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크리에이터와 기술 플랫폼 메이커
2013년, 손석희 아나운서가 JTBC로 자리를 옮겼을 때 든 생각이 있다. 세상은 플랫폼과 콘텐츠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JTBC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플랫폼이었고, 손석희 아나운서는 시청자들을 채널로 이끄는 콘텐츠 제공자였다. 이들의 관계는 서로를 강화하고 시너지를 일으켰다. 나영석 PD가 CJ E&M으로 옮긴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흐름은 더욱 거세졌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플랫폼의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탄생했다. AI 기술의 발전은 이 변화에 가속도를 붙였다.
ChatGPT, Devin 등의 AI 모델 등장으로 서비스 제작의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졌다. 누구나 손쉽게 자신만의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누구나 콘텐츠 생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AI의 발전은 '서비스 크리에이터'라는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고 보여진다.
반면, 이러한 서비스 제작을 뒷받침하는 기술 자체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기술 생산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엔비디아의 GPU 칩이나 AWS의 클라우드 서비스처럼 근본적인 기술 인프라를 제공하는 플랫폼들이 AI 시대의 주역으로 부상할 것이다. 이들은 서비스 크리에이터들의 아이디어 실현을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이는 스마트폰 등장 이후 성장한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들은 시장 참여자들을 중개하고 거래를 활성화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플랫폼은 근본적인 기술 인프라 제공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서비스 크리에이터들이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 그것이 미래 플랫폼의 역할이 될 것이라 본다.
주목할 점은 이 두 영역 사이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 크리에이터와 기술 생산자 사이의 중간 관리자 역할이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Zapier, Make.com 같은 자동화 도구들이 이들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마치 모래시계의 중간 부분이 좁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우리 사회의 고용 구조도 이에 따라 변화할 것이다. 전통적인 조직에서 중간 관리층이 점점 사라지고, 창의적인 서비스 크리에이터와 전문성 높은 기술 생산자로 양극화되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개인의 역량과 전문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는 시대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우리 아이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세상의 변화를 조금만 더 앞장서서 이해하고, 어떻게 해나갈 수 있는지 추적하고 본인에게 좋은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아닐까.
나는 아이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들을 도울 것이다. 서비스 크리에이터로서 창의력을 발휘할지, 기술 생산자로서 전문성을 키워갈지. 어느 쪽이든 좋다. 다만 아이들이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부모로서 나는 아이들의 강점과 관심사를 자주 관찰하고, 그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살며시 돕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