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사고를 '또' 쳤다. '또'라는 부사를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 쿠팡발(發) 사고가 이번 '개인정보 유출' 뿐 아니라 근래 몇 달만 살펴봐도 제법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달에만 제주와 동탄, 광주에서 쿠팡 노동자가 근무 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쿠팡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사람은 올해 (알려진 것만) 8명에 이른다. 지난 10월엔 노동자의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 외압 의혹이 터져 나왔다. 당시 사건을 수사하던 주임 검사가 상부로부터 "무혐의 처리 하라"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쿠팡은 '여러 의미'에서 기적과도 같은 기업이다. 2010년 창업 이후 2022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적자를 냈지만, 매출은 지난해 40조 원을 넘어서며 십여 년 새 40배 이상 폭증했다. 매년 40~60%씩 성장해 온 셈이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은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말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번 했고, 뉴욕증시에 회사를 상장한 날 쿠팡의 미션을 이렇게 공식화했다. "우리의 미션은 고객들이 쿠팡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Our mission is to make customers wonder, 'How did I ever live without Coupang?'") 김 의장과 쿠팡이 내세운 이 미션은 적어도 대한민국 땅에선 완수 직전에 와 있는 모양새다. 쿠팡 없는 세상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됐고,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쿠팡의 '기적'과도 같은 성장 그래프이다.
다만, 쿠팡은 다른 측면에서도 '기적' 같은 행보를 여럿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쿠팡의 전체 매출액에서 한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상 '100%'에 가깝다. 누구나 한국 기업으로 인식하지만, 이 법인의 실체적 소속은 미국에 귀속된다. 쿠팡의 한국 내 법인(쿠팡㈜,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등)은 쿠팡 Inc.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 쿠팡 Inc.를 김 의장은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김 의장 본인 역시 미국 국적을 가진,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
김 의장은 2020년을 끝으로 한국 쿠팡 법인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이후 2021년 5월엔 한국 쿠팡 법인의 이사회 의장과 등기이사직에서도 모두 물러났다. 하지만, 미국 법인 '쿠팡 Inc.'의 최고경영자(CEO) 및 이사회 의장직은 지금도 유지 중이다. 김 의장은 쿠팡 Inc.의 압도적 의결권(약 74.3%)을 쥐고 있으며, 이를 통해 쿠팡의 한국 법인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 이런 지배구조 덕분에 김 의장은 쿠팡 한국법인의 의사결정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면서도, 그 권한 행사에 상응하는 책임은 지지 않는다. '기적' 같은 일이다.
쿠팡의 이번 개인정보 유출 규모는 3,370만 명에 이른다. 사실상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정보가 털렸다고 봐야 한다. 사고는 지난 6월 처음 발생했는데, 쿠팡은 이를 인지한 뒤에도 한참이 지난 11월 말이 되어서야 해당 사실을 고객들에게 문자 통보했다.
대부분 해킹으로 벌어졌던 다른 개인정보 유출 사고들과 달리, 이번 쿠팡 사고는 전직 직원에 의해 발생했다. 인증 시스템 개발을 맡았던 직원이 퇴사하면서 서버 접근용 인증키를 탈취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한다. 구멍가게처럼 조그마한 회사를 운영하는 나조차 퇴사자가 생기면 사무실 비번을 바꾸고, 회사 관련 프로그램의 접근 권한을 차단한다. 하물며 연 매출액이 40조 원에 달하는 기업의 시스템이 퇴사자 한 명의 일탈에 의해 뚫렸다니, 이 또한 '기적' 같은 일이다.
이 정도 규모의 사고를 내고도, 회사의 실질적 경영권을 쥐고 있는 김 의장은 책임은커녕 사과의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 또한 '기적' 같은 일이다.
쿠팡의 '기적'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 창업 후 10년 넘게 적자를 냈던 기업이 (이들이 쓰는 전문용어로는) '계획된 적자' 구간을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쿠팡의 기적 같은 성장으로 우리가 얻은 것들과 잃은 것들, 그리고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과 보지 않으려 애써 눈길을 돌리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
우리가 얻은 것들은 비교적 명쾌하다. 우선은 '속도'다.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다음 날 아침 내가 원했던 물건이 집 문 앞에 도착해 있다. 그다음은 '편리'다. 쿠팡을 통해 물건을 사는 과정은, 원하는 것을 고르는 일부터 값을 치르는 순간까지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흘러간다. 이들이 쓰는 전문용어로는 이를 'UX 혁신'이라고 부른다. 물류 배송 시스템 역시 기존의 유통업체가 갖고 있던 군더더기를 없앴음으로써 우리의 편리를 배가시켰다. 이들이 쓰는 전문용어로는 이를 '로켓배송' 혹은 '물류 혁신'이라고 부른다.
'속도'와 '편리'를 대가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우선은 개인정보가 있겠다. 쿠팡의 편리와 속도는 이번 사건과 별개가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볼 때 이것들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쿠팡의 속도와 편리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창업 후 10년 넘게 적자를 내면서도 쿠팡이 쓰러지기는커녕 매년 20~40%씩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 적자를 메우고도 남을 만큼의 막대한 투자금이 있었다. 수조 원에 달하는 투자자금으로 쿠팡은 적자를 보면서도 물류 네트워크를 계속 확장시켰다.
