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3,800m, 세상의 지붕이라 불리는 곳에서 호수를 만났다. 그것도 상업용 선박이 다니는 호수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티티카카 호수다. 마침 페루 쪽의 파업 여파로 일정이 바뀌어 볼리비아의 라파스를 출발해 코파카바나를 거쳐 가게 되었다. 고도가 높아 약간의 두통과 함께 고산증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출발했다.
라파스의 절구통 같은 도시를 벗어나 우리는 다시 고도를 높여갔다. 첫날 밤 도착해 보지 못했던 엘알토 공항으로 가는 길이 펼쳐진다. 도로 양옆의 풍경은 마치 20년 전의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시골 공항 가는 길과 닮아 있었다. 무질서하게 늘어선 집들과 거리, 그럼에도 느껴지는 활기. 남루한 시장과 그렇게 부유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오히려 안도감을 준다.
"도대체 왜 가난한 곳을 볼 때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곳 사람들은 늦가을 옷차림에 대부분 모자를 쓰고 있다. 좌판을 깔고 혼자 손님을 기다리는 인디오 아주머니들의 풍경은 어쩐지 우리네 시골 시장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그들도 우리처럼 치열한 삶의 한가운데서 분투하고 있으리라. 인간으로 태어나 비록 다른 환경에 처해 살지만, 삶이란 결국 고된 것. 새벽부터 시장에 나가는 사람, 일터를 전전하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 우리와 다르지 않다.
1번 국도를 달리다 2번 국도로 바뀌자 도시를 벗어난 들판이 펼쳐진다. 구름에 휩싸인 설산이 저 멀리서 신비롭게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티티카카 호수의 태양의 섬. 이국적인 집들과 가끔 마주치는 마을의 분주한 시장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에는 민둥산, 왼쪽으로는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시작된다. 호수라 하기엔 너무나 광활해 차라리 내륙의 바다라 부르고 싶을 정도다.
선착장 티퀴나에 도착해 트리퀴나 해협(호수에 있으니 '호협'이라 부르는 게 맞을까?)을 건너는 배로 갈아탄다. 해협을 건너는 시간은 10분 남짓이지만, 승선 준비 시간이 더 걸린다. 근처 조그만 가게에서 캔맥주를 사 목을 축인다. 여전히 고산증은 경계 대상이니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한적한 시골 선착장.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별과 만남의 스토리가 있었을까? 우리 버스는 페리로 건너가고, 여행자들은 지붕 있는 작은 보트에 탄다.
배 안에서 원주민 모녀를 만났다. 엄마는 생글생글 웃으며 아기를 우리의 모델로 내어준다. 우리 모두는 그 아이의 표정을 보며 웃으며 해협을 건넜다. 아이는 뜨개질로 짠 방한용 모자를 쓰고, 인디오 문양의 울긋불긋 화려한 옷을 입은 채 엄마의 '아와요'(전통 천)에 싸여 있었다. 짙은 눈썹에 건강한 커피색 피부를 가진 아이. 구름 낀 호수의 날씨는 아이에게도 겨울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엄마 품에 안겨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보며 미소 짓고 있다.
"자, 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나는 어릴 적 동양인 관광객들이 날 쳐다보며 웃던 기억이 있어'라고 말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가 지금 얼마나 특이한 구경거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산 페드로 선착장 건너편 마을은 제법 정돈되어 있다. 망코 카팍의 잉카 왕 동상이 우리를 맞이한다. 그 옆에는 벼룩시장이 열려 있는데, 신선한 지역 채소들이 좌판에 펼쳐져 있다. 감자, 고구마, 아직 까지 않은 콩, 그리고 좀 더 가보니 바나나, 포도, 토마토까지.
다양한 모자를 쓰고 아와요를 방한용으로 걸친 원주민 아주머니들의 표정이 평화롭다. 한 아주머니는 아와요에 커다란 파를 들쳐 매고 있다. 잠깐 사이에 아와요의 다양한 쓰임새를 목격한다. 포대기, 방한, 패션, 보따리 등... 더 많은 기능이 있을 것 같다.
