 일본에 정치 경제 보호막을 제공했다. 한국과 대만이 과거의 불행을 넘어서서 일본의 무역과 투자에 개방하도록 했다. 저자는 “일본은 미국의 패권 아래 경제적 배후지를 아무런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획득했다”고 지적했다. 전쟁 승리를 통해 얻을만한 것을 전쟁 패배로 얻었다는 얘기다. 일본은 자유주의 진영 아시아 최대세력이었고, 냉전의 승자였다. 한때 소니가 컬럼비아 영화사를 사고, 미쓰비시가 뉴욕 록펠러 센터를 사들이던 시기, 미국은 일본의 경제 공습에 오히려 인종주의 차별을 불사하며 반발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로 달러 가치가 절하되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외교 성과가 나쁘지 않았고, 경제도 여전히 강대국이다. 일당독재 엘리트들이 여기까진 끌고 왔다.


이게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저자의 문제 제기는 일본 내 반향이 커보이지는 않는다. 저자는 ‘국체론’으로 사실상 미국을 공격한다. 미국의 얼굴마담을 천황이 한다는 식이지만 천황제와 본격 맞붙지 않았다.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하면 해법을 찾는게 어렵다. 책이 허탈한 이유라는 얘기가 나왔다. 비판적이거나 합리적 목소리가 소수의견이란게 나는 걸린다. 그리고 이런 이웃과 잘 지내는 것에만 전력을 다하면서 오무라이스와 폭탄주 다정한 모습에 열 올리는 정부가 불안하다. 위안부 문제는 유엔조차 2022년 11월 일본 정부에 피해자 보상과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한일 외교장관 협의를 거론하며 “할 것 다 했다”고 한 일본에게 유감을 표명했다. 국제사회는 그냥 넘어갈 일로 보지 않는데, 한국 정부는 이제 괜찮다고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도 일본 편들면서 국민들의 불안은 가짜뉴스 취급한다. 대체 무엇을 위한 한일 관계인가?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이해가 왜 중요하지? 우리에게 한반도 평화보다 더 중요한게 있나? 2023년 한국인은 ‘국체론’까지 보면서 나라 걱정 해야하나?

매거진의 이전글 <얼어붙은 여자> 거침없는 문장 마다 비명이 들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