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은 태워버려야 한다는 미신
할아버지가 누우실 관에는 꽃다발이 깔려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향기를 맡으시라는 정성이라고 장의사가 덧붙인다. 지난봄의 장미 축제가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향기보다는 조경에 감탄하시는 쪽이셨는데. 게다가 저런 꽃 위에 누워서야 따갑기만 할 것이 뻔하다. 이런 정성은 소용없다고, 무용함과 무력함이 눈물에 섞여 나온다. 그 어떤 살핌이나 노력도 할아버지께 닿을 수는 없다. 그는 여전히 죽어있다. 우리는 그를 끌어안거나 입을 맞추기도 하고, 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전해 보기도 했다. 그래도 다들 용감해 보였다. 나는 도저히 살을 맞댈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 이건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망자는 기억 속에서나 애틋하지, 눈앞에 보이면 그저 두려울 뿐이다. 일단 보이는 모습이 그랬다. 할아버지는 노란색이거나 보라색이었다. 돌아가신 것이 고작 3일 전인데, 눈과 코 근처가 편평하게 꺼져있었다. 귀는 이유를 알 수 없게 오므라든 모양새였다. 죽음이 들이닥치자마자, 물이란 놈이 서둘러 빠져나갔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떠도는 말처럼, 세상에는 영혼이란 것이 있어서 그 영혼이 빠져나가면 사람은 조금 달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장례지도사는 고인 분이 입원치료를 하셨는데도 깨끗하고 온전하신 편이라고 했지만,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여기 누워있는 사람은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가 아니니까. 병원에 계시는 동안, 우리가 만나지 못한 사이, 할아버지가 죽음에 가까운 쪽으로 모습을 바꾸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이라 함은 할아버지의 심장이 멈춘 순간이겠지만, 우리는 관 뚜껑을 닫는 입관식을 마지막이라고 불렀다. 내가 전한 마지막 인사는 그렇게 멈춰버린 심장을 향해서였다. 거칠고 뻣뻣한 수의 아래, 심장이 있을 법한 그 언저리에 손을 대고 사랑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래 기억할게요 - 그런 뻔한 말들 말고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말솜씨가 부족하면 좀 어떨까, 그는 여전히 죽어있다. 듣지 못하실 거라는 사실이 자명한데도, 우리는 순서대로 착실하게 인사를 마쳤다. 그리고 이젠 정말 마지막이 왔다. 흰 천으로 얼굴을 가린 그를 관에 모셨다. 두 달간 병실에 계셨던 할아버지는 가벼웠고, 대가족인 우리는 손이 많다 못해 남았다. 그래도 우리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150개의 손가락으로 그를 밀고 들어서 관에 눕혔다. 깔아 둔 꽃줄기가 우두둑 꺾이는 소리가 났다. 그것 보라고, 다 소용없다고, 외침을 삼키며 입술을 씹었다. 닫힌 관에는 여섯 개의 매듭이 지어졌다. 그래서 관을 옮기는 데에는 눈시울이 붉어진 여섯 명의 남자가 굳이 필요했다. 진이 빠지도록 울고 나서 힘을 쓰는 모양새가 그렇게 애처로울 수가 없었다.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멀뚱히 서 있는 직원들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으니까. 모든 절차 하나하나가 부자연스럽고, 비논리적이고,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관이 너무 작아 보이기도 하고, 존함이 적힌 천의 광택이 지나친 것도 같고, 장의사의 살핌이나 배려가 답답하기도 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그렇게 거짓을 보태 무언가를 억지로 믿어보려는 몸부림과 같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할아버지처럼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화장터에는 당장 죽음을 갈무리할 자리가 없을 지경이었으니까. 순서가 밀려 4일장을 마치고 찾아간 화장터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크리고 있었다. 우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다들 그저 지쳐 보였다. 화로에 불을 피우는 2시간 내내 울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우리는 배급품을 받으러 온 사람들처럼 줄을 서서 재가 된 할아버지를 기다렸다가, 유골함에 그를 모시고 열을 맞춰 걸어 나왔다. 겨울에 온 가족이 열을 맞춰 걸어갈 때면, 항상 앞장서셨던 할아버지께 달려가 팔짱을 껴며 춥다고 투덜거리곤 했었는데. 날이 너무 춥네요 할아버지, 오늘은 혼자 머릿속으로만 뇌까리며 걸을 뿐이다.