소비자들을 겨냥해선 엄청난 마케팅 자금을 쏟아부었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붓고 있다. 무료 쿠폰, 할인 쿠폰을 챙겨주고,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배송비를 받지 않는 식으로 말이다. 인터넷상에선 쿠팡 광고가 넘쳐난다. 각종 사이트의 배너 광고, 갖가지 앱에서 노출되는 광고 가운데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게 쿠팡 광고다.
2024년 기준 쿠팡의 매출액은 41조 원이 넘지만, 영업이익은 6,000억 원에 불과하다. 영업이익률이 1%대에 머무는 것이다. 월마트나 아마존 등 글로벌 유통기업들의 5~10%에 비한다면 마진율이 턱없이 낮다. 왜 낮을까. 더 빠른 배송을 위해 물류에 투자하고, 더 많은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마케팅비를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속도'와 '편리'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다 보니 '보안'엔 돈을 쓰지 못한 게 아닐까. 1년에 40조 원을 벌어들이면서도, 구멍가게 기업만도 못한 보안 시스템을 갖고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쿠팡의 속도와 편리, 그리고 허술한 보안 시스템을 별개로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이제, '속도'와 '편리'를 대가로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살펴볼 차례다. 쿠팡은 앞서 언급한 기이한 지배구조 탓에, 매출액의 사실상 100%를 한국에서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법망을 요리저리 빠져나간다. 김 의장은 미국 법인 지분만 갖고 있을 뿐, 국내 계열사 지분이 없어 공정거래법상 '총수'로 지정되지 않는다. 쿠팡이 저지른 문제 때문에 국회가 출석을 요구해도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쿠팡의 퇴직금 미지급 의혹 사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쿠팡은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꼼수로, 일용직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금을 고의로 주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지만, 검찰 윗선이 담당 검사의 수사를 막았다. 심지어 그 윗선이란 자는 사건 기록을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검찰 윗선은 부하 직원의 수사를 방해해 결국 쿠팡에 '무혐의'라는 선물을 안겨줬을까.
쿠팡이 속도와 편리 못지않게 돈을 쓰고 있는 곳은 바로 '로비(lobby)'다. 쿠팡은 권력기관을 상대로 본인들에게 유리하게끔 제도를 개편하고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전관예우가 가능한 인사들을 계속 영입해 왔다. 실제, 2020년 이후 5년간 쿠팡과 관련 계열사로 자리를 옮긴 4급 이상 고위 공직자는 무려 44명에 달한다. 여기엔 공정거래위원회,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대통령실, 검찰, 경찰 등이 포함된다. 언론계 출신 인사도 다수 영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팡의 퇴직금 미지급 의혹 사건은 수사 담당 검사가 윗선의 외압 의혹을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담당 검사는 해당 사건을 국회에 증언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철저한 상명하복 구조, 이른바 '검사 동일체의 원칙'을 내세우는 조직에선 보기 드문 내부 고발이었다.
이처럼 매우 예외적인 양심 선언 덕분에 세간에 알려진 사건조차 우리는 잘 모르고 지낸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건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한 검사의 이례적 양심선언으로 세상에 알려진 사건조차 우리가 잘 모르는 까닭이, 이처럼 예외적인 케이스가 아닌 훨씬 더 많은 사례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는 까닭이, 쿠팡의 막강한 로비력 때문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속도'와 '편리'를 대가로 우리가 보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이다. 우리의 속도와 편리를 위해 누군가가 과로를 한다. 남들 자는 시간에 일을 한다. 그러다가 죽기에 이른다. 앞서 말한대로 2025년 한 해에만 쿠팡 관련 업무를 하다가 죽은 사람이 '알려진 것만' 8명에 달한다. 이 중 다수가 야간 근무자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쿠팡의 한 해 평균 재해율은 6.7%에 이른다. 연간 상시 근로자 100명당 6.7명이 재해를 당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산업 전체의 평균 재해율이 0.63%에 불과하니, 이보다 10배 이상 높은 수치다. 다른 직종보다 위험도가 높다고 여겨지는 건설업(1.28%)과 비교해도 쿠팡의 재해율은 5배 가까이 높다.
청년들의 산업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기업도 쿠팡이다. 2021~2023년 사이 청년들이 일하다가 재해를 입은 건수는 2,200건에 육박한다고 한다. 하루에 두 명꼴로 청년들이 다치는 직장이 쿠팡인 셈이다. 오늘도 우리의 '속도'와 '편리'를 대가로 두 명의 청년이 다쳤을 것이고, 내일이면 두 명이 또 추가될 것이다.
하루에 청년 두 명이 다치는 회사. 대한민국 산업 전체에 비해 재해율이 10배나 높은 회사. 일을 하다가 쓰러져 죽는 사람이 1년에 (알려진 것만) 8명인 회사. 이 회사, 쿠팡은 속도와 편리를 위해 이 수치들을 외면한다. '속도'와 '편리'를 대가로 우리가 보지 않으려고 애써 눈길을 돌리는 것도 이 수치들이 아닐까.
쿠팡 사고와 관련해 내 속을 묘하게 뒤집는 보고서가 하나 나왔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이 내놓은 보고서인데,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객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을 담았다. "쿠팡은 한국 시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지위를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쿠팡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들겠다"는 이 의장의 호언이,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실현됐음을 JP모건이 공증해 줬다. 정말로 쿠팡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일까. 혼자서라도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해 볼 요량으로, 오늘 난 쿠팡 관련 앱을 모두 지웠다.
개인정보가 무참히 탈취되었지만, 실질적 대표로부터 사과 한마디도 못 듣는 무기력한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발버둥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