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둔 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새해가 되니 게으름도 눈치가 있는지 슬쩍 뒤로 빠지고 그 틈을 타 드디어 부지런 센서가 켜졌다. 부지런 센서는 뜬금없이 발동해서 몇 번이고 미루던 일을 한 번에 처리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데, 센서가 켜진 순간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 한 번 놓치면 배차 간격 24분짜리 경기 버스를 놓친 마음으로 다시 더러운 집을 버텨야 한다.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둔다거나, 매일 조금씩 청소를 하는 버릇이 든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나 같은 미루기 대장에게 청소란 마음을 먹어야만 해치울 수 있는 일이다. 마음을 먹는 데까지도 '청소해야 하는데..'의 밤을 2주 정도 지냈으니 어지른 시간까지 셈하면 조금 과장 보태 한 달치 마음을 먹어야 하는 큰 일이다.
설거지 먼저 하기로 했다. 집에서 밥 먹을 일이 별로 없어 후딱 해치울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으로. 그 계산은 틀리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틀렸다. 설거지를 하다 보니 갑자기 찬장 정리가 하고 싶어 졌고, 그렇게 찬장을 열었다가 산더미 같은 반찬통을 마주해버렸다. 찬장을 치우려면 족히 스무 개는 될 것 같은 크고 작은 반찬통을 효율적으로 포개고 쌓아야 한다.
집에서 밥도 잘 안 먹고, 1인 가구 주제에 왜 그렇게 놀고 있는 반찬통이 많으냐 하면 엄마 때문이다. 광주 갈 때마다 양손 가득 반찬이며 과일을 실어 보내는 엄마 때문이다. 이따금 택배 상자 한 가득 반찬을 채워 보내는 엄마 때문이다. 무거운 유리그릇부터 가벼운 플라스틱 반찬통까지. 꼭 서너 번 먹을 분량으로 나눠 보내서 크기도 다 고만고만 작은 크기다. 그래서 막상 음식을 보관하려면 너무 작아서 쓰임새도 마땅찮은 데다 크기가 비슷해서 효율적으로 포개지지도 않는다. 어느 세월에 이걸 다시 정리하냐.. 귀찮음을 가장한 게으름이 틈을 놓치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서 하마터면 부지런 센서가 꺼질뻔했다. 청소 시작한 김에 해야지. 지금 안 하면 이사 갈 때까지 영원히 정리하지 않을 거다.
정말로 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높은 곳에도 넣어 놨다. 꺼내는 일부터 녹록지 않다. 짧은 내 팔과 다리로는 꺼낼 수가 없어 밟고 서기엔 불안한 스툴까지 가져다가 꺼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스툴 위에서 발바닥에 온 집중력을 다해서 조심조심. 돌돌 말린 양말처럼 처박힌 반찬통을 하나씩 집으니 이 통에 담겨 있던 음식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내 손크기만 한 직사각형 유리 반찬통에는 파김치가, 그보다 살짝 큰 플라스틱 통에는 구운 고구마가, 웬일로 큼직하고 깊은 정사각형 통에는 한가득 키위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챙겨 먹고살라고 잔소리해도 허구한 날 배민만 시키고, 그런 주제에 취향이 아닌 음식은 썩어 버릴 때까지 손도 대지 않는 딸의 게으름과 취향을 모두 고려한 음식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뭉클함은 책상 정리하다가 무심코 편지함을 열어버렸을 때나 느끼는 건데. 아직 본격적인 청소는 시작도 못했는데 뜻밖에 감정에 젖어버렸다. 찬장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을 정도로 반찬통이 꽉 채워진 건 그만큼 엄마가 챙겨준 음식이 많았다는 건데. 수십 개 반찬통을 보고 처음 한 생각이 귀찮음이었다니. 이러니까 내가 자식을 낳지 않으려는 거다. 이렇게 세심하게 보살피고 챙겨도 제 몸 귀찮다는 생각밖에 못하는 존재라. 반찬 뭐 보내줄까 물으면 밥도 안 먹는데 뭐하러 하고 무심한 목소리만 낼 줄 알지. 챙겨주는 보람도 없이. 나는 언제나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엄마를 사랑하는 데 실패한다.
엄마는 이미 다 알고 몇 번이나 반찬통 가득 음식을 보낸 거겠지. 내가 아직도 이렇게 속이 없고 엄마가 필요한 어린 딸이라. 서른 먹고도 반찬통 수십 개 치의 애정을 헤아릴 줄 모르는 철부지라. 영원히 엄마가 필요한 딸인 걸 알아서.
내일은 엄마에게 전화해야지. 어리광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엄마표 육전이 먹고 싶다고 칭얼거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