한 꽃 파는 할머니가 색동 아와요에 커다랗고 하얀 꽃 열 송이쯤을 싸서 바닥에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꽃을 돋보이게 하려는 듯 빨간 꽃 두세 송이를 조연으로 두고, 주변에 파란 잎사귀가 넓은 이름 모를 푸성귀를 꽃 아래 깔았다. 안개꽃 비슷한 작은 흰 꽃이 모래알처럼 박힌 꽃으로 주변을 둘렀는데, 탐스럽고 싱싱했다.
그러나 진짜 압권은 그 꽃들을 두른 아와요의 자연스러운 선의 흐름과 할머니의 굳게 다문 입술, 초연한 눈빛, 그리고 검은 손등에 드러난 커다란 핏줄과 주름들이었다. '카라꽃 파는 할머니'라는 제목의 사진이 찍히는 순간이었다.
라파스에서 대략 83km를 왔고, 망코 카팍 주의 주도인 코파카바나까지는 25km가 남았다. 페루에서 티티카카 호수 관광의 중심지가 푸노(Puno)라면, 볼리비아에서는 코파카바나(Copacabana)다.
코파카바나로 가는 길은 산과 평원이 펼쳐진다. 잔뜩 낀 구름이 몰려오는 곳에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바다 같은 호수를 왼쪽에 두고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잉카족이 이 호수에서 태어나 이 산골과 들판에서 살다가 남아메리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고 해요."
포장도로만 외롭게 하나 구불구불 이어지고, 드넓은 초지와 민둥산 위로는 아침부터 하늘을 뒤덮은 구름들이 오전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이런 풍경에 빠져드는 것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길은 하나, 그 길을 가는 조그만 버스 한 대. 길 위아래에 있는 초지는 나무 한 그루 없이 풀들의 세상이다. 그렇다고 방치된 풀밭은 아니고 누군가 매일 깎아주는 듯 단정하다.
"소들이 이 들판과 구릉의 헤어디자이너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렇다면 자기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날 것 같다. "보세요, 제가 이번 시즌에 디자인한 새로운 구릉 스타일입니다. 저 언덕의 굴곡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호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고 평원을 달리는데, 저 멀리서 오는 외롭게 달리는 차 한 대라도 카메라에 담아보려 하면 우리 차가 급커브를 틀거나 저쪽 차가 앞의 구릉에 가려진다. 길은 오직 하나, 우리는 그저 그 길을 갈 뿐이다.
듬성듬성 나무들이 나타나더니 버스가 당도한 곳은 어느 고개다. 놀라운 풍광이 펼쳐진다. 우리 발아래에는 아늑한 포구가 펼쳐진다. 푸른 들판을 지나 시야가 도심으로 옮겨지면 붉은빛 벽돌집들이 티티카카 호수의 물빛에 떠오르는 듯 오밀조밀하다. 얕으막한 벽돌집들 사이 하얗게 빛나는 것은 분명 성당이다.
"잉카의 탄생지에 물방울 하나 떨어트려 피어난 연꽃 같은 건가?" 역사의 아이러니다. 호수라 그런지 파도는 일렁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호수 역시 잔잔하여 티티카카 전체가 아늑한 잉카의 젖줄이었으리라. 코파카바나 건너편 산은 페루의 땅이다. 땅과 호수 사이 인간은 보이지 않은 선을 그려놓고 있다.
고개를 내려오면서 도심에 가까워오자 위에서는 눈에 띄지 않던 노란색 유채꽃이 우리를 반겨준다. 돌담 위의 허술한 나무로 엮은 담장은 쓰러져 가고 꽃들은 어느 계절인지 모르고 피어 있다. 여기는 가을일까, 봄일까? 나의 옷차림은 초가을이고 저 유채꽃의 노란빛은 분명 봄이다.
도시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들어간 곳은 하얀색을 뿜어내던 성당이다. 코파카바나 성모 마리아 대성당(Basilica de Nuestra Señora de Copacabana). 코파카바나에서 약간 고지대에 있어 푸른 하늘과 대비되는 새하얀 외벽이 빛나는 장소다. 이곳에 모신 성모는 수호성인이며, 대성당은 카톨릭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성당의 건축양식은 아랍, 스페인, 남미 현지의 것까지 망라한 종합 건축물로 보인다. 16세기 중반의 르네상스 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건설되었다가 17세기 무어 양식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외부는 이슬람 건축의 무어 양식 외관에 내부는 르네상스 양식. 거기에 잉카 제국 전통의 신앙의 흔적이 더해졌다.
