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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짠짠이아빠 May 10. 2020

우울, 불안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당신의 성격은 어떤가요?"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긍정적이다."라고 답하던 때가 있었다.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 일은 있어도 우울, 불안, 초조 같은 감정은 모르고 살았다. 학생 신분이었던 나는 그랬다. 학교와 학업이라는 큰 틀이 정해져 있으니 특별한 책임이나 부담을 느낄 필요 없이 단순하게 주어진 과업을 하면 되었고 다들 그렇게 사는데 뭘. 그 와중에 학업 외에 재밌는 일들도 하고 추억도 쌓고 즐겁게 지냈다.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심과 고민이 없고 자신감과 긍정적인 기운이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대학을 졸업해서 석사학위까지 마치고 작은 회사에 들어가 사회인이 되었다. 처음엔 일 배우면서 적당히 주어진 일 하며 편히 지냈다. 하지만 사회인 순한맛은 딱 1년까지. 3명이었던 팀에서 팀장과 선임이 갑자기 퇴사를 해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것이다. 고작 2년 차가. 게다가 두 사람이 떠나고 남은 프로젝트들은 똥덩어리. 회사에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고 담당 임원은 별 도움이 안 되었다. "네가 알아서 잘해봐."라고 느껴졌다.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부담감이 덮쳐왔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급여를 받는 사람으로서 회사에서 주어진 일은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혼자서 그 똥덩어리 프로젝트들을 붙잡고 매달렸다. 업무보조만 하던 2년 차가 뭘 얼마나 할 수 있겠나. 이슈가 터지고 일은 진척이 안 되고 삽질이 반복되었다. 맡은 일을 해결할 길이 안 보이는 것, 업무적으로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막막했다. 회사에는 내가 일을 해다 바칠 사람만 있었고 내 일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씨가 발아한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회사에 있는 게 힘들었다. 답 없는 일을 붙잡으며 야근하고 클라이언트와 씨름하는 데 지쳐갔다. 당시 추석 귀성 버스를 타기 직전까지 일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집으로 가면서 "이제 한 숨 돌려야지, 쉬고 나서 다시 시작하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집에서 연휴를 보내고 돌아오니 오히려 지옥이 생생한 느낌이었다. 연휴 전에 모호하게 느꼈던 괴로운 감정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잠을 못 잤다. 내일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웠다. 밥맛이 없어 식사를 거의 못 했다. 전화기가 울리면 가슴이 답답했다. 회사에서 머리가 멍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일 생각이 머리에서 맴도는데 괴로운 감정만 일어나고 뭔가를 할 기운은 찾기 힘들었다. 어느 날은 사무실에 있기가 너무 힘들어서 무작정 나와 병원 응급실에 갔다.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하고 간신히 집에 돌아오니 내일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못 이뤘다. 그 와중에 노트북을 켜고 꾸역꾸역 뭔가를 하다 말다 새벽까지 시간을 흘러 보냈다. 이 모든 게 처음이었다. 내 모습이 너무 생소하고 무서웠다. 내가 이렇게 나약하고 비관적인 사람이었나.


황량하고 막막하다


그나마 회사 밖의 삶이 일상을 지탱해주었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와 주변 지인들에게 의지했다. 하지만 회피는 상황을 해결해 주진 않더라. 잠깐 잊고 기운 차리나 싶다가도 회사로 돌아가면 리셋. 이런 시간이 3개월이 지나니 내 육체와 정신 모두 피폐해져 있었다. 나 스스로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퇴근길에 정신과를 찾아갔다.


병원을 가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 정신과를 어떻게 알아보고 갈 수 있을까. 그냥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갔다. 허름한 병원의 나이 지긋한 여의사분과 상담을 했다. 전형적인 우울과 불안 증세. 꽤 오래전이라 상담 내용이나 약 처방전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아주 특별한 뭔가를 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조금 심한 감기를 치료하는 듯한 기분. 이상하게도 그래서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막연히 괴롭고 생소했던 감정이 우울과 불안이구나. 감기처럼 누구에게나 오고 치료도 하고 사는구나. 이렇게 내 상황을 이해하고 스스로 이걸 해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지만 일의 상황은 그대로였고 내 상태도 극적으로 달라지진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뭐


생각의 출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그전까지는 막막한 일의 상황에 내 머릿속이 지배되는 느낌이었다. 일을 해내야 한다는 생각. 강박이었다. 생각을 달리 해보자. 회사도 임원도 별다른 대책이 없는 걸 2년 차가 해낼 수 있나? 그걸 해내야 하나? 일의 최종적인 책임은 회사가 지는 것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해보고 안 되면 어쩌겠는가? 사람을 맘대로 자를 수 있나? 잘리면 또 어떤가? 내가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지 않나?


저기 출구가 보인다


내가 막다른 길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니 부담감이 훨씬 덜해졌다. 뭔가 해보려고 계속 매달리지 말자. 여기까지 해서 던져보고 아니면 어쩔 수 없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매달린 시간 덕인지 혹은 단순한 우연인지 모르지만. 확실한 건, 회사가 괴롭다는 감정이 줄어들고 일할 여력이 생겨난다는 것. 먹고 자는 생활리듬도 점점 돌아오기 시작했다. 맡았던 일의 일부는 완수하고 일부는 인수인계했다. 새로운 일도 받아서 완수했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만 2년이 되는 시점에 이직을 했다. 대우와 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돌이켜보면 나는 책임감에 마음이 붙잡혀 있는 사람이다. 학생일 때는 책임질 것이 거의 없어서 매사에 긍정적이었을 뿐, 감당하기 벅찬 책임을 맡으면 부담을 느끼고 정도에 따라 우울과 불안도 느끼는 그런 사람. 첫 회사생활을 통해 나를 알게 되었다. 25년이 넘도록 몰랐던 나의 우울과 불안. 이 녀석들이 나에게 있고 앞으로도 종종 만나게 될 거란 걸. 우울과 불안은 한 번 극복했다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 겪은 시기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몇 번에 거쳐 우울과 불안을 다시 만났고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았다. 큰 고민거리가 터져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예전에 처음 느꼈던 답답하고 싸한 감각이 그대로 찾아오기도 하고 가끔은 새벽에 깨서 잠을 설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젠 심하게 괴로워하지 않는다. 아주 의연하고 쉽게 떨쳐버리지는 못하지만, "아 얘가 또 왔구나. 이렇게 저렇게 해서 천천히 보내봐야지." 한다. 조금 독한 감기 떨쳐버리는 정도로 대한다. 10년 전부터 시작한 우울, 불안과의 동거.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너무 날뛰진 말고 작작 하길.


실은 이 분에게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육아 이야기를 쓰는 브런치에 조금 느닷없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썼다. 나도작가다 공모전 주제인 "시작"으로 글감을 만드려니 육아의 시작은 이미 글로 풀어냈기에 조금 더 앞선 시점의 시작을 생각해봤다. 10년 전에 내 우울과 불안을 마주한 이야기가 내 삶을 대하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느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우울, 불안과 동거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거의 없다. 나도 아내 외에는 제대로 이야기한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예전부터 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다. 나는 첫 회사 생활하면서 우울, 불안을 경험했어. 병원 가서 상담도 받고 약도 타 먹었어. 그래도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회사도 다니고 훌륭한 아내와 결혼도 하고 우량아 아들도 낳아서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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