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쉐 영국연수기_18] 범블비
*2019년 8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우리는 ‘브바바’(브레드 바이 바이크 베이커리 Bread by Bike Bakery) 의 앤디도 잠깐 언급했던 이 동네의 터줏대감, 범블비 유기농 식품 가게 Bumblebee Natural Foods (이하 ‘범블비’)에도 들렀다. 가게는 ‘브바바’ 바로 옆에도 있고 맞은편에도 나란히 2곳이 더 있었다. 옆의 가게는 즉석식품 등 완전 조리된 음식과 곡물과 그래놀라와 파스타 등 식재료 위주였고 맞은편의 왼쪽 가게는 채소 과일 등 신선식품과 세제 등 친환경생활용품을, 오른쪽은 건강보조식품과 화장품과 천연 오일 등 퍼스널케어제품을 팔고 있었다. 먹거리 생활에 관련한 것들은 다 살 수 있게 가게들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는데, 슥 둘러만 봐도 오래된 가게 같았다. 한국에 가져갈 물건도 살겸 3곳을 다 가보니 채소가게 카운터에 현자같은 눈빛의 노신사가 있었다. 과일을 사며 혹시나 여쭤봤더니 역시 ‘범블비’의 대표인 이안 Ian Ogilvie 이었다. 아직 손님이 별로 없어 잠시 이야기를 청했더니 흔쾌히 응해주었다. 아침부터 뜻밖의 반가운 만남이 이어졌다!
이안은 1980년에 첫 번째 가게를 시작했다. 당시 유기농 자연음식 등으로 먹거리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유럽 전체에 있어서 가게와 농장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채식 운동이 많이 일어나 양질의 식료품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한때는 이 길 안에 샵이 4개까지 있었다가 지금은 3개가 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품목을 다루는 가게로서 자체적인 기준이 있었는데 기준은 이후 조정되었다고 한다. 처음 샵을 시작한 80년대에는 유기농산물에 대한 인증 기준 자체가 없었는데 90년대에 유기농 기준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증과 기준이 생기면 늘 장단점이 있다며 이안은 너희도 알지? 하는 눈빛으로 웃었다. 알죠, 알죠, 암요… 우리는 정직하게 자연적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인증을 못받거나 안받는 경우를 봐왔다. 그리고 인증만으로 농부의 이야기를 전하거나 생산 방법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때로는 부당한 일일 수 있는지도 안다. 이안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으나 우리는 금방 공감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도 로컬푸드를 중시하는지 궁금했는데, ‘범블비’에서 파는 채소들이 농부에게서 직접 오는 건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도매업자를 거치지 않고 스페인 농가에서 오렌지를 바로 주기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한 농부에게서는 바로 구매하고 있다고 한다. 초록색 채소류는 인근의 캔트지역에서 오는데, 가능하면 로컬푸드를 많이 들이려 한다고.
우리는 오랜동안 건강한 먹거리를 판매해온 가게의 입장에서 런던의 굿푸드 활동과 파머스마켓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이안은 현재 정치적인 것에 참여하고 있는 건 없지만 이런 가게를 40년 넘게 해오는 걸로 런던의 굿푸드 운동이나 캠페인에 참여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더 나은 먹거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런던의 경우 농부시장이 사라졌다가 20년 전부터 다시 생기고 있어서 새롭다며, 파머스마켓을 가는 것은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했다.
이안은 좋은 먹거리를 먹게 해주는 점에서 이런 가게가 파머스마켓과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서로 경쟁하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농부시장에서는 농장에서 바로 소비자에게 판매되기 때문에 생산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좋지만 가격이 별로 싸지 않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농부시장은 비싸고 패셔너블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많은 런던 시민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도.... 아, 이안… 우리, 경쟁자인 건가요? LFM (London Farmers Markets) 셰릴 언니 데리고 올걸…. 농담인거 아시죠?
우리가 내심 기대했던 대답은 아니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게 현실이란걸 알고 있다. 한국보다 농부시장의 역사가 2배나 긴 런던에서 오랫동안 유기농 가게를 해오신 분의 말씀을 들으며 이런 인식은 아직 비슷하구나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격에 대한 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농부시장이 유행으로 지나가지 않게,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꾸준히 해나가는 수밖에!
‘브바바’와 ‘범블비’를 보며 이런 작은 가게들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는 이 동네가 좋아졌다. 동네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작은 가게들은 그 동네의 얼굴 같다. 그런 가게들, 집들, 골목들, 나무들이 그 동네의 얼굴, 다양한 표정 같아서 나는 여행을 가도 특별할 거 없이 산책하며 그런 동네의 표정들을 발견하는 걸 좋아한다. 시간이 쌓이지 않는 동네는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주름살 하나 없이 맨질맨질한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니 어떤 말도 건낼 수가 없고 정도 들 수가 없다.
