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과 부서이동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011년 첫 직장을 시작으로 벌써 9년 차 직장이 되어가고 있다. 현재까지 총 3개의 회사를 거쳤고 그 안에서도 수많은 부서이동을 했다.
입사 후 파트너사 교육을 시작으로 운영전략팀, 신사업 TF, 운영리더 스텝으로 부서 이동하며 담당하는 업무가 바뀌었고 IT업계 사람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본다는 스타트업으로 이직해 서비스 론칭을 준비했었다. 서비스 론칭 1년 후쯤 지금의 회사로 이직했는데 2년 동안 여러 타이밍이 맞물려 또 이 안에서도 세 번의 부서이동을 했다.
회사를 이동할 때마다, 또 부서를 이동할 때마다 일정한 업종으로의 이동이 아니었기에 '저는 OO기획자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음..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했어요. 신사업 론칭을 위해 전략 수립부터 운영 기획도 하고 마케팅도 직접 해보고 데이터 보고 리포트도 하고요. 운영 리소스 축소 방안을 마련하는 프로젝트도 했었습니다.
스타트업에서는 사업전략도 짜고 서비스 상위 기획을 하거나, 어드민 기획도 하고.... 음, 오프라인 행사 운영기획도 하고 CRM도 담당했어요. FGI를 기획하거나 결과를 추출하고 인사이트 도출해서 사업 전략에 반영하는 업무 등이요."
이직할 때 면접관이 가장 흥미로워하기도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는 부분이었다.
뭔가 많이 한 건 알겠는데, 그래서.. 뭘 했던 애지?
첫 회사에서 매번 프로젝트를 달리 경험하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고 즐거운 일이었다. 루틴 한 업무가 아니라 매번 프로젝트 목표와 내용이 바뀌었고,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을 밖에서는 통상적으로 뭐라 부르는지, 내 커리어가 무엇인지 고민이 된 적은 없었다. 아직 3,4년 차 햇병아리 직장인이었고 다양한 경험이 나에게 득이 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5년 차가 되던 해 스타트업으로 이직할 때도 정확한 커리어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이동했다. 위에 나열한 '뭐라 규정할 수 없지만 이것저것 했습니다'를 말했고 뚜렷한 업무 구분보다 이것저것 할 사람이 필요했던 스타트업의 니즈에 잘 부합했다. 그렇게 이직해서 서비스 론칭, 디벨롭을 목표로 다양한 부서 이름을 떠돌며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했다.
고민은 현재 회사 입사를 준비하면서 시작되었다.
7년 차쯤 되는 직장인이지만 내가 무슨 커리어의 사람이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브랜드 마케터, PR 담당자, 프런트 기획자, 컬처 MD 등 한 단어로 자신을 설명하는데 나는 어디에서나 '이것저것'이었고 7년 차는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소속된 팀의 이름은 사업전략이었는데.. 하지만 내가 담당한 건 전략보단 기획업무인데.. 그렇다면 사업기획? 아니야 운영기획에 조금 더 적합한가? 아냐 그러기엔 업무 범위가 넓은데.. 그냥 OO장 Staff으로 표현하는 게 더 맞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단어를 찾지 못했다. 고민을 한다고 나올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카테고리로 업무를 규정해서 말하기엔 넓고 얕은 경험들이었고 어느 꼭지를 하나 따서 전문가인 척 말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면접에서 지금까지의 주요 프로젝트를 간략히 설명하고 뒷 말을 덧붙였다
"… 등의 프로젝트를 맡아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력을 하나로 규정해서 말하긴 어렵지만 다양한 '기획성' 업무를 했었습니다.
지원하는 분야와 정확히 핏한 경력은 없지만 주어진 이슈를 파악하고, 해결방법을 고안하여, 요소들을 하나씩 해결한다 라는 역할의 뿌리는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의 기획업무를 했던 부분을 접목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원을 했고.."
면접관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는지 합격. 이직에 성공했다.
입사 뒤에도 7개월마다 자의 혹은 조직개편에 의해 3번이나 부서이동을 했고 3번 모두 이직 수준의 전혀 다른 분야로의 이동이었다. 그러고 나니 면접 때 그럴싸하고자 말했던 ‘업무의 뿌리는 동일’하다는 걸 분명하게 경험하고 있다.
부서를 이동할 때마다 모두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기본 용어조차 모르는 내가 안 맞는 옷을 입고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있는 건 아닐지, 그런 모습을 보여 모두가 날 무능력하다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지 자존감 떨어지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불과 한 달 전에는 몰랐던 전문 용어를 자연스러운 척 사용할 수 있는 시점이 온다. 내가 1인분은 아니어도 0.5인분의 역할은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주변이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7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왼쪽 구역으로 들어오면 문에서 세 번째, 내 책상 자리도 익숙해지고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의자를 돌렸을 때 보이는 오른쪽 자리 동료의 얼굴도 익숙해진다. 회의에서 매번 격양된 목소리로 얘기하는 옆 팀 팀장님의 말투도 익숙해지고, 긴장되던 개발자와의 업무 톡도 제법 익숙해진다. 우려하는 것보다 빠르게 그 시점이 온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다.
어떤 회사도 어떤 부서도 초반의 적응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스타트업에서 유사한 업종의 스타트업으로 이동하여 동일한 업무를 했더라도 아, 잘못 선택했나 난 여기에 맞지 않나 하는 주눅의 시간이 있었겠지.
그렇게 적응을 위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직장인 세상의 마법과 같이 전에 경험했던 '이것저것'을 활용하는 업무를 분명히 만나게 된다. 아 맞다. OO님 전에 커머스에 있었다고 했죠? 커머스 Flow와 비슷하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OO님 프로젝트 같이하면 좋겠네요!
지금도 이직과 부서이동이 두렵다. 하지만 두 달만 지나면 인간은 반드시 적응하게 될 거라고 알게 되었고 저는 OO기획자입니다 라는 단어를 정해놓지 않아도 넓고 얕은 경험이 어디엔가 반드시 쓸모 있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음 조직개편이 당장 다음 주에 날 수 도 있고 더 좋은 회사로의 이직 욕심이 생길 수도 있다. 그 때 사람이나 연봉의 고민이 아닌 내 커리어, 커리어 패스라는 고민에 이동을 망설이지는 않고자 한다.
이것저것, 요것조것, 해 봐서 나쁠 게 무엇일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