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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마 파시> 여자들이 어디까지 입증해야 한다고?

by 마냐 정혜승


승승장구하는 변호사 테사는 법정에서 펄펄 난다. "유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무죄“라며 수많은 성폭행 사건을 무죄로 이끌었다. 그런데 역지사지?! 테사는 데이트 중 명백한 거절 의사에도 불구, 강간당했다. 전문가답지 않게 증거를 남기지 못했고 정황도 불리하다. 프리마 파시, Prima Facie는 '일견', '첫눈에 자명한' 상태로 반증이 없으면 끝이다.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어떤 반증을 내세워야 하나.


#프리마_파시, 소리꾼 #이자람 이 소리 대신 연기만으로 120분 혼자 무대를 달궜다. 유능한 변호사 테사부터 검사, 판사 역까지 법정드라마를 펼치고, 친구들과 강간남까지 모든 역을 소화했다. 전반부 패기만만한 테사부터 후반부 공황까지 겪는 피해자 테사까지. 본디 우리는 천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지만, 이자람의 무대는 상상 이상이다.


강간범은 늘 그렇듯 전도유망한 청년. 그가 뭐라도 잃을까 다들 난리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잃어버렸다. 자존감을, 경력과 친구, 마음의 평화, 안전, 성의 즐거움, 무엇보다 법에 대한 신념,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 믿은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이자람님 대사 넘 인상적이었는데 검색해서 찾아낸 것은 원본 뿐)


“But I will tell you what I have lost;

I have lost my dignity and my sense of self

I have lost my career path, friends, peace of mind, my safety,

the sense of joy in my sexuality. But most of all, I have lost my faith in this,

the law,

the system I believed would protect me.”


법률가로서 테사는 자신이 이기지 못할 것을 안다. 반증에 성공할 도리가 없다. 경찰 조사에서, 법정에서 모욕과 수치심은 성폭력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몫이다. 하지만 테사는 782일 동안 싸웠다. 여자들은 어느 지점에서 깨닫지 않던가?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앞서 싸운 여자들 덕분이고, 내 다음을 위해서라도 싸워야 한다는 것을.


"내가 아는 건 오직

어딘가. 어느 때.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것"

여자 셋 중 하나가 성폭행 당한다고 테사는 말한다. 법은 여전히 여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호주 인권변호사 수지 밀러 Suzie Miller 원작으로 2019년 호주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진뒤 2022년 영국 웨스트엔드와 2023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라스트 듀얼>에서 강간당했던 여주인공, <킬링 이브>의 킬러 조디 코머 Jodie Comer 가 영국과 미국 무대에 섰고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터키, 페루, 독일, 오스트리아, 아이슬랜드, 네덜란드, 프랑스, 세르비아, 브라질, 중국, 스웨덴, 멕시코에서 번역되어 무대에 올려졌다. 전세계에서 불길이 미친 속도로 퍼지는 느낌이다. 속에서 천불 나는 감정을 세계 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직 모르는 이들이 있다. 이게 어떤 감각인지, 무엇을 움직이는지, 모르면 그냥 겸허하게 따르기를. 법과 절차를 따지는 것만으로는 결코 수긍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법은 남자들이 만들었잖냐고 되묻는 테사를 만나보기를.





어제 예매했기에 맨 뒷자리 감수했는데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은 충분히 잘 보인다. 딸과 나는 이자람 연기에 "미쳤다"는 말밖에 못했다. 뭔 연극인지도 모르고 따라나선 딸이 "너어어어무 좋았다"고 조르는 바람에 에코백과 뱃지 등 굿즈까지 상납했다. 이 작품에 이렇게 열광하는 젊은 여자들의 기세에 이렇게나마...



딸이 가보고 싶었던 신당역 중앙시장 비건식당 #고사리익스프레스. 고사리 풍미가 들깨 향과 표고버섯과 기막히게 어울리는 고사리 들깨 비빔면, 국물이 진국인 고사리 클래식 온면이 훌륭했다. 당근 퓨레에 양배추와 두부로 만든 네팔스타일 당근모모 만두도 굿. 리뷰 좋던 완탕은 평균. 중앙시장과 윗쪽 황학동 그릇가게 둘러보며 웨이팅 1시간 보람 있었다. 웨이팅 과일이라고 자두를 주다니 스윗하지. 아주 작은 가게라 우르르 불가.


딸이 찾아낸 충무아트센터 뒷쪽 #북해빙수 역시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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