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서 강수욕하던 시절이 있어요. 1950년대에는 해수욕 부럽지 않았죠."
어제 오후 오티움에 놀러온 도시연구자 D가 사진을 보여줬다. 서울은 개발로 사람들의 한강 접근을 막았다고 했다.
놀라운 사진이었는데, 오늘 극장에서 그 장면을 또 보게 될거라 상상못했다. 우리는 강을 어떻게 망가뜨렸나.
최승호 감독님 #추적,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역대급이다. 담담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진행하는데 내용은 내내 충격과 경악이다. 언론 파괴와 자연 파괴라는 MB의 양대 업적에 새삼 질린다. 우리는 속았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뮌헨 이자르강에서 시작한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 옆으로 모래톱이 펼쳐지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강수욕을 즐긴다. 이게 강이지. 그런데 우리 한강도 그랬다는 장면이 나온다. 마침 어제 구경한 풍경들이다.
“그는 한국의 강을 개조한 사람이다. 나는 17년째 그를 추적하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는 MB의 공약이었다. 그러나 민심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고 스스로 철회했다. 문제는 '한반도 대운하'가 '4대강 살리기'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뒤 벌어진 일이다. 포장 바꾼다고 다 속아넘어갔다. 아니, 적지 않은 이들이, 특히 언론이 자발적으로 속고자 했다. 사기꾼과 한 배를 탔다.
MBC PD수첩 최승호 PD는 당시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을 추적했다. 수심은 수천톤 배가 지나는 운하용 필수조건. 운하를 포기했다고 해놓고 4대강 살리기를 내세워 강을 팠다.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서 굽이치던 강줄기가 직선으로 바뀌었다.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해요”
영화의 한 조각은 언론이다. MBC 김재철 사장은 PD수첩 방송을 막았다. PD수첩 팀은 대거 다른 부서로 내쫓았고, 최승호 PD를 해고했다. KBS, MBC를 망가뜨리면서 조중동 매경에 종합편성 방송사 하나씩 허개해주고 해마다 수천억 매출을 안겨준 것도 MB다.
최승호 PD는 뉴스타파에서 4대강 이슈를 계속 추적했다. 5년반 만에 복직해서 MBC 사장을 지낸 뒤 다시 현장 취재로 돌아갔다. 화면 속 꽤 귀여운, 젊은 PD는 어느새 눈가 주름이 깊어졌지만 한결 같이 MB에게 질문하고 현장을 탐사한다.
AI가 언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시끄럽지만 언론의 본질은 질문이다. 대운하는 왜 4대강 살리기로 둔갑한 것인지,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는지,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돌이킬 수 있는 일인지 그는 17년에 걸쳐 추적했다. 한 언론인의 분투를 쫓아가는데 난데 없이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그의 고통과 절망, 분노, 집념과 의지, 희망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언론인의 표상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이 사무치게 고마웠다. 오열할 영화가 아닌데 내가 왜 이럴까. 저널리즘이 궁금한 이는 AI에 묻지 말고 이 영화를 봐야 한다. <추적>이 심장을 울리는 첫번째 이유다.
MB는 강 바닥을 파냈고, 16개의 보를 세웠다. 로봇물고기가 수질을 진단하고, 배의 프로펠러가 산소를 물로 넣을거라 했다. 그랬나? 모래와 습지가 사라지면서 여울과 맑은 물도 사라졌다. 유속은 10배로 느려졌고 고인 물은 청산가리보다 독한 녹조로 가득찼다. 흐르는 물에 자라지 않는 연꽃이 피었고, 물고기는 한 고장에서만 수십만 마리씩 죽어나갔다. 수질 개선이나 홍수 관리 등 보의 쓰임새를 홍보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최승호 PD는 4대강의 현재 모습을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추적했다. 4대강 살리기가 운하라는 사실을 먼저 포착했던 김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강이 망가지는 과정을 직접 촬영하고 기록했다. 과학자들은 낙동강 주변 주민들의 콧속에서 녹조의 독성을 확인했다. 그게 10~20년 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는 취재는 신중하지만 소름끼친다. 독극물 녹조 물로 농사 지은 쌀과 농산물 문제도 충격이지만, 정부의 수질 관리가 사기극에 가깝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취수장 주변 녹조 물이 아니라 몇 km 상류 물을 채취하다니. 그렇게 룰을 바꾼 4대강 전도사 박석순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어떤 짓거리를 했는지 적나라하다. 강 바닥을 수심 6m로 파냈지만 세월 따라 퇴적물이 쌓이면서 이제 수심 0.5m도 안되는 현장은 웃프다. <추적>은 4대강 사업 이후 십수년이 흐른 현재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놓쳐서 안될 팩트들이 <추적>을 봐야 할 두번째 이유다.
16개의 보는 암담하지만, 금강과 영산강에서 일부 보를 개방한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자연이 스스로 치유하는 기적. 반면 낙동강 보들은 주변 지자체들이 정치적 이유로 보 개방에 반대했다. 문재인 정부 때 개방한 보들도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닫기도 했다. 강물과 주변 생태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명확한 증거들이 쏟아지는데 국민의힘은 MB의 유산인 보 사수에 전력을 다한다.
뮌헨의 이자르 강은 MB 대운하 구상에 영감을 준 곳이다. 20세기 초 독일 정부가 강을 직선으로 만들고 강의 양옆에 콘크리트 벽을 쌓았다. 그때도 수질개선과 홍수 예방을 내세웠다. 하지만 수질은 나빠졌고, 지하수는 고갈됐으며 홍수 피해도 심해졌다. 뮌헨시는 10여년 조사 끝에 ‘이자르강 재자연화 사업’에 착수, 일부 구간을 복원했다. 여울과 모래톱이 다시 생겼다. 시민들의 강수욕이 부활했다.
영화 <추적>은 4대강 재자연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시간과 돈이 들겠지만 강을 되살릴 수 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명이라도. <추적>을 격렬하게 추천하는 세번째 이유다. 알량한 권력은 금새 시들지만 자연은 힘이 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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