성당 본관 입구 우측에 성모상을 왼손에 들고 있는 인물은 프란시스코 티토 유판키(Francisco Tito Yupanqui)다. 볼리비아의 원주민 조각가로, 이 성당의 성모상을 조각한 사람이다. 성당에는 복제본이 전시되어 있는데, 원본은 2012년도에 도난당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성당은 한가했고, 여행객들만 마음 바쁘게 성당을 둘러보고 있었다. 입구쪽으로 나오자 한국의 방송국 여행 프로그램에서 이 성당을 취재하고 있었다. 세상은 참 좁다. 여기까지 와서도 촬영하는 한국 방송국 관계자를 보다니.
십자가만 없으면 영락없는 이슬람 모스크다. 세계의 문명은 돌고 돌아 하나로 회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거기에 토착 세력의 입김이 더해지면서 똑같아지지 않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바로 지역 문화의 매력이 아닐까.
성당을 나가자 시장이 시작된다. 맞은편으로 건너가도 시장이 계속된다. 촐리타 패션의 볼리비아 시장 아주머니들이 패션 모델처럼 서 있다. 스타일은 같지만 색상은 전혀 다르다. 자신만의 개성은 오로지 색상과 모자의 형태로만 구분하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유니폼 안의 다양성'이라 할까? 온 나라가 하나의 패션 트렌드를 따르면서도 각자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묘한 균형이다."
수크레 광장에서는 아이들이 달리고 있다. 체력 측정을 하는 것 같은데, 선생님은 휴대폰의 초시계를 눌러대며 기록을 재고 있고, 이 소년 소녀들은 고산지대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고 있다. 아마도 체육 시간인가 보다. 운동장도 아니고, 시장과 붙어있는 광장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시장이라고 부르기도 그런 곳을 운동장 육상 트랙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산지대에서 달리기 기록을 측정한다면 이걸 어떻게 평가할까? '해발 3,800m 청소년 육상 신기록'이라고 발표할까? 아니면 '산소 결핍 상태에서의 인간 한계 테스트' 같은 제목으로 과학 저널에 실릴까?"
점심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요리한 송어요리 '트루차'다. 볼리비아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 붙인 '8월 6일 거리'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내용물은 간단했다. 송어를 조리해 구운 감자 위에 펼쳐놓고 소스를 뿌렸다. 쌀밥과 토마토, 양배추, 당근, 레몬 등 평범한 비주얼이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에서 잡힌 송어를 여기가 아니면 언제 먹어보겠는가?
8월 6일 거리를 내려가면 티티카카 호숫가에 커다란 하얀 앵커가 보인다. 정식 명칭은 아바로아 기념비다. 남미의 19세기 말 태평양 전쟁에서 볼리비아 군대를 이끈 전쟁 영웅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물론 이 전쟁에서 볼리비아는 페루와 연합했지만, 서구 열강의 지지를 얻은 칠레에 패해 바다도 없는 내륙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털실로 짠 모자를 쓴 승무원이 기다리는 태양의 섬으로 가는 보트에 승선한다. 섬으로 갈 때는 날씨가 그리 좋지 않고 가끔 비가 내려서 선실로 들어가 앉아있었다. 섬에 도착하자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태양의 섬 트레킹은 취소되었다. 높은 계단을 보고 고산병을 우려한 일행이 모두 비를 핑계로 취소한 것이다. 입구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비를 맞으며 호수의 넓이를 구경하다가 다시 돌아오는 보트에 승선한다.
태양의 섬에 들른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섬 입구의 풍경도 근사하고, 호수를 보면 저 멀리 하얀 설산이 호수의 수평선 너머로 환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이야말로 여행자를 압도하는 장면이다. 여기는 비가 내리는데 저 멀리 안데스의 고봉은 하얀 모자를 쓰고 있다.
사실 이 섬에서만 머물면서 트레킹도 하고 현지 체험을 충분히 할 만한 곳이었다. 숙박 시설도 충분해 보였다. 비가 어느 정도 그치자 본격적으로 안데스의 설산이 사막의 신기루처럼 호수 위에서 우리를 유혹한다. 정상과 산아래는 구름으로 가려져 보일 듯 말 듯하고, 산맥의 중간 부분만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산세를 드러내고 있다.
