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다 말고 아내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는 육아가 너무 힘든데, 왜 다들 행복하기만 해?"
"누가 그런대?"
"SNS에 육아하는 사람들 보면 다들 행복하대." "난 오늘도 짜증 나고 힘든데, 다들 행복하다고만 하니깐 내가 나쁜 엄마 같고 죄책감이 들잖아."
현실 육아를 버텨내고 있는 아내는 SNS 세상을 보고 속상 해했다. SNS 세상은 좀처럼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내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비교로부터 오는 상실감은 쉽게 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감각 있는 사진과 예쁜 단어들로 만들어진 세상을 보며 아내는 스스로 부모의 자격을 의심했다.
아침부터 아이는 밥을 먹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아직 엄마가 애써 만든 밥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아이는 식판 엎기를 수시로 시도했다. 급기야 아이에게 짜증을 낸 아내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우는 아내를 위로하고 다독여 출근시켰다. 이런 날엔 늦장 부려 퇴근하고, 바람이라도 쐬고 오면 좋을 텐데. 아내는 출근 후 줄 곧 죄책감에 시달렸나 보다. 아직 날이 밝은 오후에 조퇴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눈에 밟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아내는 아이를 보자마자 꼭 안아주었다.
육아는 매일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게 만든다. 웃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노글노글해지다가도, 종일 보채고 떼를 쓰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면 귀를 막고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다. 그러다 가끔 우리의 마음이 솔직하게 표현될 때. 아이에게 짜증을 내거나, 무심한 표정을 보였을 때. 우리는 곧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한 명도 힘든데 둘셋 낳은 엄마들은 어떻게 사는 거야?" 아내는 늘 둘셋 낳은 엄마들의 삶을 걱정했다. 그때마다 꼭 나의 엄마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어머님은 도대체 어떻게 넷을 낳으셨대?." 내가 묻고 싶다. 엄마는 어떻게 넷이나 낳아 길렀을까. 아이를 키우는 지금에서야 엄마의 삶이 보인다.
아내와 소파에 앉아 사이다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고작 몇 백 원짜리 캔 음료로부터 아내와 나는 위로받는다. 하루에도 행복과 불행을 수없이 넘나드는 우리, 서로의 머리를 기대고 위로해본다.
'그래, 사람 마음이 두 마음이면 어때. 때로 밉고 때로 사랑하는 거. 그것도 사랑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