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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Sep 20. 2023

근력이든 글력이든 탱글해지는 그 날까지

계속 쓰는 수 밖에

이사 핑계로,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은 거뜬하다는 근거 없는 핑계로, 운동을 여차 저차 계속 미뤄뒀다. 더는 미뤄둘 핑곗거리가 마땅치 않아 이제는 진짜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동네 헬스클럽에서 필라테스 24회 이벤트 행사가 떴길래, 바로 신청하기는 머뭇거려져서 무료 체험 수업을 들어보고 결정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첫 수업에서는 약간의 유연함으로 어떻게든 따라잡을만한 것 같아 기꺼이 24회 수강권을 끊었다. 기대보다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서, 낭창낭창 놀기만 했어도 대부분의 동작을 소화하는 걸 보니 내게 기본적인 근력이 있는 것 같아 우쭐한 마음이었다. 


바닥에 누운 채 허리의 중립을 유지하면서 두 다리를 11자로 들어 올린 상태에서 상체를 날개뼈까지 세우는 동작을 이렇게 못할 줄 알았더라면, 있는 줄 알았던 근력이 고작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조금 더 가벼운 운동 쪽으로 기웃거렸을지도 모른다. 환불도 양도도 안된다는데, 과연 24회를 다 채울 수 있을까? 


돈이 아까운 마음에, 마감일이 다가오는 바람에 나는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 필라테스 클럽에 끌려갔다. 그렇게 어느덧 2개월이 다 되어 간다. 그리고 지금 나는 물렁이고 팔랑대던 몸 곳곳이 응축되고 단단해졌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조금 힘을 줘보면 살 갗 아래에 근육이 제법 붙어있는 게 보인다. 과연 근육이란 게 내 몸에 붙긴 할는지 끊임없던 의심은 꾸준한 운동으로 정체를 감췄다. 와! 된다. 이게 되네? 


지금 와서 보면 짧은 시간인 것 같지만, 그 시간을 쌓기까지의 하루하루는 나에게 고난의 연속이었다. 과연 저 동작을 내가 할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나의 처진 엉덩이, 출렁이는 팔뚝이 운동 몇 번 한다고 과연 탱글 해질까, 근육통으로 괜히 내일 컨디션만 망치는 거 아닐까 싶은 매일의 우려와 의심이 나의 발목을 잡았지만, 기한 내에 횟수를 채워야 하는 의무감으로 겨우 게으름의 유혹을 떨칠 수 있었다. 이런 강제성이 없었다면, 난 단언컨대 분명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오지도 못했을 거고, 운동의 재미가 무엇인지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필라테스는 근력을 키우는 그 이상의 것을 주었다. 미뤄두고 싶은 마음을 끝내 모른 체할 수 있는 용기, 절대 못할 것 같아도 결국엔 해내게 만드는 끈기 그리고 이 두 마음을 배반하지 않는 결과물, 내가 쏟는 정성에 대해 딱 그만큼 신뢰 있는 믿음을 준다. 


이제야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운동은 그저 다이어트를 위한 것인 줄 알았는데, 그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운동은 꾸준히 무언갈 하면 무조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정확하게 보여준다.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종목이고, 성취감을 가장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싶다. 비록 2개월 차 된 초보이지만, 지금껏 해 본 다른 취미 활동보다도 만족감이 월등히 높다. 


운동에서 경험한 성취감은 요즘 글을 쓰는 내게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설마 생기겠어했던 근육이 몸에 붙은 걸 직접 보고 느끼고 나니, 내가 시간을 투자하고 정성을 들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온다는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해졌다. 여전히 어려운 동작 투성이지만 근력을 키우겠다는 마음으로 버티듯이, 허공이 흩어져 있는 내면의 생각들을 어설퍼도 꾸준히 써내려 가다 보면 말랑거렸던 나의 글력도 지금보다는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담아 오늘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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