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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 Dec 27. 2018

10. 영화 '코코'로 보는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

영화 '코코'를 보고 느낀 가족과 꿈에 대한 생각

(영화 코코의 스포가 있습니다.)


 휴학을 하고 토익 학원을 등록했다. 딱히 토익점수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냥 남들 다 다닌다 하니까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은 집에 있기가 싫어 밖으로 나갈 궁리를 한 것뿐이었다. 12월은 참 힘들었다. 집에 가서 저녁을 먹어야지, 하고 잠깐 집에 들른 사이에도 늘 가족과 싸우곤 했다. 시험기간이라 차라리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싸우고 난 후에는 오히려 더 악에 받혀 공부를 해 집에 안 들어가는 것이 좋았다. 새벽에 기어들어가 잠만 자다 나가고, 아침 일찍 다시 학교에 가면 부딪히는 일을 줄일 수 있었다

- 나 그래도 몸은 정말 힘들은데, 너랑 이렇게 공부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해.

늘 함께 밤을 새 주는 친구에게 말했다. 시험이 끝나고 힘들었던 2학기도 끝이 났다. 그리고는 힘든 방학의 시작이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어야 하니, 당연히 우리는 하루 종일 싸웠다. 내입장에서는 다 그 애 잘못이었고, 그 애 입장에서는 다 내 잘못이었을 거다. 또 한바탕 싸우고 방에서 한참을 엉엉 울다 문득 지난번 친구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편해. 나는 또 뭔가에 몰두할 것이 필요했다. 그렇게 홧김에 학원을 등록했고,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을 줄여 나가기로 했다.


 학원에서 토요일 오전에 특강을 불렀다. 주말 알바를 가기 전 늦잠을 자는 것이 유일한 낙인 나인데 말이다.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학원도 아닌데 주말 아침까지 부른다고?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돈 내고 다니는 학원. 어쩔 수 없었다. 기왕 일찍 일어나게 된 거 차라리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조조영화를 보자 마음을 먹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학원 때문이 아닌 영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 같았다.


영화 '코코'의 포스터

 올 초에 개봉한 디즈니의 '코코'는 이곳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에 대해 다루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이 영화는 11월 1일 죽은 자의 날에 맞춰 재개봉을 할 정도로 이곳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0월의 멕시코의 길거리는 할로윈 장식부터 다가올 죽은 자의 날을 위한 장식까지, 참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다.

 장식들이 하나, 둘 늘어가자 매일 아침 함께 산책을 하는 마르셀라 아주머니는 나를 위해 이곳 죽은 자의 날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죽은 자의 날(dia de muerto)은 말 그대로 죽은 자를 기리는 날이다. 우리나라의 제사와 제법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성격적인 면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우리나라의 제사가 좀 더 엄숙한 분위기의 애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곳의 죽은 자의 날은 일종의 '축제'와 비슷하단다. 죽은 자들을 기리는 날이지만, 슬픈 감정이 아니라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에서 맞아야 한다.

pan de muerto

 이곳은 마트에만 가도 곧 무슨 기념일이 다가오는구나 짐작할 수 있다. 웬만한 마트는 벌써 입구에서부터 죽은 자의 날을 위한 준비물들이 한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은 바로 이 pan de muerto일 것이다. 해골 모양의 이 빵은 멕시코 사람들이 죽은 자의 날에 먹는 음식이다.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빵이니 멕시코에 가면 한 번쯤 먹어보면 좋을 것 같다.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곳 음식은 정말 잘 맞았지만, 이곳의 빵과 케이크는 유일하게 잘 안 맞는 음식이었다. 대부분이 너무 달고 퍽퍽했으며, 특히 케이크는 혀가 아플 정도로 달아서 잘 안 먹게 되었다. 이곳 케이크는 시트가 대부분 설탕물에 절인 것처럼 축축해서 싫다. 그런데 이 pan de muerto는 생각보다 달지도, 퍽퍽하지도 않아서 좋았다. 버터향 가득한 모닝빵과 비슷한 맛이 난다.

해골을 장식한 까뜨리나

 10월 31일인 할로윈부터 11월 1일 죽은 자의 날까지, 이곳의 초등학교는 대부분 재량휴업일에 들어간다. 두 기념일의 의미는 다르지만, 어찌 보면 비슷한 성격 여겨지는 걸까. 이곳에서 할로윈을 죽은 자의 날의 전야제쯤으로 여겨진단다.

 할로윈이 끝나도 이곳의 어른들은 바쁘다. 서둘러 할로윈 장식을 떼지 않으면 그다음 날에도 사탕을 받으러 아이들 무리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사이에 죽은 자의 날을 위한 장식을 새로 다는 집들도 있다. 죽은 자의 날을 위한 대표적인 장식은 까뜨리나와  금잔화이다.  위 사진에 보이는 해골 장식이 까뜨리나이고, 그 옆에 있는 주황색 꽃이 금잔화이다.

영화 '코코' 스틸컷 중

 마르셀라 아주머니는 영화 '코코'가 이곳의 죽은 자의 날 문화를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영화에서 죽을 자들이 산자들의 세계에 넘어가기 위해 주황색 꽃의 다리를 건너는 장면이 있다. 이 꽃이 바로 금잔화이며, 이곳에서는 cempasuchil라고 불린다. 이 꽃은 실제로 이곳 사람들이 죽은 자의 날 집과 제단을 장식하는데 쓰인다.

