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감동이라는 K선배 평에 남편은 잔잔감동이라 했다. #나의올드오크, 감동은 사실 여러겹으로 이어진다. 먼저 그분, 켄 로치 감독님을 추앙하지 않을 수 없다.
켄 로치 할배라고, 부르면서 그의 영화에 빠져든지 벌써..어언... 어어.. 연식 나온다ㅠ 역사가 길다.
아마 첨 본 건 <랜드 앤 프리덤>(1995), 제목만 기억날 뿐 내용은 내 머릿속 지우개가 지워버렸고.. <빵과 장미>(2000)는 애드리언 브로디란 배우를 기억한 작품인데, 역시 영화 자체는 기억에 없다...
이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킬리안 머피의 푸른 눈에 홀렸다가 엉엉 울면서 나왔다. 100년 전 아일랜드 무장봉기를 다룬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 수상했던 이가 켄 로치 할배다.
1936년생이니, 랜드 앤 프리덤 때가 59세, 빵과 장미는 60대, 보리밭은 70세 작품이다. 새파랗게 어렸던 나는 할배라 부를만 했...
그런데 감독님이 칸 황금종려상을 한 번 더 받은 건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80세 때 작품이고.. <미안해요 리키>(2019)에 이어 87세에 <나의 올드 오크>(2023)를 내놓으셨다. 감독님처럼 나이들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고? 감독님이 아직도 부글부글할 정도로 세상이 망한 건 아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지금 위험한 지점에 있다.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제공해야 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때 수상소감인데 켄 감독님, 그 마음 그대로 영화를 또 찍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다정한_연대 외엔 방법이 없다고, 노골적으로 보여준 영화가 <나의 올드 오크>, 노장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쇠락한 폐광촌, 좌절에 익숙한 이들의 심기는 불안불안하다. 시리아 난민들이 갑자기 정착하는 사건은 여기에 불을 붙인다. 무기력했던 주민들은 난민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젊은 남자들의 조롱은 폭력적이다. 반면 낡은 펍 올드오크의 쥔장 TJ는 곤경에 처한 난민 소녀 야라를 돕다가 그만, 우정이 싹트고 만다.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관계가 되는 건 우연하게 벌어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무 조건 없이 옷가지와 아이들 용품을 챙겨서 필요한 이들에게 전해주는 것도 별 일 아니다.
마찬가지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난민들에게 화풀이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약자가 약자를 혐오하고, 약자들끼리 갈등하는 건 흔한 풍경 아닌가?
공론장? 난민 쫓아내려고 성토하기 위해서라도, 혹은 서로 대화하기 위해서라도 마당이 필요하다. 올드오크 버려진 뒷방은 어느새 냉기 대신 온기로 채워진다. 그저 밥 같이 먹는 시간이 쌓인다면?
‘굶주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 빛바랜 탄광 노동자들의 구호를 되살려낼 수 있을까?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연대와 저항이 그저 보통의 일상에서 가능할까?
폐광으로 마음도 함께 쇠락한 어르신들과 달리 희망이 없어 피폐해진 청년들은 달라질 수 있을까?
버럭 화부터 내던 이가 사과를 할 줄 아는 어른이란 반전은 표정 없던 이들에게 웃음을 남긴다. 무심하던 이들은 슬픔을 나누는 법을 새삼 발견한다.
교과서 같은 돌직구 메시지. 희망에 대한 감독님 고집이 분명하다. 야라는 사진을 찍는데 그 앵글의 이야기도 선명하다. 오늘의 세계, 다큐 마냥 리얼한데 이것이 판타지가 아니기를. 감독님 마음이 내 맘.. 감독님, 이게 진짜 마지막 영화인가요? 감독님처럼 늙겠어요. 우리, 함께, 살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