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에 중국 지사 총경리로 부임하고 연간 계약 연장 실패 결과를 받아 든 게 2016년 2월, 약 반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럼 그 시간 동안 나와 중국 지사는 무엇을 했을까?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다가 연간 계약 연장 실패를 맞이하게 되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중국 지사에 부임한 두 가지 목적 중 하나, 중국 지사 고무 사업의 안정화/효율화를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반년 남짓이면 무언가 하기엔 짧은 기간일 수도, 긴 기간일 수도 있다. 중국 지사의 초짜 총경리로서 어떤 일을 시도했는지 기록해 본다.
제조업에서 사업의 안정화/효율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제품의 경쟁력을 올리는 것이라 생각했고 이를 품질 향상, 원가 절감, 라인업 확대, 3가지 축으로 진행했다.
원자재 교체
가장 먼저 손댄 것은 원자재. 원가 절감을 위해 오랫동안 거래했던 A업체에서 B업체로 전량 교체를 추진했다. 소형과 중형 제품은 품질이 괜찮았는데 대형 롤에서 품질 문제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소/중형은 B, 대형은 A로 이원화를 검토했지만, 직원들과 분석해 보니 대형 제품 품질 문제가 원자재와의 연관성이 적다고 판단되어 원자재는 B로 일원화하기로 결정. 이를 통해 약 10~20% 원자재 원가 절감이 가능했다. 이 원자재 교체는 전임 총경리도 검토했던 사항이었지만 혹시나 원자재 교체 후 품질 문제가 발생하여 매출이 떨어질까 봐 과감히 진행하지 못했던 건이었다. 나는 권한은 있고 겁이 없는 초짜 총경리라 바로 실행한 거 아닌가 싶다. 이렇게 숙제 하나 해결. 여기에서 자신감도 얻고 새로운 B업체의 기술력도 좋다고 판단되어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우리 공장에서 원자재를 혼합하는 작업까지를 B업체에서 진행하고 중간재를 구매하는 방안. 시험 생산 후 품질에 문제가 없으면 전량 교체하기로 했다. 첫 제품 생산 결과 품질이 양호했다. 그렇게 한 단계씩 더 테스트를 진행하여 원자재를 전부 배합하여 코팅 직전 단계까지 가공 완료된 제품 개발까지 의뢰했다. 다행히 만족할 만한 원가로 제품이 나왔고 테스트 결과도 양호했다. 업그레이드를 성공한 기분.
생산 공정 개선
원자재를 교체하고 몇 달을 지켜봤지만 우리의 예상대로 품질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품질 문제의 원인은 원자재가 아니라 생산 공정. 근본적인 생산 공정의 개선이 필요했다. 현재 생산 공정의 가장 큰 문제는 제품 측면 코팅이었다. 전면은 기계로 코팅하지만 측면은 수작업으로 코팅해서 불량이 다수 발생했다. 윤경리가 전면과 측면을 전부 한 번에 코팅할 수 있는 기계 도입을 제안했다.
"C라는 업체에서 이런 방식을 쓴다고 들었어요. 한번 가서 보면 어떨까요?"
곧장 윤경리가 C업체를 방문해서 생산기술 벤치마킹을 타진했다. 서로 경쟁자인 동종업계에서 기술을 알려주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리는 기술을 배우는 대신 우리가 생산하지 못하는 제품을 C업체에 외주를 주기로 했다. C업체는 우리 고객사에 영업이 닿질 않았기에 가능했던 거래였다. 합의가 되고 나서 공장 견학 및 기술지도는 일사천리. 새로운 생산 공정을 배우고 우리 공장에서 시제품 테스트를 해보니 품질이 양호했다. 신공법을 전면 적용하기로 하고 설비를 개조했다. 생산 공정 벤치마킹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 다른 업체들은 부자재인 접착제를 우리와 다른 제품을 사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것은 생산 공정 수정 후에 테스트하여 품질 향상을 확인하여 전면 교체를 진행했다. 이 정보도 과거에 알고 있었지만 전임 총경리 시절에는 새로운 시도에 소극적이어서 진전이 없었다고. 나는 다 해보자고 했다. 재무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그랬는지, 무언가 개선을 위한 투자에 대한 제안은 근거만 있으면 다 승인했다. 당시에는 낭비인지 투자인지 구분할 눈은 없었고 뭐라도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특수 주문 대응
고객사에서 사각 작업대 고무 코팅 주문이 들어왔다. 납기가 촉박했는데 형상 때문에 전체 수작업이 필요했다. 가장 큰 문제는 가황기에 안 들어가는 구조라서 가황 없이 코팅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주재원으로 일했던 본사 직원이 가황 없이 코팅한 적이 있다고 해서 자문 요청. 특수 원자재를 알아보라는 조언을 토대로 가황 없이 산에 견디는 고무 원자재를 업체에 문의했는데, 개발은 가능하나 시일이 오래 걸려서 납기를 맞추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C업체에 외주를 줘서 진행했는데 수익성이 나쁘지 않았다. 제품 라인업을 확장하진 못했지만 직접 생산이 아니더라도 외주를 통해 영업 라인업을 확장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걸 배웠다. 아마 직접 생산하려고 했으면 적정 원가와 품질을 맞추지 못했을 거다. 외주와 직접 생산에 대한 결정은 제조업에서 계속되는 숙제가 아닐까 싶다.
품질 관리 체계화
유지보수 건 제품의 상태가 일정 기준을 만족하는 경우 코팅/가황 작업 없이 연마만 조금 해서 정상제품으로 출하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예전에는 일정한 기준 없이 가끔씩 그렇게 진행했었는데 이번에 기준을 문서화해서 체계화하기로.
출하 포장도 개선했다. 제품 측면부 도색, 운송 거치대 도입, 제품 끝단에 가이드링을 부착해서 탈피를 방지하는 작업을 추가했다. 지금까지는 동일한 원자재로 생산했지만, 고객사 용도별로 원자재를 달리해서 생산하고 라벨에 용처를 표기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이 모든 개선 작업들은 부임 첫 달부터 추진했다. 성실한 윤경리가 여러 개선 과제들을 쌓아놓고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덕분. 그래서 뭐 할지 헤매는 시간을 줄이고 계속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경쟁력을 갖추고 지속가능한 중국 지사를 만들기 위해. 하지만 숙제는 제품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래된 중소기업 내부에는 또 다른 많은 숙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