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한다는 것> 최강록이 스며드는 이유

by 마냐 정혜승


"내가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은 아무래도 소주다. (빨간색 뚜껑.) 이런 가격에 거의 모든 한식을 아우르는 블랙홀 같은 술. 각자 다른 역에서 탔지만 내리는 곳은 모두 같은, 술의 종착점. 고백하자면, 나는 평생 소주와 살았다. 파스타도 탕수육도 장어덮밥도 소주와 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엔 소주가 싱거워져서 혀에 느껴지는 경쾌한 맛이 예전만 못하다."


책에서 '빨뚜' 얘기가 나오는데 괜히 반가웠다. 작년 초여름에 나온 책인데 겨울에 만났던 흑백요리사 한 장면이 겹치다니 한결 같은 사람을 발견한다.

나도 흑백요리사2가 더 좋았던 한 사람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모두 축적의 시간을 통해 쌓인 땀의 결실이란게 분명한 이들. 성실하게 노력해온 저마다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줬다. 파인다이닝은 눈요기만 했지만 집밥할 때 응용해보고 싶은 장면들 덕분에 두근거렸던 시간이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흐뭇한 그 여운을 이어가게 해준다. 음식에 대한 추억, 요리에 대한 성찰, 요리를 하는 직업인의 태도까지 최강록 셰프에게 스며든다. 내친김에 넷플릭스 <주관식당>까지 보기 시작했는데, 잘난 척과 거리가 백만년 쯤 되는 예술가는 드물지 않나? 가진 지식과 경험을 탈탈 털어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를 본다. 그는 매사에 진심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할 줄 아는 조림 요리가 많지 않다는 게 창피해서 더 공부를 한 것"이라는 그는 본의아니게 운명 지어진 조림인간. 10초만 덜 조려도, 더 많이 조려도 다른 맛이 나오는 미묘한 조림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그느 스스로 100점 만점에 51점을 준다. 아마 속으로 99점에 가도 51점이라고 답하며 끝없이 시간과 불을 달리하며 레시피를 개발하지 않을까? 겸손함이 그의 힘이다. 어쩌면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라 매번 최선의 최선을 찾는 듯 하다.


"찜 요리는 찜통에 쪄내면 그만인 것 같지만 생각보다 어렵다. 날것 그대로를 증기로만 조리하니 재료의 신선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나 생선찜은 거의 부끄러운 민낯이 공개되는 수준인데, 우선 심상치 않은 냄새부터 난다. 맛있는 찜 요리의 핵심은 재료의 신선함이다."


칼을 만나고, 길들이고, 다듬는 모든 과정도 장인의 풍경이다. 왼손이 횟감을 누르는 시간까지 신경써야 프로페셔널.


"회를 뜨기 직전에 칼을 갈면 쇠비린내라는 금속향이 회에 밴다. 전날이 아니면 최소 몇 시간 전에라도 갈아놓는 게 중요하다. 그런 다음 세제로 닦아서 쇳기를 없애고 잘 말려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해놓는다. 냄새뿐만 아니라 회의 완성도에도 영향을 준다. 무딘 칼로 썰면 톱질처럼 하게 돼서 회가 매끄럽지 않다. 칼이 잘 안들면 횟감을 잡고 있는 왼손이 횟감을 꾹 누르게 된다. 대고 있는 시간도 길어져서 회에 전달되는 온도가 회의 맛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감기 기운 때문에 몸에 열이 있으면 손으로 연어살을 5분만 잡고 있어도 연어가 익는다고 한다."


그의 진심은 사람으로 향할 때 또다른 울림을 낳는다. 손님 뿐 아니라 동료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한다. 별 것 아니라고, 당연한 일상이라고 슬쩍 지나가버릴 것 만 같은 그의 고백이다.


"직원용 식사.. 정식 메뉴가 되기도 한다. 네오의 직원이 둘이었을 때는 그날 들어온 재료들을 늘어놓고 직원들에게 마음껏 음식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나중에 각자 식당을 오픈할 때를 대비해서 연습을 해보라는 의도였다. 그래서 직원들도 공부를 해와야 한다.

내가 직접 점심을 만들어준 적도 많다. 국물로 국밥도 긇여주고, 남은 회도 같이 먹었다. 그렇다고 질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도 좋은 상태의 재료로 만든 음식만 먹는다. 요리를 하는 사람들로서 우리의 입맛도 높여야 하니까... 우리 직원이 어디 나가서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질문을 받으면 "예, 잘 먹고 다녀요!"라고 답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목표였다."


왜 우리는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 그런데도 겸허한 사람, 매사 성실하고 진심인 사람에게 끌릴까? 그렇지 않은 이들을 많이 보기 때문일까? 가진 1로 10을 떠드는 나같은 인간은 10을 갖고도 1을 벼르고 깍아서 내미는 이들 앞에 작아진다. "숯은 피크 포인트가 있다는 점, 자신의 삶에서 최고인 순간인 전성기가 있다는 점 때문에 인생에 비유하고 싶었는데, 결국은 재가 되어버리는 허무함도 갖추었다"고 말하는 사람. 대학을 중퇴하고 요리에 나섰다가,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늦깍이로 요리 유학을 떠났고, 돌아와서도 돌고 돌아서 우리 앞에 선 장인을 만난다. 짧은 책의 여운은 <주관식당>으로 달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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