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본다는 것
어디쯤일까?
이사 한 달 전쯤, 출장을 간 남편이 집계약을 해준 덕에 캐나다주소가 미리 생겼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구글맵을 열어 낯선 지도 위를
여러 번 확대해서 찾은 우리 동네는
회색선은 길이요, 일렬로 쭉쭉 늘어선 작은 네모들은 집이로다. 그나마 초록동그라미는 나무라는 게 안심 포인트였다. 그게 다였다.
그 어떤 빌딩도 슈퍼도 빵집도 카페도 없었다
세상에나! 얼마나 가야 있는 거야?
다시 축소를 하고 또 축소를 하면서 깨달았다.
걸어서는 어디도 갈 수 없다는 걸 ㅜㅜ
일상에 필요한 모든 필요는 차로 이동을 해야 한다.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한 그 설정값의 지도 안으로
쏙 들어와 있다. 그렇다. 이동은 늘 차가 해준다.
동네를 걷는 이유가 있다면, 스쿨버스 타러 오가는
3분 거리가 유일하다.
그나마 해외살이가 처음인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 건, 작은 네모들이 살아있는 집의 형태로 나를 맞이해 준 것이다. 이 집 저 집 생긴 모양이나 현관이나 창틀의
모양, 화단을 이루는 나무나 꽃들을 구경하는
재미와 함께.
차로 다니다 보니 자꾸 고개가 돌아가는 집들이 보였다오와! 저 집 이쁘다. 어!!! 저 집도 이뻐!!!
말하다 보면 어느새 씨잉~ 자동차는 멈출 수 없기에..
운동을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동네 구경을 위해 걷고 싶어졌다. 목적지 없이 남의 집 앞을 왔다 갔다 오가는 건 어째 모양새가 이상 할 테니 외국인 친구 지피디가
알려준 운동코스를 찾아 아침 시간에 장착해 본다.
우리 집을 중심으로 사이좋게 딱 10분 거리로
서쪽과 동쪽에 작은 연못이 각각 자리 잡고 있었다.
좋았으!! 처음 나의 선택은 서쪽 연못.
2~3바퀴 돌고, 돌아오는 길은 천천히 집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서쪽 연못 바로 옆에는 시니어타운처럼 형성된 주택단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곳을 걷고 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더 자세히 보였다.
이 하루. 나 자신을 강건하게 지키겠다는
마음의 의지가 걸음이 된다.
한 명 두 명 나를 제치고 나아가는 인생선배들의
등에서 나는 그 문장을 아침공기와 더불어 읽어내며
내 안의 소리도 말을 한다.
저는 아직 살아낼 이유들의 질문을 품은 채
이곳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막상 이렇게 걸으니 좋네요.
막상 살아보니 이곳도 잔잔히 좋아지는 것처럼요.
아주 많이 바빠져 안쓰러운 남편. 언젠가는 이 아침
공기를 나눠가지며 나란히 걷고 싶다.
저 선배들처럼. 소란스럽지 않게
이유를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며 이렇게 말하면 좋겠다. 오늘도 걸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 인생의 책갈피]
오며 가며 구경하는 집들의 현관 앞에 추수감사절의 호박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곧 무서운 핼러윈 장식들과 현란한 조명들이 하나 둘 제자리를 찾아 꺼내어지고 있었다.
오! 구경하는 재미가 두배로 커졌네 저 반대쪽 집들은 어떤가? 이제 밝아지는 동쪽하늘을 향해 걸어볼까!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어지는 가을풍경]
엄마는 가을이면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올라오셔서 하늘 공원 억새를 보러 간다.
가을을 멋지게 누리는 비결을 아는 멋쟁이 엄마다
올해에도 엄마는 언니랑 동생과 함께 하늘 공원에 올랐고 내가 너무 멀어진 게 더 실감이 나셔서 몹시
아쉬워하셨다
바로 전날 밤의 카톡 내용이다.
다음 날
이제 막 대지를 박차고 올라오는 태양의 힘찬기운을 배경 삼아 집들의 지붕선이 더욱 극명해지고 있는
드라마틱한 아침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한 사람이 떠오르는 빛줄기를 받으며 어디선가 걸어 내려오고 있다. 그 사람을 자세히 보려다 강한 빛을 눈에 가득 담아버린 탓에 잠시 눈을 감고 가만히..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사람은 지나갔지만 길의 양쪽으로 길쭉한 무엇이 보였다.
억 억새? 그제야 작은 언덕 위로 펼쳐지듯 피어있는 억새들의 은빛향연을 보게 된 것이다.
어머나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가 함께 보고 싶어 했던 그 억새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아쉬운 엄마의 마음이 하룻밤 사이 요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초현실적.
눈앞의 풍경이 그랬다.
눈은 여전히 어딘가를 바라보았지만 마음이 아무것도 해석할 수가 없었다. 때로는 해석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뜨거움,
심호흡을 해본다. 마음을 정돈하고 보니 그곳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언덕이었다.
그제야 오르는 샛길이 여러 개 보인다.
가장 길게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을 택해 한 걸음씩 오른다. 그저 평야지대인 이곳에서 갑자기 한발 두발 위를 향해 걷는 발걸음이 마냥 신기했다.
산이라고 해야 한국 어느 동네의 작은 뒷산보다도 낮은 수준이지만. 내가 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벅차다.
발아래로 동네 집들의 지붕이 내려다 보인다.
고개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미국과 캐나다를 가로지르며 흘러가는 디트로이트 강까지 훤히 보이는 전망.
가빠진 숨을 여러 번 내어 쉬며.
“6개월” 하고 말한다.
처음 지도로 이곳을 상상해 보던 그때로부터 수개월이흘렀다. 그저 작은 점들로만 보였던 것이 하나하나의 이야기처럼 궁금해진 실체가 되어 있다.
살아낸 6개월이 이 언덕만큼이나 내게 다른 시선을
열어 준다는 것을 인정 하는 날이였다.
아침산책에 언덕이라는 큰 선물을 받은 날 생각했다.
캐나다를 다시 그리워하는 시간으로 옮겨진다면,
이곳이겠구나...
아이들은 곧 이곳에서 눈썰매를 탈 예정이다 :)
같은 공간에 추억이 하나 둘 쌓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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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의 제목은
6화 [윈저 지도에 깃발 꽂기] 7개월이 된, .
도서관, 마트, 공원, 놀이터, 미술관, 병원처럼 살아내며 보고 느낀 이야기들을 써 볼게요
내가 놓아두고 가는 것보다 항상 더 놓아주시는
응원들에 감사해요 매번 진심은 닿는구나, 더디고 느리더라도 허투루는 하지 말자 하는 마음으로 다음 글을 담아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