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없는 중독,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짜 재앙

by 유다름

요즘 세대들은 '호환마마'라는 표현을 들어본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이 말을 처음 접한 계기는 단어의 본래적 의미와는 한참 동떨어진 곳에 있다.


'호환'(虎患)은 호랑이[虎]로 인한 재앙[患]을 뜻한다. 마마는 '천연두'를 가리키는 별칭이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 중 하나로 여겨지던 마마, 즉 천연두는 백신 개발 이후 감염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내가 태어난 해인 1980년 WHO에 의해 공식 박멸이 선언되었다. 전래동화에서 '곶감 안 주면 사람 잡아먹는 동물'로 위세를 떨치던 호랑이 또한 1940년대 이후 한반도에선 자취를 감췄다. 이렇게 본다면, '호환마마'의 본래적 의미는 나라는 사람의 생물학적 연대기와도 결이 닿지 않는다. 그런데도, 난 어떻게 이 말을 그리 자주 들었던 걸까.


아마 내 또래라면 모두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텐데, 답은 바로 '비디오'다. 어릴 적 비디오를 볼 때면 본편이 시작되기 전 이러한 내레이션이 붙은 공익광고가 흘러나왔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 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렇다. 저속한 음란물이나 과격한 폭력물 등을 '불법' 혹은 '불량'한 방법으로 시청하면 옛 시절 호환, 마마, 전쟁을 겪었을 때와 같은 급의 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는 다소 과장된 경고 문구에서 난 '호환마마'라는 표현을 처음 접했다.


이 살벌한 경고 문구가 우리의 관음적 욕망을 억누르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불량·불법 비디오는 나쁜 것"이라는 인식 하나만큼은 또렷하게 새겨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당시의 '호환마마'라는 표현은 우리 삶에 악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에 찍힌 화인(火印) 같은 것이었다.


옛날 어린이의 호환·마마·전쟁, 내 어린 시절의 불량·불법 비디오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할 리 없을 만큼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가 지금 시대에 존재한다. 심지어 이 미디어엔 화인은커녕 티끌만 한 경고문구조차 붙어 있지 않다. 그것은 스마트폰과 SNS다.


스마트폰과 SNS가 지금의 세대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선 세계보건기구(WH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네스코(UNESCO) 등 저명한 국제기구는 물론 국내외의 수많은 공신력 있는 기관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주요 결론을 조금만 나열해 보자.


1. 스마트폰과 SNS의 과도한 사용은 우울과 불안, 외로움 등 정신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2. 청소년들이 밤 늦게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신체적 발육과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고, 이는 학업 능률 저하로 이어진다.

3. 과도한 SNS 사용은 자존감을 저하시키고, 자기 몸에 대한 불만족을 초래한다.

4. 스마트폰 중독 수준이 높은 청소년일수록 충동성과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ADHD 유사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5. 스마트폰과 SNS에 몰두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청소년들의 사회성 발달과 대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6. 알고리즘이 증폭시키는 선정적·자극적 콘텐츠는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주고, 타인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나 공격성을 키운다.

7. SNS를 통한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는 열등감과 질투심을 불러일으켜 건강한 대인관계 형성을 방해한다.

8. 짧은 동영상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SNS 환경은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순간적 만족에만 초점을 두게 한다.

9. 스마트폰 중독은 인지·정서 조절 능력을 약화시키고, 충동성을 높이며, 전반적인 인지 기능과 실행 기능(인지적 통제력)을 저하시킨다. 일명 '디지털 치매' 현상을 유발한다.


한참을 더 나열할 수도 있겠지만 이쯤에서 멈추자. 사실, 이런 저명한 연구 결과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스마트폰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언스마트'하게 만들고 있는지. 소셜미디어(SNS)가 우리의 소셜 라이프를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해집고 있는지.


삶에 해로운 줄 알면서도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현상을 우리는 '중독'이라 부른다. 담배, 술, 도박, 마약 등 중독을 야기하는 것들에 반드시 붙어 있어야 하는 경고문구가, 그러나 스마트폰과 SNS에는 붙어 있지 않다. 아니, 경고문구가 웬말인가. 스마트폰과 SNS, 그리고 이것들과 결이 유사한 디지털 서비스들을 우리는 '혁신'이란 이름으로 찬양하기 바쁘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편리함(이를 진정 '편리함'이라고 불러도 될지 나중에 따져볼 테다.)을 감안해 일단 '혁신'이란 표현을 인정한다손 치자. 그럼, 반대로 이렇게 질문해 볼 일이다. '혁신'이란 말이 내뿜는 아우라를 잠시 걷어내고 본다면, 저토록 부작용이 많은 것들에 그 흔한 경고문구 하나 붙일 수 없는 사회가 과연 정상일까.


만약 스마트폰이나 SNS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우울과 불안, 외로움을 야기하고, 감정조절을 어렵게 만들며, 사회성 발달과 대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왜곡된 가치관이나 부정적 고정관념을 조장하고, 더 나아가 공격성을 키우고, 치매와 유사한 증상을 불러 일으킨다면, 그 무언가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을 '방임'이라 부르지 않을 텐가.


"'중독'이 아니라면 큰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라는 반문이 나올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들이 혁신이란 이름 아래 우리의 중독을 유도하고, 더 나아가 조장하고 있다면? 이 역시 다음 글을 통해 짚어볼 예정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디지털 미디어는 중독 조장을 넘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식으로 그들의 서비스를 운영한다.


이러한 서비스들에 과연 '혁신'이란 이름을 붙여도 되는 걸까. 이 서비스들을 만든 사람들은 '찬양' 받기에 충분한 존재들인가. 스마트폰은, SNS는, 우리가 흠뻑 빠져 있는 디지털 세상은 기술 진보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며, 위에 열거한 문제들은 그저 'side effect'에 불과한 것일까.


나는 앞으로 이어질 글 몇 편의 글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씩 따져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