죽은 자의 날을 준비하는 사람들, 실제로 금잔화로 꽃길을 만들어 놓았다.
영화 '코코' 스틸컷 중

 주인공 미구엘의 강아지 역시, 이곳 멕시코 전통 품종의 개의 모습을 딴 것이라 했다. xoloescuincle라는 이 강아지는 대단히 비싼 품종으로, 이곳 사람들은 죽은 후 이들이 사후 세계로 자신들을 인도해줄 거라 믿는다.

영화 '코코'의 포스터

영화 후반에 나오는 alebrije 역시 이곳의 전통적인 상상의 동물이며, 꼭 두 가지 이상의 동물이 섞여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 alebrije는 알록달록한 모양 때문인지, 이곳 기념품 가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altar 일 것이다. altar는 제단을 뜻하는데, 우리나라의 제사상과 비슷하다. 이 위는 pan de muerto나 죽은 자가 좋아했던 것들과 사진이 올라가고 금잔화로 장식된다. 커다란 재단을 준비할 공간이 없는 카페나 학원 같은 곳은 위와 같은 미니어처 재단을 사서 기분만 내는 것 같다.

 여행 도중에 간 한 식당에 altar가 핫소스로 장식되어 있다. 이 가게가 저 소스를 만든 원조 가게이기 때문이란다. 재밌는 것은 심지어 스타벅스에서도 커피가루와 커피잔으로 altar를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스타벅스의 바로 옆 맥주 집에서는 맥주병으로 재단을 꾸미는 등, 다들 자신들의 가게에 맞춰 재단을 꾸민다.

죽은 자의 날, 시내 곳곳이 장식되어있다.

죽은 자의 날의 센트로에 간다면 퍼레이드를 볼 수 있다. 마르셀라 아주머니는 멕시코 시티에서 열리는 퍼레이드를 보러 가라 추천해 주셨다. 그렇지만 안 그래도 혼잡한 시티에 그날 가는 것은 혼잡하고 위험할 것 같아서 포기해야만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과달라하라, 과나후아토 등 다른 도시의 센트로에서도 퍼레이드를 한단다. 죽은 자의 날 멕시코에 있다면, 내가 있는 도시의 센트로에서도 퍼레이드가 열리는지 확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마르셀라가 보내준 dia de muerto의 퍼레이드 영상

 영화 코코는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답게 화려한 색감과, 멋진 ost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ost 중에서 특히 La Llorona가 마음에 들어 자주 들었었다. 이곳 사람들도 remember me와 La Llorona를 특히 좋아하는지, 아이들의 학여회에 가면 꼭 한 번씩은 듣게 된다.

 내 친구 브렌다와 마르셀라 아주머니 역시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멕시코의 색깔을 잘 담아내고 있어서 마음에 든다고 했었다. 그러나 마르셀라 아주머니의 경우, 영화에서의 악당이 실제 이 곳 사람들이 사랑했던 국민 가수의 얼굴 그대로인 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했었다.


 이 영화는 죽은 자의 날을 소재로 가족과 꿈 사이의 갈등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가족과 꿈이라는 고전적인 갈등에 대해서 어찌 보면 진부한 답을 내린 걸 지도 모른다. 어쨌든 당시에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나에게는 명쾌하지만은 않은 대답이었었다. 하지만 이곳 멕시코에 와서 생활면서 이곳 사람들에게 가족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는지 대해 알고 나니, 납득할만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 당시 늘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보다 가족들에게 받는 것은 늘 더 크고 깊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학교를 가는 날을 빼고는 늘 돈을 벌었다. 독립을 하고 싶어서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내가 아무리 열심히 벌어도, 그 돈으로는 서울에 고시원 한 칸 구하기에도 벅차다는 것을 알고는 우울해졌다.

 그냥 나답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나다운 게 뭔데! 그런 진부한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우리 집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늘 어딘가로 떠나는 것을 꿈꿨고,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이곳 멕시코로 도망쳐왔다. 그렇지만 몸은 도망쳤지만, 마음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가족들이 힘들 때 나 혼자 도망 왔다는 죄책감에 나는 가끔 싹 울다 잠에 들었다. 한 번은 참지 못하고 엄마 품에 안겨 소리 내어 울은 적이 있었다. 그때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있다.

-엄마 내가 있을 곳이 어디에도 없어요.

 나는 도망치고, 도망치고 늘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참 아이러니하지. 늘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하던 내가 바라는 것이 그거였다. 내가 나로 온전히 있을 곳이 필요해. 나는 내가 기쁠 때 기뻐하고 싶고, 슬플 때 슬퍼하고 싶었다. 내 일상이 온전히 내 감정으로 좌지우지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혼자가 되어야 한다 믿어왔다.


 이곳의 일상은 지루할 정도로 단조롭다. 밤 11시에 잠을 자고 아침 6시면 일어나야 한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스페인어 공부와 집안일이 전부였다. 가끔 안 좋은 꿈을 꾸거나 이유 없는 우울감이 찾아와 눈물이 나올 때를 빼면 일상을 무너뜨리는 감정적 동요가 찾아올 일도 없다.


 우리는 떨어지면서 오히려 사이가 좋아졌다. 무너졌던 가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거짓말처럼 일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가족들의 안부를 받을 때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곳에 오기 전에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던 사고들은 전부 거짓말 같았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을 보면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사실은 전부 나한테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돌아가도 저렇게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이상한 마음이 생긴다.


 이모는 나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 이곳에서 취직시키고 싶어 하신다. 엄마는 당연히 그것을 반대했고, 사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이모에게 받은 지루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다시 잘 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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