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는 매년 700만 명 이상이다. 간접흡연으로 인한 사망자 수도 매년 160만 명에 이른다. 담배는 (만약 금지시킬 수만 있다면) 예방 가능한, 가장 치명적인 질병 유발 인자다.
음주로 인한 사망자는 전 세계적으로 한 해에만 약 260만 명(2019년 기준)으로 추산된다. 전체 사망 인구의 5%가 술 때문에 죽는다. 음주 관련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30만 명에 이르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은 술을 마신 당사자가 아니라 타인이 희생된 경우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살인과 강도, 각종 폭력범죄, 성범죄 등 강력 범죄의 상당 부분은 음주를 동반한다. 술로 인해 가정 불화와 업무 장애를 겪는 사례는 그야말로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실익은 적고, 피해는 막대한 술과 담배를 국가와 사회가 막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해 보인다. 다만, 술을 못 막는 이유와 흡연을 못 막는 이유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우선은 술. 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 그리스 신화 속 디오니소스의 존재만 봐도 알 수 있듯 술의 기원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고학적 기록에 따르면, 농경 사회가 시작되기도 전인 약 1만 3천년 이전부터 인간은 술을 빚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술은 제조하기 쉽다. 그저, 과일이나 곡물을 가만히 놔두면 그것이 발효돼 술이 된다. 술은 '발명'된 게 아니라 '발견'된 것이다.
즉, 태초에 술이 있었다. 사회 공동체나 국가 공동체가 형성되기 한참 전에 술은 인간의 삶에 깊숙이 내재화됐다. 이후 탄생한 국가 공동체가 금지할래도 할 수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셈이다. 1920년대 미국이 실시했던 금주법 실험이 13년 만에 처절히 실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담배는 조금 다르다. 담배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종교 의식 때 사용한 것이 최초로 여겨진다.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유럽으로 담배를 갖고 오면서 전 세계에 점차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엔 임진왜란 때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비록 근대·현대적 의미의 국가가 탄생하기 전이지만, 담배가 인간 사회에 자리를 잡아 나갈 즈음엔, 이미 규율이나 제도를 만들고, 이를 강제할 수 있는 합법적 권력이 존재했다. 즉, 술과 달리 담배의 발견 혹은 발명은 사회 공동체, 국가 공동체의 탄생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국가 공동체는 왜 담배를 금지하지 못했을까. '유해성'의 발견이 뒤늦은 탓이 제일 커 보인다.
세종대왕과 함께 조선의 천재 왕으로 꼽히는 정조는 담배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겨 오히려 흡연을 장려했다. 가래, 천식, 복통, 치통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주술적 의미 외에 의학적 목적으로 담배를 사용했으며, 콜럼버스가 유럽에 들여올 때에도 상처·화상·종기 등을 치료하는 데 효능이 있다고 선전했다.
담배와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나오기 시작한 건 19세기 말이다. 미국 공중위생국장(Surgeon General)에 의해 흡연의 유해성이 공식화된 건 1964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고작 60년 전의 일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후에도 오랫동안 담배는 멋있는 남자, 고뇌하는 남자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이는 지금까지도 영화·드라마의 진부한 클리셰로 쓰이고, 요새는 자기 주장 강한 여자의 소품으로 더 자주 동원된다. 하긴,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음식점에서 담배 피우는 게 합법이었을 정도니, 담배의 유해성이 공공연해진 시기는 생각보다 짧다.
왜 담배의 유해성은 늦게 발견된 것일까. 그 유해성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술은 과해지면 그 폐해가 눈에 보인다. 폭력성이 표출되고, 기억이 끊긴다. 술김에 저지른(평소라면 저지르지 않았을) 행동으로 한 인간의 삶이 나락으로 빠지는 경우도 흔하다. 음주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가시적'이다.
담배는 어떠한가. 약간의 진정 작용이 있지만, 이는 오히려 긴장감을 푸는 데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 진정 작용은 니코틴이 일시적으로 뇌의 쾌락 중추를 자극해 나타나는 '착각'이지, 실제적 '효과'가 아니다.) 더욱이 마약류와 달리 환각 작용도 없다. 담배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비가시적'이다.
자, 이제 정리해 보자. (술과 달리) 담배는 금지를 강제할 수 있는 합법적 권력의 탄생 이후 발명되었지만, 금지되지 않았다. 그 이유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1. 해악성이 뒤늦게 발견되었다. 해악은커녕 유익한 것으로 장려되었다. 가장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기관지에 좋다고 여겨졌을 정도다.
2. 해악성이 발견된 후에도 이를 사회가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게 더뎠다. 해악성을 용인하기는커녕 오히려 쿨한 것, 멋진 것으로 여겨졌을 정도다.
3. 해악성이 '비가시적'인 것도 담배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술처럼 인간을 해롱해롱하게 만들었다면, 다른 마약류처럼 환각 작용을 일으켰다면, 담배는 지금처럼 길거리에서 쉽게 필 수 있는 기호품처럼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극단적인 미괄식 구성으로 쓰여졌다. 지금껏 '술과 담배가 왜 금지되지 못했을까'를 주저리주저리 써놨지만, 정작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아직 한 줄도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내가 말하고자 했던 얘기를 꺼낸다. 담배와 비슷한 이유로 금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근대국가를 넘어 현대국가, 아니 포스트모더니즘 국가 시스템을 갖춘 지금 시대에 존재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힌트를 주자면, 다음과 같이 위 요약문을 비틀어볼 수 있겠다.
1. 해악성이 늦게 발견되었다. 해악은커녕 유익한 것으로 장려되었다. 특히 가장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사회성'에 좋다고 여겨질 정도다.
2. 해악성이 발견된 후에도 이를 사회가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게 더뎠다. 아니, 지금도 공공연한 사실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해악성을 용인하기는커녕 오히려 쿨한 것, 멋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이 하는 것을 '혁신'이라는 단어로 추앙하기 바쁘니 말이다.
3. 해악성이 '비가시적'인 것도 이것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술처럼 인간을 해롱해롱하게 만들었다면, 다른 마약류처럼 환각 작용을 일으켰다면, 이것이 지금처럼 우리의 모든 시간을 점령하는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SNS다. 스마트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