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기준으로 데이터 잘라보기
데이터 그 자체는 아무런 입장도 의견도 없습니다. 분석가가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목적으로 절취선을 따라 ‘잘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잠재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어비앤비 CEO 인터뷰, 아웃도어 패션상권의 성장, 해운대 소비 특징 분석까지 세 가지 사례를 통해 어떻게 새로운 프레임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코로나 발생 이후 여행 산업은 그야말로 직격타를 맞았습니다. 작년 5월 기준, 에어비앤비의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50% 감소했고, 전 세계 직원의 25%를 정리해고하였습니다. 에어비앤비 CEO 브라이언 체스키는 여행업이 어떻게 비가역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열심히 관찰하고 언론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각 인터뷰에서 몇 문장만 발췌해 보았습니다.
"100만 건의 예약 중 3분의 2는 도시 바깥의 시골 지역으로 몰리고 있는데, 투숙객의 50%는 자택으로부터 300마일 내 숙소를 예약" (Business Insider, 2020.7)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 관할 400개 관광지 등 ‘관광객 중심의 장소 (touristy area)’ 방문객이 줄어들고 있음" (Fortune, 2021.1)
"28일 이상 여행을 떠나는 고객이 4분의 1 가량 차지, ‘여행’보다 ‘거주’에 가까운 트렌드" (Bloomberg, 2021.5)
2013년 무렵 아웃도어 브랜드를 보유한 한 패션회사가 상권 분석을 의뢰하였습니다. 경쟁 브랜드보다 앞서서 고객이 찾는 상권을 이해하고 선점하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핵심 질문은 ‘아웃도어 의류 고객은 우리에게 익숙한 상권에서 구매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신용카드사로부터 아웃도어 브랜드 매출 데이터를 확보하고 공공에 개방된 전국 1200 여 핵심상권 정보와 결합하였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아웃도어 점포를 핵심상권에 속한 경우와 아닌 경우 두 가지로 구분해보았습니다.
각 영역에서의 매출을 합산해보니, 아웃도어 마켓은 전국 핵심 상권 바깥에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질문을 던졌던 패션회사는 새롭게 성장하는 상권은 어디이며 그 특징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2015년에는 부산 지역에 신규 복합쇼핑몰 건축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입점 기획팀은 ‘해운대’라는 공간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카드사는 결제정보를 통해 고객의 자택 위치와 결제가 발생한 점포의 위치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분석팀은 두 가지 위치 정보를 크게 네 개의 덩어리로 분할하여 바라봤습니다. 점포의 위치는 해운대와 해운대가 아닌 부산지역으로 나누고. 고객의 위치는 해운대 내 거주 고객과 기타 지역 거주 고객으로 나누었습니다. 질문의 초점은 ‘해운대 바깥의 외지에서 찾아오는 고객은 이곳에서 결제하는 패턴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해운대 바깥에 거주하는 부산, 경남, 울산 지역 고객들은 다른 부산 지역에서 음식점을 찾을 땐 주로 ‘횟집’이나 ‘고기’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해운대를 방문할 때엔 ‘양식’과 ‘카페’에서 소비하는 금액이 급증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놀러 온 여행객과 해운대 주민들은 해운대 안팎에서의 패턴이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지역의 식당을 가든 '횟집’ 결제금액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요약해보면, 해운대 지역민이나 서울에서 해운대로 놀러 온 여행객들은 ‘여러 바닷가 중 하나'로 인식하지만, 해운대 바깥의 경남권 시민들은 소위 ‘바다와 가까운 핫플레이스’로 인식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을 뜯어보면 모두 익숙한 공식을 벗어나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어비앤비는 ‘관광도시’, ‘국가 수도’와 같은 전통적인 여행지 분류체계 대신, ‘게스트와 호스트의 상대적 거리 300마일’을 기준으로 여행의 동향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박 2일, ‘2박 3일’과 같은 뻔한 여행상품 공식 대신, '28일 이상, 미만’으로 분류하여 트렌드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웃도어 브랜드 본사는 기존의 핵심 패션상권을 ‘로데오상권’, ‘아웃렛 상권’, ‘백화점’ 등으로 촘촘히 나누는 대신, 지금까지 시야에 포착되지 않았던 신흥 상권에 대한 분류 체계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복합쇼핑몰 기획팀은 해운대 고객을 지역 단위로 구분하여 전략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상권의 위치만 기준으로 전략을 세운다면 ‘해운대는 다른 곳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대신, 고객과 상권의 위치를 함께 고려하여 ‘해운대를 찾는 외지인들은 지역민과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답변을 얻었습니다.
데이터를 이리저리 잘라보는 것은 결국 ‘분류 체계’에 관한 접근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실 어느 산업 영역이나 익숙하게 다뤄지는 분류 체계가 있습니다. 전국 공공도서관은 ‘십진 분류표’를 기준으로 도서정보를 관리하고, 모바일앱 분석 서비스는 ‘생산성’, ‘여행’, ‘금융’ 등 앱스토어가 제공하는 기본 카테고리를 기준으로 리포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분류 체계를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인사이트 발굴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과거에 유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관성적으로 유지되는 관점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함에도 이를 토대로 비즈니스 의사결정에 반복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사이트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이 새로울 필요는 없습니다. 데이터는 원래부터 있었고, 약간 다르게 나누어보는 것도 어쩌면 모두가 생각만 했을 뿐 시도를 안해 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분류체계를 의심하고 새로운 재발견을 시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도가 반복적으로 인사이트 발굴하는 프레임으로 증명된다면, 그동안 도메인과 서비스를 바라보았던 관성적인 관점을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