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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일기 쓰는 아빠 Aug 14. 2020

어쩌면 아들이 '문학소년' 일 수 도 있어

인공지능 때문에 육아에 목숨 걸게 된 아빠의 사연 - part III

떠날 때의 '안녕'은 뭐야?


하는 선율이의 질문에 나는,


떠날 때는 안녕~ 하고 물결모양 부호를 붙여서 인사하는 거고,
돌아와서 반가울 때는 안녕? 하고 물음표를 붙여서 인사하는 거란다. 


라고 대답해 주었다. 


오늘 이른 아침, 아내가 출근하면서 선율이 와 인사를 나눴다. 아내가 먼저 '안녕~'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선율이는 밤하늘의 별빛보다 조금 더 짙은 눈물을 푸른색 이불 위에 뚝 소리를 내며 떨어뜨렸다. 


오빠, 선율이 가 문학소년 일 수도 있겠어.


요사이 점점 더 중요한 일을 감당해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아내가 애잔하고 복잡한 심정을 담아서 한 말이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바쁜 아내와 문학 소년 아들.


내 엄마와 나를 떠올리게 한다. 


나의 엄마도 엄청 바빴고, 나는 세상 모든 게 문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아서 이해가 느린 '문학소년'이었다. 숫자들 간의 법칙도 문학적으로 설명되어야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이것은 게으름에 대한 새로운 핑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무뎌져서 잘 들지 않는 칼로 잘라낸 빵의 단면 같았던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난 스무 살 시절, 자칭 문학소년의 메모를 오늘 꺼내 읽어보았더니, 역시 내 아들을 이해하는 단서가 나 자신 안에 들어있음을 알았다. 메모는 이렇게 시작했다. 




어린 왕자를 오랜만에 꺼내어 읽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명작을 다시 읽을 때면 새로운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른을 위한 동화를 읽을 때면 그런 행운이 더 자주 찾아오는 것 같다. 


어른들에게는 항상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어린 왕자가 한 말이다. 여러 별들을 여행하면서 만난 어른들에게서 받은 인상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졌다. 과천도서관 1층 열람실 구석에서 처음 만난 어린 왕자를 읽었을 당시에도 나는 절대로 속물 같은 어른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속물 같은 어른을 좀 더 쉽게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셈에 눈이 멀어버린 어른이다.  


누군가 수백만 개의 별 중에 어느 별 하나에만 있는 꽃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어.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지,


내 꽃이 저 위 어딘가에 있어.

하지만 양이 꽃을 먹어버린다면, 그 사람에겐 마치 갑자기 모든 별들이 꺼져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데도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어린 왕자는 어른들에 대해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때론 답답해하기도 하고 지루한 듯 하품을 했다. 하지만 서로에게 길들여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상대를 만났을 때, 새삼 진지해졌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 그에게 가장 소중한 장미꽃을 떠나온 자신을 질책하듯, 인생의 가장 크고 무서운 결정을 내린다. 뱀에게 물리는 것이다. 다시 B612 별로 돌아가는 방법이라면서 그 길을 선택했다.  
나는 열심히 살지 않았다. 그래서 셈에 눈먼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나는 부지런하지 못했다. 독립할 만큼의 돈을 벌어 볼 생각도 못했다.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피어있는 한송이 꽃의 잎사귀 한 장만큼이라도 내 삶을 소중하게 여겼더라면 참 달랐을 것이다. 이렇게—그 당시의 나는 재수생이었다—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세상 모든 게 왜곡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공부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 방법을 알려주는 이가 없어서 답답하던 내 속 마음을 대신 읽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장미꽃을 책임져야 해." 라면서.


나는 내 장미꽃을 책임져야 해.


어린 왕자는 책임이라는 말을 했다. 양들로부터, 바오밥 나무로부터 연약한 장미꽃을 지켜주지 못한 사실을 머릿속에 자주 떠올리면서 자신을 자책했던 것이다. 가시의 뾰족한 끝 부분만큼이나 까탈스럽게 굴던 장미꽃을 뒤로하고 나온 게 무엇이 그토록 미안했을까 싶었지만, 만약 내 인생이 어린 왕자가 여행했던 우주이고, 그곳에 한 송이 장미꽃이 피어있었다면, 나는 비로소 내 인생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라면 지금은 참 많이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을게 틀림없었다. 


아저씨는 이 별들로 무얼 하나요?


나는 이 별들을 관리하지. 별들을 세고 또 세는 거야.


별들을 관리하는 어른과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한 삶의 자세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에 관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스쳤다. 나도 그 어른과 다름없이 수많은 별들을 맡았으면서도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그 숫자들만 세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관리가 아니라 정리에 불과하다. 


내 꽃은 내 별을 향기로 가득 채웠지만, 나는 그 향기를 즐기는 법을 몰랐어. 그 발톱 이야기를 할 때 성가셔할 게 아니라 가엾게 여겼어야 했어.

지난 20년 동안 나는 나그네처럼 이곳저곳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과 내 가족들에게도 사랑과 감사의 빚을 졌다. 마치 어린 왕자 소설 속 이야기처럼, 나는 모두에게 길들여졌고, 나도 그들을 길들여오던 시간이다. 서로를 위해 보냈던 시간만큼 깊은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비로소 어린 왕자에게서 이 사실을 배웠다. 내 나라를 미워하고 시민의식 없이 둔감하게 살아왔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값어치를 잊고 못되게 굴었다.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했다. 가난하다고 핑계 댔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만 하고 축하하지 않았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이제부터라도 내 앞에 놓인 삶을 사랑해야겠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기로 하자. 다큐멘터리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 세상 곳곳에 돋아나서 모두를 아프게 하는 소통의 단절에 관한 이미지들을 발굴해 내는 것이다. 그 조각들을 다큐멘터리 영화에 한데 어우러지도록 모아 놓으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갈라진 틈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꿈은 이 세상 곳곳에 돋아나서 모두를 아프게 하는 소통의 단절에 관한 이미지들을 발굴해 내는 것이다. 




무뎌진 칼로 억지로 잘라낸 빵의 단면 같았던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난 스무 살 시절, 자칭 문학소년의 메모를 오늘 꺼내 읽어보았더니, 내 아들을 이해하는 설명서가 나 자신 안에 가슴 안에 오랜 시간 붙어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형이 캠코더로 촬영한 스무 살, 긴 머리 시절. 나는 늘 저런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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