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너머
Arches National Park
Utah
“후후“
갓 끓인 라면을 한 김 식히듯, 한낮 태양의 뜨거움이 날아간 저녁 6시. 트레킹을 시작한 발걸음이 흙길 위에 사각거린다. 건조한 바람이 살랑 불어온다. 베이지색에서 붉은 모래색까지 다양한 빛깔의 바위 사이로 연초록 풀이 하늘거린다.
진파랑 하늘을 두 눈 가득 담는다. 하얀 구름은 팔레트 위 물감처럼 제멋대로 떠 있다. 한데 뭉치거나 얇게 흩어지고, 낮게 깔리거나 높이 솟는다. 램프에서 풀려난 지니 같은 내 영혼은 구름 따라 긴 숨을 토해낸다.
계단도, 난간 하나도 없다. 끝은 낭떠러지인데, 장대한 바위 위를 걷는 발걸음은 묘하게 안심된다. 단단한 암석이 품어 내는 바다 같은 광활함 속에서, 우리는 자연을 걷는다. 오고 가는 사람들과 간간히 마주친다. 한낮보다 덥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온몸에는 땀이 주르륵 흐른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가는 좁다란 길 끝에 마침내 폭죽 같은 돌풍이 우릴 휘감는다.
광장처럼 동그랗게 탁 트인 공간에서 약 16미터 높이의 델리케이트 아치(Delicate Arch)가 서 있다. 오랜 시간 거센 비와 바람이 거대한 사암 덩어리를 뚫고, 깎고, 다듬는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도 모레도 같을 수 없다. 매일 낡고 해져가는 그것은 나인가, 우리 인간인가.
점점 바람이 휘몰아치고 구름이 어둑하다. 이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에 젖은 흙냄새가 피어오르고, 아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바위에 기대어 쉬는 사람, 아이 얼굴의 땀을 닦아주는 사람, 초코바를 꺼내 먹는 사람, 구도를 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 기어가듯 아치로 다가가는 사람, 그리고 흘러가는 오늘을 안고 싶은 우리 가족 세 사람.
어릴 적 그림책 속 무지개에는 주인공의 꿈과 희망이 있었다. 나도 오묘한 빛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면, 발 끝에 닿는 폭신한 구름이 선물 같은 미래로 데려다주었다. 그 기대에 찬 행복은, 책장을 덮자마자 아스라이 흩어지는 신기루였다. 나에게 무지개는 책 속에만 존재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 날, 길을 걷는데 겹무지개가 솟아올랐다. 왼쪽으로 가도, 길을 꺾어 오른쪽으로 가도, 다시 직진을 해도, 커다란 두 줄기 무지개가 일곱 빛깔 선명하게 반짝거렸다. 바로 내 눈앞에서,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환희에 젖었다. 살면서 이렇게 기뻤던 적이 있었을까.
눈을 떴을 때, 나는 태몽임을 알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설명할 수 없는 충만함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막을 걷는 것 같은 나날 속에서 그 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을 때였다. 몸이 좋지 않아 감기려니 했지만 약이 듣질 않았다.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 나 자신을 몰아붙일수록 더욱 비참하게 나를 잃어갔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 채, 건강도 일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그것은 불행으로 변장하고 나타난 축복, 무지개로 다가온 우리 아이였다. 산부인과에서 심장소리를 처음 들은 날, 남편에게 안겨 펑펑 울었다. 아이는 나에게 삶의 의미를 묻고 있었다. 그렇게 무지개는 나의 모든 것이 되었다.
아치를 보고 돌아가는 길, 비 개인 하늘에 햇살이 비치며 두 줄기 무지개가 나타난다. 나는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아이와 무지개를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내가 이토록 황홀한 아치를 보기 위해 여기 국립공원에 왔던가. 내게 모든 의미가 된 딸과 함께, 그 의미를 전해준 겹무지개를 보기 위해 미국까지 왔던가. 이 모든 것이 오늘 여기에서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던가.
오직 이 순간을 위해 나는 태어났던 걸까.
감동의 바닷속에 잠겨 있는 나를 남편이 물 밖 현실로 끌어올린다. 기념품 가게에서 피할 수 없는 순간이다. 그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패치를 내민다. 나는 일부러 까다로운 표정을 짓는다. 흠, 이건 감성이 없네. 패치는 자고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듯한 느낌이지. 남편은 검지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리며 대꾸한다. 이건 손맛 감성 대신 기계맛이랄까. 정교한 그래픽 같잖아. 그리고 여길 봐봐, 하면서 그의 끝없는 분석이 이어진다. 나는 피식 웃고 만다. 패치 하나에 이렇게 진지할 일인가. 입을 삐죽 내밀고 마지못해 중얼거린다.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패치 전문가님.
결국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치를 수놓는다.
그는 패치로, 나는 기억으로.
남편이 자랑스럽게 내민 패치 안에는 아찔한 절벽 가장자리에 서 있는, 우리가 본 아치가 그대로 박혀 있다. 빨강, 주황, 노란빛, 마치 우리가 만난 무지개처럼. 자수실은 바늘 끝에서 그저 왔다 갔다 반복하며 텅 빈 천을 메워갔을 뿐인데, 왜일까. 비를 만난 햇살 같은 빛이 패치에서 번져 나오는 것은.
파란 하늘은 동그란 아치 속으로 얼굴을 삐죽 내민다. 형태도 없고 냄새도 없는 하늘은 아치를 닮고 싶었을까. 아치가 된 육중한 바위덩어리는 찬란한 무지개를 닮고 싶었을까. 비와 햇살이 잠깐 만나 생긴 무지개는 한결같은 하늘을 닮고 싶었을까.
하늘, 아치와 무지개, 그리고 순환의 질서. 서로를 닮아가며 끝없이 이어진다. 영혼이 육체에 깃들고 벗어나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하지 않은 것도 없다. 이 모순 속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패치 속 하늘은 해맑은 얼굴로 머물다가, 어느 순간 보석처럼 반짝인다. 해변에 부서지는 파도인 듯 일렁이다가, 이내 새벽빛 스며드는 산으로 멈춰 선다. 아치는 일곱 빛깔 무지개이자, 천사처럼 내게 온 딸아이다. 때로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고, 또 다른 시야를 열어주는 눈동자가 된다. 모든 가능성을 품은 패치가 내 손 위에 있다. 넓고 깊은 이야기가 그 속에 숨어 있다.
다음날 아침, 모래 위에 총총총 걸어간 누군가의 발자국에 웃음이 난다. 아이는 살며시 그 옆에 자신의 손바닥을 찍는다. 모래는 금세 바람에 날리고 사르르 흔적이 사라진다. 발자국을 남긴 동물들은 더 이상 이곳에 없고, 이 찰나도 순식간에 지나간다. 머릿속에는 많은 일들이 기억되고 삭제되는 것을 반복한다. 모래는 바위를 만들고 바위는 다시 모래가 된다. 빛으로 만들어진 무지개는 빛으로 사라진다.
그럼에도
우리의 순간은,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