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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인 이세린 Oct 11. 2021

조언을 거꾸로 하면 악담이 될까

덕담, 비난 그 어디쯤

      

   -  근데 넌 좋은 글은 쓰지 못할 거야.


    올해 들은 최고의 악담이었다. 마치 내가 널 위해서 마지막 덕담을 해준다는 듯이, 한마디만 해도 될까?라고 했다. 난 분명한 눈빛과 어조로, 아니. 안 듣고 싶어. 라고 했는데 끝까지 자기 할 말 끝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럴꺼면 왜 물어본거지? 가은이에겐 타격감 따위 1도 없었다고 허세를 부렸다. 없긴. 저 말이 일주일째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퍼뜩 가슴을 후벼 판다. 그때마다 난 어딘가 화난 사람처럼 책을 읽어제끼고 필사를 하고, 일기를 쓰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솔직히 말하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서 단 한 줄도 쓰고 있지 않은 나에게 화가 났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내 재능없음이 들킬까 두려워 시작조차 안 하고 있던 게으름이, 자격지심이, 요컨대 정곡을 찔려서 발끈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쓴 글이 재미없다는 땡초의 악플은 참을 수 있어도, 자격지심에 진심으로 잘 안되길 바라는 듯한 구남친 악담은 좀 너무, 거시기한거 아닌가?


   그가 말하길, 어쨌든 너는 ‘남의 말을 듣지 않아서’ 좋은 글을 못쓸 거란다. 아, 사랑이 뭐길래. 이젠 재미도 흥미도 없는 그런 얘기를 눈빛 반짝여가며 들어줬던 나날들이 후회스러웠다. 그의 말을 들어주며 최선을 다했던 나의 리액션이 다 공격으로 다가왔다는 말에 한참이나 혼란스러웠다. 어느 날 나에게, 너는 참 남의 얘길 잘 들어주고 공감능력도 뛰어난 거 같아, 라며 떠들어대던 오랜 벗들이 그리도 그리울 수가 없었다.



  -  언니, 타격감 1도 없다면서 나름 상처 받았었네.

  -  응. 나도 아닌 줄 알았는데, 그 말이 계속 생각서 곱씹게 돼. 나, 진짜 그래?

  - 무슨 소리야! 내가 아는 언니는 전혀 안그래. 그런 말 담아둘 필요도, 상처 받을 필요도 없어!





   결국 나는 그날도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도마뱀 꼬리 자르듯 잘라먹었다. 아마도 그래서 그는 화가 났나 보다. 그가 하고 싶었던  비난이었을까, 조언이었을까. ‘너는 항상  말을 끝까지  들어. 이렇게 남의 말을   듣는  고치지 않으면 좋은 글은   거야.’ 순서가 바뀌어서 그렇지, 이렇게 들으면  조언 같다. 애써 상처받지 않은 , 긍정적인  해본다. 끝나지 않을  같은 공격과 방어를 되풀이하며 생각한다. 하아. 그냥 우리는 맞지 않았던 건데. 나는 너의 말만 듣지 않았던 거고.

  

    나의 창창한 앞 날을 향한 그의 ‘망해라’ 염불은 지나가던 고양이가 제발 좀 물어갔으면. 과거 연인의 헤어진 후에 따위 듣고 싶지도,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그나 나나, 듣고 싶지 않은 얘기를 억지로 들려주는 것도 하나의 폭력이라는 것을, 가끔은 마음에 있는 모든 말을 다 할 필요는 없다는 걸, 언제쯤 알게 될까. 세상에 좋은 이별은 없고, 아름다운 재회는 없다고 했다. 그래, 헤어진 구남친 따위 다시 보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만난 사람이 이렇게나 찌질했던가. 참나, 내가 그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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