순식간에 가게가 바뀌고 건물이 새로 들어서는 서울의 한 동네에 15년을 사는 동안,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우리 동네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아니라 계속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저렴한 월세를 찾아 한 동네에서도 이사를 계속 했는데 어디에 살아도 공사 소리가 끊이질 않았었다. 뿌리를 이삿짐 박스에 싸들고 다니는 나무가 된 느낌이랄까. 나는 집값에 밀리기도 하고 그런 변화무쌍함에 지쳐 5년 전에 산자락 따라 집들이 촘촘한 외곽으로 이사를 갔다. 오래된 문구점과 미용실, 작은 슈퍼들 그리고 곳곳에 모여앉은 할머니들. 이 동네에는 얼굴이 있었고 주름진 그 얼굴이 반가웠다. 서울인가 싶게 산새가 지저귀고 공기 맑은 이 동네를 사랑하게 됐지만, 여전히 나는 마음 한구석에서 아침 일찍 걸어가 우리밀로 갓 구운 빵을 살 수 있는 작은 빵집과 먹거리를 믿고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는 동네를 꿈꾼다. 그리고 가끔 그 동네에서 갓 수확한 채소와 과일을 사고 내가 아는 농부님을 만날 수 있는 작은 농부시장이 열리는 것을 꿈꾼다.
농부시장이 하는 일과 가게가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이안의 말대로 경쟁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같이 동네의 얼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마르쉐가 동네 곳곳에서 열리며 좀 더 일상에 다가가고 싶어서 작년에 시작한 ‘채소시장’ 모델이, 그렇게 그 동네의 한 표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이야기를 청했으나 기꺼이 나눠준 이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범블비를 나서는 일행들의 손이 무거웠다. 각자 한국으로 가져갈 먹거리들이 가방에 가득했고, 내 가방 속에는 욕심껏 산 천연 아로마 오일들도 묵직했다. 가게 전체와 카운터의 직원에게서 풍기는 20세기 히피같은 아우라에 끌려서 산 그 오일들은 마사지 목적이었으나 지금도 뚜껑이 꼭 닫힌 그대로 집에 있다는 사실이 팍 떠오른다! 방향제 만들어야지...
우리는 그날 오후는 각자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나를 포함한 일부는 농가 투어를 위한 준비를 하러 송수의 집으로 이동했다. 우리를 영국으로 부른, 김송수 요리사의 집으로~
우리는 다음날 농장 가는 길에 먹을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송수의 집에 도착해 햇살이 잘드는 예쁜 집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먼저 집 뒷마당에서 느긋하게 차를 한잔 마시며 한숨 돌렸다. 며칠 만에 사람이 사는 집에 머무니 몸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송수가 계획했던 김밥과 깍두기에 더해 취나물 주먹밥까지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한식을 만들려니 신났다. 밥을 짓고 무를 썰고 당근을 볶고 지단을 부치고 시금치를 무쳤다. 말린 취나물을 불려서 부드러워질때까지 삶았다. 소풍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신나게 요리를 하면서, 새삼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집밥에 채소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난 정말 한식이 좋다!!! 따뜻하고 건강한 한국의 집밥 맛을 전하고팠는데, 같이가는 요리사와 레스토랑 관계자들이 먹는다고 생각하니 평소 늘 하던 요리도 신중해져서 송수에게 묻고 또 물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연수를 준비하며 어떤 선물을 가져갈지도 신중하게 골랐었다. 무겁거나 부피가 크지 않으면서도 한국적인 것, 마르쉐를 담을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받는 사람이 너무 어려워하지 않고 받기를 바랐다. 고추장, 토종쌀, 다양한 부각, 핸드메이드 식물패턴 천제품 등을 준비했다. 포장은 따로 하지 않고, 마르쉐에서 쓰레기없는 장보기를 위해 광목으로 제작한 채소주머니들에 담아서 드릴 계획이었다. 받는 사람들은 다들 재미있어 하고 좋아했으나, 뭔가 아쉬웠다. 그래서 도시락에 한국 집밥의 맛이 잘 담겼으면 했다. 그리고 요리사와 같이 만들었으니, 당연히 꿀맛이겠지!!!
이 연수기의 첫편에 이야기 했듯, 우리는 김송수 요리사가 일하고 있는 소호의 레스토랑 킬른 Kiln을 비롯, 스모킹고트Smoking Goat, 브렛 Brat이 포함된 레스토랑 그룹 Super 8이 농가들과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직접 보려고 영국에 올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연수의 마지막은 그 레스토랑 멤버들과 함께하는 농장투어로 짜여져 있었고, 세부적인 일정도 고스란히 그들에게 맡겨놓은 상태였다. 함께하는 농장투어도 기대되지만, 영국의 농촌과 농장을 방문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미 기대폭발! 드디어 간다! 도시락을 싸들고!!!
글: 마르쉐친구들 쏭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합니다.
먹거리를 중심에 두고 삶을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