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속이 무능력을 대변하는 시대가 되었다
근속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IT 업계에서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게 되었다. 첫 회사를 9년, 10년째 근속하고 있다고 하면 겉으로는 '대단하네요'라는 표현을 뱉고는 불러주는 곳이 없었나? 이직할 능력이 안됐나? 도전 정신이 없나?라는 평가를 어렴풋이 하는, 근속이 무능력을 대변하는 시대가 되었다.
2020년, 10년 차라는 숫자에 도달하고 말았다. 총 3번의 이직과 수많은 부서 이동이 있었고 여전히 더 좋은 회사로의 이직을 꿈꾸고 있다. 스스로를 평가해보자면 원하는 회사, 팀으로의 이직은 성공했지만 아쉽게도 연봉협상까지 모든 과정이 완벽히 만족스러운 이직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정리해본다.
주변에 스스로 성공적인 이직을 했다라고 말하는 선배, 동료, 후배들의 이직의 기술!
대부분의 직장인은 술 한잔 기울이며 아, 이직할까를 1년 내내 말하다 정말 더는 못 참겠다 머리 끝까지 차오르면 본격적으로 이직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 시점의 이직은 당장 벗어나야만 한다는 간절함으로 시야를 좁게 만든다.
지금 회사만 아니면 어디든 괜찮을 것 같다는 탈출욕에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누가 봐도 더 아쉬운 회사로 이동을 하거나 이직할 회사가 제시하는 연봉이 맘에 들지 않아도 혹시나 합격 의사를 번복할까 싶어 자신 있게 카운트 오퍼 하기 어렵다.
만족스러운 연봉으로 이직한 동료들은 이렇게 말한다. 원하는 연봉에 안 맞춰 주면 지금 회사 계속 다니면 되니까, 지금 회사도 괜찮으니까 엄청 올려주는 게 아니면 굳이~
성공적인 이직을 위해서는 지금의 회사가 최악 일 때 도피처를 찾기보다 만족스러울 때 더 나은 옵션을 찾아 장/단점을 비교해 내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티드를 들어가는 게 취미다. 뭐 그런 취미가 있냐고 듣는 사람마다 웃지만 이직 의사가 전혀 없을 때도 원티드를 인스타그램처럼 보곤 한다. 관련 업계, 관련 직종의 JD(Job Description)를 읽으면 시장에서 원하는 경력과 역량이 쉽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원하는 희망 요건과 나를 비교하며 충족하는 조건, 충족하지 못하는 조건을 체크리스트처럼 하나씩 지워 나가 보면 내 경력의 강점과 약점을 알 수 있다.
나는 나중에 이직한다면 이쪽으로 가고 싶은데.. 대부분 SQL 데이터 분석 능력을 우대하네.. 최근 업계는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하는지, 내가 이직을 하기 전까지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하는지 쉽게 체크할 수 있다.
내가 현재 이직 의사가 있는지와 무관하게 주기적으로 이력서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업데이트의 중요한 목적은 2번에서 파악한 시장에서 원하는 경력, 역량과 내가 같은 길로 가고 있는지를 체크하기 위함이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해보면 그토록 바빴지만 막상 적을 만한 굵직한 프로젝트는 없었다거나,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많은 역할을 해내 현재의 회사에서는 공을 인정받았지만 메인으로 리딩 한 프로젝트는 없어 시장에서 원하는 경력에는 못 미치거나 하는 빈 공간을 볼 수 있게 된다.
빈 공간을 찾았다면 이직 전까지 그 부분을 채울 수 있도록 관련 업무를 자진해서 해야 한다. 지금의 회사를 인생의 마지막 회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회사에 Fit 하게 일하기보다 시장에서 원하는 경력에 Fit 해질 수 있는 일을 챙겨 내는 건 나의 몫이다.
면접은 정말이지 살 떨리고 피 말리는 시간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그러하듯 상대방에게 정말 잘 보이지 않으면 큰일 난다! 한 번의 빈 틈이라도 보였다가는...! 하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마주 했다가는 오히려 부자연스러움에 거부감을 사거나 긴장감으로 평소보다 더 부족한 모습을 보이곤 아쉬운 마음으로 면접장을 나오게 된다.
그럴 땐 마인드 컨트롤할 수밖에 없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거다. 지금 나는 누군가에게 평가받으러 온 게 아니라 그저 파트너사와 제휴 미팅을 하러 왔다! 회의를 망치지 않아야 한다는 적절한 긴장감이 느껴지면서도 그 사람이 내 뼈속까지 평가할 것 만 같은 두려움은 줄일 수 있다. 내 경우 실제 면접 전 이 최면이 크게 도움됐다. 마치 앞으로 길게 관계를 맺을 사람과의 첫 대면처럼 방긋 웃으면서 면접을 치렀다. 최면을 걸자 빙글빙글
사자 두 마리가 텐트 쪽으로 뛰어 오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자 두 딸의 아버지인 당신의 선택은? 과 같이 인터넷의 떠도는 구글 면접 질문을 받는 경우는 없다. 구글 면접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실제 구글 면접 질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기본적인 질문. 본인의 장단점, 지금까지 했던 업무 중 가장 성과가 좋았던 업무, 10년 후 미래와 같은 질문을 한다. 다만 신입이 아닌 이직의 경우엔 반드시 실제 업무를 바탕으로 답변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면접관은 기본적인 질문으로 운을 띄우고 나면 답변을 더 상세히, 상세히 파고드는 질문을 해 올 것이다. 그 프로젝트에 얼마나 이해도가 있는지 정말 Deep 하게 기여한 프로젝트가 맞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면접 전 준비해야 할 것은 다양한 질문에 대한 기발한 대답이 아니라 내가 했던 업무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시 기억을 되살려 아.. 그게 작년에 했던 업무라 지금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요 라는 대답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면접을 보는 한 시간 동안 수많은 질문을 받게 된다. 그 질문들에 대해 정답 같은 단어를 말했다고 좋은 면접을 본 것이 아니다.
- 본인은 업무 할 때 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 저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왜 그렇죠? 같이 일 하는 사람이 좋지 않으면 일을 못한다는 건가요?
면접관이 궁금한 건 내 질문에 순발력 있게 위기 대응을 하는가가 아니다. 이 사람이 실제 일을 어떻게 하는가 궁금해서 알아낼 때까지 계속 파고드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에 대해 훌~륭한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제 경험을 붙여서 답해야 한다.
- 본인은 업무 할 때 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 저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작년에 진행했던 TF 때...
얼마 전 와인 아울렛에서 와인을 고르다 익숙한 라벨을 봤다. 이 와인 저번에 마셔 봤는데 맛있었어! 이거 살까?라고 친구에게 말하자 지켜보던 점장님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전 세계 와인 라벨이 6,000개가 넘는대요. 우리가 늘 새로운 와인만 마셔도 평생 다 맛을 못 보는 거예요
이 많고 많은 IT회사 중 고작 3개의 회사만 경험했고 지금의 회사에서 정년을 꿈 꾸긴 너무 이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인스타그램 보듯 원티드를 눌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