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과의 어색했던 하루
고잔역 2번 출구로 나오자 널따란 야외 주차장이 보였다. 자동차들이 듬성듬성 서 있고, 주차장 건너편에 심긴 가로수 너머로는 고층빌딩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안산이구나, 경기도만 해도 건물들 높이가 낮나 보네. 서울 촌놈에게는 낯선 풍경이어서 발걸음을 내디디려니 가벼운 긴장감이 느껴졌다. 정식의 차가 여기에 주차되어 있을 테니, 우선 주차장을 둘러보았다. 기아 K5였지 아마. 나는 정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벨 소리가 세 번 울린 후 갑자기 클랙슨 소리가 빵 하고 울렸고, 나는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왼쪽 대각선 방향에 K3 차량 하나가 점멸등을 깜박거리고 있었고, 그 안에서 선글라스를 쓴 한 남성이 창문을 내리고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턱과 턱살이 층을 이룬 것을 보니 정식이 확실했다. K5가 아니었구나. 저 차를 그렇게 많이 얻어 타곤 했는데 기억도 못하네. 나는 전화를 끄고 그쪽으로 총총걸음을 쳤다. 반가워서 한걸음에 달려가는 듯한 인상을 줄 만큼 빠르고, 가서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할 시간을 벌 만큼 천천한 속도로.
* * *
정식과 같은 반이 되었던 것은 초등학교 육 학년 때였다. 통통한 몸집에 각진 분홍색 뿔테 안경을 쓴 그는 낯가림과 호탕한 웃음을 겸비했는데, 평소에는 다른 친구와 친해지고 싶은데 말은 못 걸겠는지 주위에 어슬렁거리는 소심쟁이로 있다가 웃을 때만큼은 교실 전체가 울릴 정도로 허허거렸던 것이다. 같은 반의 두 친구와 정식은 죽이 잘 맞아 셋이 곧잘 어울렸고, 그 둘과 원래 친했던 나는 자연스레 정식과 어울림으로써 네 사람이 한 무리를 이루었다.
하루는 넷이 정식이네 집에서 놀기로 했다. 정식은 이전부터 집에 오면 엑스박스 게임을 시켜 주겠다고 말해 왔었는데, 드디어 그날이 되었던 것이다. 들뜬 마음으로 하교하는 길에 신발끈이 풀려서 나는 이를 다시 묶기 위해 교내 화단 가장자리에 왼발을 올리고 오른 무릎을 구부리며 허리를 숙였다. 그때 한 친구가 정식과 다른 친구에게 뭐라뭐라 속삭이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쟤 버려!”라고 크게 외친 후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기다리라고 외쳐 보았지만 세 사람은 계속 전속력으로 달리는 중이었고, 그들을 쫓아가려 하다가 신발끈을 밟아 앞으로 자빠졌다. 몸을 일으켜 끈을 다시 묶고 보니 세 사람은 교문 너머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정식이네 집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핸드폰도 없던 나는 혼자 찾아갈 방법이 없었다. 분명 기다려 달라는 말 들었을 텐데, 나 핸드폰 없는 거 다들 알 텐데, 날 버린 건가, 쟤네는 당초 나의 진정한 친구가 아니었던 걸까 따위의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갑자기 교문 사이로 누군가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정식이었다. 정식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고 나의 옆에 다가와 괜찮냐 묻고서 본인도 친구들도 조금 너무했던 거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한테는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해 놨으니 같이 가자는 말을 덧붙였다. 정식이만큼은 나를 버리지 않는구나, 나는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중학교 학생들은 그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와 같은 중학교에 진학한 정식은 중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다른 학생들 옆에서 어슬렁거리다 초콜릿 한 번 먹어 보라고 abc 초콜릿 여러 개를 나누어 주면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그는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행동은 그를 단지 만만한 초콜릿 셔틀로 만들 뿐이었다. 정식이 초콜릿을 가져오지 않는 날이면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욕을 뱉고 그의 머리를 후려치곤 했다. 그 착한 정식을 사람들이 왜 그렇게 대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여전히 호탕한 너스레웃음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재주를 나와 있을 때면 보였는데 말이다.
그해 사 월 중순은 중학교 일 학년이 서울랜드로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었다. 나는 같은 반 친구들과 같이 가기로 했는데, 당일 아침 정식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가 친구가 없어서 같이 갈 사람이 없는데 나랑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우리 반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다고 대꾸했지만, 그는 그렇다면 그 무리에 끼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약간 당황했으나, 이내 내가 넘어졌을 때 정식이 나를 다시 데리러 온 기억이 떠올라 알겠다고 답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학교 앞 지하철역 안에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은 나와 정식을 보자 나에게 옆에 누구냐고 물었다. 정작 나는 입을 열지 못해 어물댔는데, 정식이 먼저 나서서 대답을 대신했다. 다인이 친구인데 여기 껴도 될까? 친구들은 떨떠름한 기색을 못 숨기며 알겠다고 답했다. 지하철 안에서 두어 명은 정식과 정답게 대화를 나누었으나 나머지는 나보고 들으라는 듯 “얘를 우리가 대체 왜 데려가야 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대꾸해 봤자 괜한 소리만 들을 것 같아 나는 조용히 지하철노선도를 쳐다보며 못 들은 척했다. 그래도 정식이가 즐거워하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그렇게 그와 나의 관계는 더더욱 돈독해지다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 정식은 용인으로 이사를 갔고, 핸드폰이 없었던 나는 그와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그러다 스물두 살 때 페이스북을 시작하니 친구 추천 목록에 김정식이라는 이름을 보았고, 곧장 그 프로필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 그와 만나자고 했다. 그때부터 그와 일년에 두세 번은 만나 회포를 풀곤 했다. 하지만 정식이 일로 바쁘고 나도 학업 및 대외활동에 치여 살아 몇 년간 보지를 못하다가, 얼마 전 정식이 나에게 안산에 고잔역 근처로 또 이사를 갔으니 놀러오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나는 거기 근처 맛집 찾아 놓으라고 답장했다.
