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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말구 Mar 12. 2022

상처는 구원의 시작이다.

존 스타인 벡, 『에덴의 동쪽』


  가톨릭교회는 ‘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의 결핍”(가톨릭교회교리서』, 397)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원죄’(original sin) 개념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을 닮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들이 지켜야  것은  하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 따먹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으로 그들은  열매를 먹고, 하느님의 낙원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요. 최초의 인간의 죄와 벌입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카인과 아벨을 낳았는데, 카인은 아벨을 살해합니다. 카인은 하느님이 자신보다 아벨을 귀하게 여긴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질투와 증오, 분노와 잔혹함이 이 이야기에 서려있습니다.

  인간에게 새겨진 죄와 벌, 갈등이 낳는 비극. 여기서 인간의 구원에 대한 갈망이 시작됩니다. 인간의 죄가 뱀의 달콤한 유혹에서 시작되었듯이 인간은 끊임없이 죄의 유혹에 시달립니다. 분노, 교만, 시기, 질투, 적대감. 여기에 휩쓸려 뒤섞여 살아가는 사람에겐 구원이라는 희망이 자리할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득, 지긋지긋한 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이나 잔잔한 마음의 평화를 바랄 때, 구원의 길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존 스타인 벡의 『에덴의 동쪽』엔 원죄의 의미와 구원의 가치, 인간에게 내재된 선과 악에 대한 치열한 고뇌가 담겨있습니다. 선(善)과 악(惡) 중에서 악으로 기우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면서도 선을 향하려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제는 창세기 4,7에 나오는 구절에서 비롯됩니다. 성경에서 카인은 하느님께서 자기가 바친 제물을 반기지 않았다고 화를 냅니다. 분노에 휩싸인 카인에게 하느님은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성경』 인용)하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지을지, 짓지 않을지는 인간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인간의 내면엔 선과 악이 뒤섞여 있는데, 선을 선택하는 것이 구원을 향한 길임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줍니다.  

  소설은 20세기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의 살리나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악의 화신(化身)으로 ‘캐시’가 등장합니다. 작품의 중심인물이자 그의 남편 ‘애덤’은 캐시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습니다. 애덤은 자신을 떠난 캐시를 겨우 찾아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것도 믿지 않고, 추악한 면을 지닌 사람들, 사진에 있는 이 사람에게도 착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믿지 않아. 당신은 한 면만을 보고서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거요. 아니,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확신하지.” (2권 222p)


  인간의 선함을 긍정하는 사람과 선함을 철저히 부정하는 사람 사이의 대립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인간의 선한 부분을 부정하는 캐시는 자신의 내면도 그렇게 바라봅니다. 탐욕, 분노, 죄에 대한 무감각이 한 인간을 점점 파멸로 이끌어 갑니다. 구원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세상과 인간의 희망을 긍정하지 않는 이는 다른 사람의 희망과 선함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악에 차있는 이가 다른 사람의 선행에 대해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 치부하는 모습도 떠오릅니다. 악이 기준인 가치관에선 다른 사람의 선함도 비뚤어져 보입니다.

  애덤은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는데 칼과 아론입니다. 이 둘에겐 창세기의 카인과 아벨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칼은 아버지의 사랑이 아론에게 더 치우쳐 있다고 느끼며 슬픔과 분노, 질투, 그리고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애씁니다. 칼은 선과 악 사이를 오가며 방황하고 존재의 비참함을 느낍니다. 칼에게서 구원을 향한 인간의 비틀거리는 여정을 엿보게 됩니다.


  “칼의 몸 전체에서 갖가지 반응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모욕에 대한 분노, 반항,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마음의 상처... 그 상처는 바로 구원의 시작이기도 했다.”(2권 579p)


  마음의 상처가 두려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살아가는 세월이 늘어날수록 상처받지 않을 각각의 방법이 쌓여갑니다. 분노와 반항, 시기와 질투도 사실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무관심이나 냉소적 태도를 갖기도 합니다. 상처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상처는 바로 구원의 시작”이라고.

  인간은 끊임없는 선택에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선택의 기준은 다양합니다. 내가 편한 것을 택할 수도 있고,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져보기도 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뱀의 유혹에 이리저리 궁리하며 자신들의 의지로 열매를 따먹기로 결정했을 것입니다. 소설 『에덴의 동쪽』은 유혹하는 뱀에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인간의 선택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존재의 구원과 선에 대한 희망은 인간의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주제가 이 작품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인간이 비참한 존재이면서도 고귀한 존재라는 역설이 새삼 마음을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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