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부끄럽고, 다른 한편으론 서글픈 경험 하나. 대학생 시절, 난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란 범죄 혐의는 인정되나, 여러 사유를 감안해 재판에 넘기진 않는 것을 뜻한다.
사정은 이러했다. 주간보다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난 학교 옆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했다.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으리라. 대학교 옆 편의점의 야간 알바는 청춘들의 들끓는 음주 욕망을, 흡연 욕망을, 섹스 욕망을 돈으로 받아내느라 숨 쉴 틈 없이 바쁘다는 것을. 그날도 난 쉼없이 팔려나가는 맥주를, 소주를, 담배를, 콘돔을 포스기로 찍어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 청춘들 중에 하필 ‘청소년’이 끼어 있었다. (경찰 조사 때 안 사실이지만) 내가 정신없는 틈을 나 고3 남자 녀석 둘이 담배를 사갔다. 이후 그 둘은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대판 싸웠다. 싸움을 말리기 위해 출동했던 경찰이 그들의 신분을 확인했고, 그들 주머니에 있던 담배도 발견했다. 그들에게 술을 팔았던 술집 주인과, 그들에게 담배를 팔았던 편의점 알바(와 점주)는, 이름도 무시무시한, '청보법' 위반자가 되었다.
“내가 봐도 고등학생처럼 안 생겼네.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 당시 경찰이 내게 담배를 권하며 한 말은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겉늙어 보였다 한들, 난 팔면 안 될 연령대의 사람에게 담배를 팔았다. 대학교 옆 편의점의 밤이 제아무리 바빴다 한들, 난 그들의 신분증을 확인했어야 했다. ‘이 놈의 새끼들. 불법으로 쳐마시는 술이면 얌전히 쳐마시고 집에 들어가 얌전히 쳐잘 것을, 왜 싸움질을 해가지고선...’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 마음은 내 도덕과 윤리의식을 상처내지 않으려는 회피기제일 뿐, 당시 내 행위에 내려진 법적 조치는 올바르고, 마땅했다.
술도 그러하고, 담배도 그러하고, 사회는 ‘중독’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 올바르고 마땅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강력한 중독을 야기하고, 청소년의 삶에 더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지만 사회가 그 어떤 법적 잣대도 들이대지 못하는 것이 있다. 전편에서 다뤘던 스마트폰과 SNS다.
최근 핫이슈로 떠오른 카카오톡 개편 문제를 살펴보자. 카톡은 15년 만에 대대적인 개편안을 내놓으며, 친구 목록 탭을 없애고 피드형 탭을 도입했다. 친구들이 프로필 용으로 올리던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서 그러는 것처럼, 계속 보게 하려는 의도다. 채팅 탭 옆으론 숏폼 영상 탭을 달아놨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당최 멈출 길이 없는 숏폼 영상을 카톡에서도 계속 보라는 것이다.
이번 개편은 카톡 본연의 기능, 즉 문자 주고받기의 편의성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친구 목록이 없어지면서 '카톡질'은 더 불편해졌다. 핵심 서비스의 이용자 경험(UX)을 희생하면서까지 카톡이 대대적 개편을 한 의도는 명백하다. 우리를 가급적, 최대한, 오랫동안, 카톡에 머물게 하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카톡 중독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회는 '중독'을 일으키는 것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 올바르고 마땅하다. 그렇지만, SNS 중독을 노골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카톡의 이번 개편안을 우리 사회의 그 어떠한 법률과 제도도 제재할 수 없다. 제재는커녕 이번 개편안에 정부가 말 한 마디라도 잘못 얹었다간,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고 혁신을 방해하는 난봉꾼으로 몰리고 말 것이다.
카톡 본연의 기능인 문자 주고받기를 우리가 '공짜'로 쓰고 있지 않느냐, 저들도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 되물을 지 모르겠다. (저들의 문자 주고받기 서비스는 '공짜'가 아니다. 우리는 '공짜'처럼 보이는 그 서비스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다. 이는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우선 '공짜' 주장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해 보자.)
가령, 누군가가 막대한 자금을 투자받아 술이나 담배를 무료로 뿌린다고 해보자. (실제 카톡이 '공짜'(처럼 보이는) 서비스를 만들어 우리에게 뿌리는 데 들어간 개발 비용과 마케팅 비용, 유지 비용, 인력 비용 등은 벤처 큰손들의 막대한 투자금에서 나왔다.) 우리가 술과 담배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쯤, "술과 담배를 공짜로 제공받지 않았는가. 나도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며 술과 담배에 온갖 부가기능을 붙여 수익을 챙긴다면, 우리는 그 행태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술과 담배를 공짜로 얻은 대가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할텐가.
겉늙은 청소년에게 담배 한 갑을 파는 일도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SNS와 스마트폰이 미치는 영향력은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며, 청소년에게 미치는 유해성은 더 치명적이고, 중독성은 훨씬 막강하다. 사정이 이러한데, 우리는 어쩌다가 이들에 속수무책인 신세가 돼버린 것일까.
우리의 스마트폰 중독을, SNS 중독을, 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든 사람들은 몰랐을까. 그래서, 우리는 담배, 술과는 달리 스마트폰과 SNS를 어찌하지 못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의 거대한 디지털 세상을 일군 사람들은 중독의 가능성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는 것을 넘어 오히려 중독을 조장하고 강화했다. 다음 편에선 이 얘기를 해볼까 한다.
카톡의 이번 개편안은 이용자들의 강력한 반발로 일부 후퇴할 것으로 보인다. 난 전편과 이번 글, 앞으로의 몇 편의 글을 통해 스마트폰과 SNS의 문제를 계속 짚어볼텐데, 왜 이런 글을 쓰느냐 묻는다면, 이번 개편안에 맞선 이용자들의 대응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닮아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 시리즈에서 디지털 문명을 비판하며 내가 말해주고 싶은 건 "SNS에, 스마트폰에, 첨단기술에 우리 인생의 주도권을 뺏기지 말아야 한다."이다. 이 이야기를 오롯이 마칠 때까지 당분간 디지털 이야기를 계속 해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