* * *
정식은 자기 집 앞에 자주 가는 이자카야에 가자며 나를 차에 태웠다. 차에서는 나나 정석이나 멋쩍은 것은 매한가지였는지 어색한 공기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잘 지내냐, 난 잘 지내는데 너는, 나도 뭐 그냥, 이런 식의 짧은 문장들이 오갔고, 정식은 피식 웃었다. 몇 년 전만 해도 호탕하게 웃었던 것 같은데, 그새 웃음소리가 바뀌었다기보다는 어색한 공기에 짓눌려 평소처럼 웃지 못하는 듯싶었다.
그의 집 주차장에 차를 대고서 우리는 근린공원을 가로질러 상가로 빼곡한 거리를 걸었다. 그는 검지로 오른쪽 건물을 가리키며 저기 삼 층에 자신이 다니는 헬스장이 있다고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데도 살을 못 빼냐 이 돼지야라고 말했겠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사이는 아닌 것 같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이후 침묵이 흘렀고, 정식은 걸으면서 핸드폰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더운 바람에 등줄기에서 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자카야에는 주인장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정식은 여기에 오면 자기가 꼭 먹는 메뉴들이 있다며 오꼬노미야끼, 아끼소바, 치킨가라아게, 라멘 두 개 그리고 사케를 주문했다.
“뭔 메뉴를 이렇게 많이 주문해. 이걸 어떻게 다 먹어.” 나는 말했다.
“사 주는 거니깐 부담스러워 하지 마.” 그가 답했다.
“아니 사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다 먹지도 못할 거 왜 이리 많이 주문하냐는 거지.”
“내가 못 먹겠냐? 초딩 때도 이 정도는 혼자 다 먹었어.”
“하긴 너라면 가능하겠네. 너 우리 집 냉동실에서 용가리 치킨 꺼내서 구워 먹은 거 기억나? 그때 네가 우리 엄
마한테 허락도 안 받고 혼자 한 봉지 다 먹어서 우리 엄마 빡쳤었는데.”
“진짜 그날 너무 배고프긴 했어. 아직도 그때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잊혀지질 않아. 그래도 그 건은 아직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어머니께 꼭 전해줘. 그때는 철이 너무 없었어.”
“싫어, 우리 엄마에게 너는 영원히 나쁜 놈인 채로 놔둘 거야.”
“이런 개자식.”
시답잖은 얘기로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술이 홀짝이다 보니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그는 자신의 근황을 자세하게 늘어놓았다. 반도체 회사 하청 공장에서 관리 감독하던 일을 관두고 어머니와 함께 대부도에서 펜션을 운영하게 되어 안산에 집을 하나 얻었단다. 사실 늦게나마 대학교에 진학할까 고민도 했지만, 펜을 놓은 지 너무 오래되어 다시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와 정식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스물일곱이 되도록 졸업을 못하며 대학 생활을 했고, 정식은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온갖 공사장이나 공장을 전전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나의 근황은 대개 대학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 가령 조별과제로 인해 조원들과 갈등하는 것이나 연애 관련 고민 정도였고, 정식의 근황은 공사판에서 드릴을 사용했던 경험이나 현장의 아저씨들과 주먹다짐하다가 경찰서에 갔다는 설 등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서부터는 서로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그럼에도 그가 아직 나의 절친인 이유는, 그와 나의 거리가 조금은 멀어졌을지언정 어느 지점부터는 그 거리감이 더 커지지는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서로가 서로에게 베풀었던 호의는 여전히 둘 사이의 연결고리로써 기능하고 있었다. 그것은 삼 년의 시간과 둘 사이의 이질감 따위로 헐거워지지 않는 무언가이다. 이 연결고리 덕분에 우리는 잠시나마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각자 공사장과 대학교에서의 삶을 잠시 뒤로하고, 엄마 몰래 용가리를 먹던 그때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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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나오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술기운이 한껏 올라 뜨거워진 이마를 바람이 식혀주어 기분이 한껏 좋아졌는지, 나는 갑자기 정식에게 무언가 이야기하고픈 욕구가 차올랐다.
“있잖아 정식아, 아까 너 마주쳤을 때 잠깐 어색하더라고. 난 그 순간이 너무 싫더라. 그 누구보다 착한 친구라고 사람들에게 너를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는데, 그런 너랑 사이가 멀어져 버린 것 같았거든. 그런데 너랑 식당에 앉아 몇 분 대화하다 보니깐 어느새 정겨워지더라. 지금 말하기 전까지는 어색함이 생각나지도 않았어. 우리가 절친이기는 한가 봐.”
“닥쳐, 겁나 오글거리네. 남자끼리 이게 뭔 대화냐?” 그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 진짜 이 돼지새끼가, 오랜만에 진지한 말 하는데 분위기 깨냐. 그냥 꺼져라.” 나는 이 말을 하고 중지를 정식의 눈앞에 내밀었다.
그 말을 들은 정식은 거리 전체가 울리도록 너털웃음을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내가 초등학생 때 정식에게서 들었던 것과 상당히 흡사했다. 나도 덩달아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