나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다만 전해 듣건대, 마지막 순간을 많이 두려워하셨다고. 진정제와 진통제는 고통을 숨겨주었지만, 또렷한 의식 역시 앗아갔다. 생각해 내려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고, 몽롱하고 혼란스러운 마지막 날을 보내셨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는 꼭 안아주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내가 여기 있다고, 사랑한다고, 몇 번이고 말해줬다고 하셨다. 그의 생(生)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담겨있지만, 죽음에 가까웠을 때 품을 수 있는 것은 가족과 사랑, 그뿐이었다. 수많은 창작물에서 봤던 클리셰는 진짜였다. 죽음 앞에서는 가족과 사랑 말고는 존재할 수 없다. 클리셰를 싫어하지만, 나의 마지막에 필요한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 역시 마지막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나를 꼭 끌어안고서는 무서워하지 말라고,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면. 할아버지께서는 마지막에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내가 곁을 지키지는 못했어도 참 다행이었지 싶은 마음이다. 나도 할아버지처럼, 죽음의 목전에서 사랑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할아버지를 너무도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다. 다만 지난 11월 내가 만난 죽음은, 노란색과 보라색의 두려움이 섞여있다. 이제 내게 죽음은 감상적일 수도, 고상할 수도, 머릿속으로만 떠올리는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 수도 없다. 죽음은 망자의 무게만큼이나 물리적인 것이다. 죽음은 관에 누워있는 시신이다. 죽음은 공포다. 추위에 선명해지는 핏줄을 보면 죽음이 떠올라 흠칫하게 되는 낮과, 악몽으로 채워진 밤이 반복되는 요즘이다. 유난하고, 눈물 흘리고, 나약함을 견뎌야만 하는 겨울이다. 이전까지 죽음은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나는 결국 죽을 테니까, 내일 죽어도 후회되지 않는,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되뇌며 살아왔다. 그래서 진심을 다할 수 있었다. 아쉬움 없는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이를 죽음 곁으로 보낸 지금은, 죽음이 그저 두렵다. 내 뒤에 남겨질 사람들의 눈물과 상심이 마음 아프고, 스스로는 결코 갈무리하지 못할 육체와 흔적들이 미안하고, 마저 이루지 못한 목표들과 원함들이 아쉽고, 죽음의 순간과 그 후의 암흑에 대한 무지에 걱정이 앞선다. All is well that ends well.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고 하지만, 괜찮은 죽음 같은 것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지옥에서 조금이라도 덜 뜨거운 자리를 찾는 것과 같다. 죽음은 결코 미화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흙이나 재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거나 혹은 공포에 떨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면 삶의 빛이 더 눈부시고, 오늘이 아쉽고, 하루가 낭비된 것 같으면 무서웠다. 내가 낭비한 시간들은 결국 무의미한 삶의 먹이가 되는 것 같아 무서웠다. 그런 두려움으로 몇 주를 보냈다. 졸음이 쏟아지기 전까지 버텼다.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무언가에 몰두했다. 정신적 에너지나 육체적인 에너지가 남아있으면 하루를 끝내지 않았다. 잠을 자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곁에 있어줄 배우자나 자식을 두는 삶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 걸까-하는 섣부르고 이기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는 죽음에 쫓기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고.
집안 어른들은 상복을 집에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고 타이르셨다. 태워버리는 것이 관습이라고, 요즘처럼 태울 수 없으면 화장터나 장례식장에 상복을 두고 가라고.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죽음에 쫓기는 사람 마냥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오히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보란 듯 걸어놓았다. 계절의 분위기를 느껴보겠다고 신이 나서 걸어 놓고는, 해가 바뀔 때 즈음에는 치우기 귀찮을 정도로 익숙해져 버리는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이번 겨울에 조우한 죽음도, 쫓기듯 무서워하다가도 이젠 아무래도 괜찮을 정도로 익숙해졌으면 한다. 죽음에 익숙해지는 것. 그것이 유한한 존재로 태어나 삶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쫓기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상복을 걸어두려고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오롯이 감정과 이성으로 결정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 때까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옅어지고, 이전처럼 삶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짙어질 때까지. 할아버지께 받은 사랑과 추억만 남고, 그의 차가운 육신은 잊혀지는 날까지.
- 당신 역시 죽음에 쫓기지 않기를 바라는, M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