호수치고는 제법 물살이 거센 곳에 한 척의 조각배가 떠있고, 그 뒤로 보이는 안데스의 설산은 얼마나 오래 저 자리에서 저러고 있었을까? 과연 누군가 다가서 보기나 했을까? 호수의 물결 위에 버티고 서있는 모습에 그저 한낱 유한한 인간은 압도당하며 감탄만 할 뿐이다.
돌아오는 배편에서는 날씨도 조금 개이고 비도 그쳐서 배의 지붕 위로 올라가 수평선을 감상했다. 정말 이곳이 호수던가? 수평선이 보이는 호수에 떠서 호수의 크기를 가늠해보자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배에서 내리면서 보니 이곳에는 볼리비아 해군의 막사가 있었다. 해군의 이름이 아르마다 볼리비아나(ARMADA BOLIVIANA). 스페인 무적함대의 이름 아르마다를 가져와서 볼리비아 해군의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 같다. 바다가 없어 호수에 있는 볼리비아 해군.
"바다 없는 나라의 해군이라니, 이보다 더 아이러니한 직업이 있을까? 그들의 훈련 과정에서 '바다는 이런 것이다'라는 이론 수업이 있을까? 아니면 호수에서의 항해로 바다의 파도와 조류를 상상하며 대비하고 있을까?"
선착장 화장실을 관리하는 아주머니의 아들은 도화지를 펴고 강아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는데, 강아지는 수업태도가 매우 진지했다. 전생에 공부를 많이 한 강아지였나 보다.
버스를 타고 코파카바나를 떠나는데 난데없이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이 차에 올라 여권을 확인한다. 아, 그렇지. 호수 위로 국경선이 그어져 있지. 혹시 모를 밀입국자를 색출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돌아오는 길은 초반에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황량한 산과 황야의 풍경을 감상하는 시간이었고, 후반은 그야말로 설산을 감상하는 시간이었다. 티티카카 호수 구경 갔다가 오는 길에서는 저 안데스의 설산을 보는 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그러나 설산은 그 전모를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더욱 안달을 하며 설산에 메달리는지도 모르겠다.
라파스로 돌아오는 길은 봄이 오는 들녘 같기도 하고 늦가을 풍경 같기도 했다. 풍광이 달라지니 계절의 감각도 둔해졌다. 라파스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가건물부터 건축을 진행하는 건물까지 개발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보인다. 들판에는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해가 저물 무렵 라파스 시내에 진입했다. 시장통은 사람들로 붐볐다. 도로에서 빠져나가는 복잡한 길목에 체 게바라의 커다란 구조물이 서 있다. 오른손에 총을 들고 온몸에 탄약을 휘감고 서 있는 이 멋쟁이 혁명가는 남미의 혁명을 위해 싸우다가 볼리비아 어느 산속에서 죽었다.
갑자기 잊혀졌던 혁명가의 동상도 아닌 철골 구조물을 보니, 그는 왜 편안한 삶을 뿌리치고 볼리비아에까지 와서 자신의 가치에 목숨을 걸었던가 잠시 생각해 본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로 걸어간 사람이 아니었다. 오로지 자유의 가치 하나를 보고 자신이 걸으면서 길을 만들며 걸어갔다. 그의 구조물이 오늘날에도 쿠바 말고도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 서 있는 이유일 것이다.
코파카바나에서 호텔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3시간 10분이었다.
저녁은 라파스의 한식당으로 갔다. 우리 일행이 다 몰렸다. 한국인은 없고 현지인이 경영하는 곳인데, 주문을 받아도 음식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고 계속 주문을 확인하면서 나중에는 주문한 음식이 없다고도 한다. 할 수 없이 라면을 먹는 데까지 시간이 2시간 정도 걸렸다.
화풀이로 소주만 세 병 마시고 왔다. 주문을 해도 무슨 주문을 받았는지 자신들이 잘 몰랐고, 여러 차례 물어보았는데 그때마다 잘 대답을 해줘도, 엉뚱하게 또 와서 주문을 확인하여 그냥 아무거나 되는 대로 달라고 했다. 일행 중 기다리다 지쳐서 다른 곳으로 간 사람도 있다.
"결국 인간은 어떤 높이, 어떤 낯선 곳에 있어도 배고픔과 갈증, 그리고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3,800m 고산지대에서도 한식이 그리운 우리에게, 라파스의 하늘은 묘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