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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즈 Jun 15. 2021

'사이에 끼인 유럽' 동유럽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는 시간

[큐레이터의 글쓰기 연습] 오승은作  <동유럽근현대사> 을 읽고

  유럽의 역사는 예술적, 종교적인 색채와 산업혁명의 발현지라는 이미지로 점철되어 비유럽 국가들에게는 선망과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이와 같은 이미지는 아마 유럽연합, 즉, 서유럽으로부터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우리가 세계사를 배울 때 유럽 중심주의적인 세계사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럽은 앞서 말한 서유럽이다. 서유럽이 있다면 동유럽도 있다는 것인데, 한국을 비롯한 비유럽 국가들에게 동유럽이란 어느 공간,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말하는 것일까? 정확한 개념조차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동유럽이라고 구분짓기보다 그냥 유럽 중 일부로 인식하는 경향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가 늘 말해주듯이,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동유럽이 세계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던 것이 아니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동유럽 국가들의 의지였을까 싶다.


  이번 서평의 텍스트인 [동유럽 근현대사]는 제국의 각축장이자 문명의 교차로였던 동유럽, 열강의 4파전과 민족투쟁의 현장이었던 동유럽, 모든 이념과 사상의 충돌지이자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끼어있던 동유럽 지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책 한권에 다 담기에도 부족한 사건과 분쟁의 연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낮은 영향력 때문이었을까. 동유럽이 세계사 속에서 자기 의지를 발현할 수 없게 끊임없이 간섭하던 열강들과 동유럽 내 소수 특권 계층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저자가 명명한 ’서유럽에 의해 만들어지는 주변부 동유럽‘을 이런 식으로 이해해보았다.

  동유럽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와 쌍둥이처럼 닮아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점을 민족주의와 동유럽의 관계성에서 더 느낄 수 있었다. 대표적인 다민족 국가의 결합체인 동유럽과 한민족 국가로 분류되는 한국에서의 어떤 공통점이 있었을까 의아할 수 있다.

  동유럽 국가의 사회주의-민족국가 건설과 붕괴의 모습에서 한국의 모습이 엿보였다. 동유럽 국가는 확고한 정체성을 갖은 각 종족의 특성을 모두 통합하며 민족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많은 문제점에 부딪혔다. 이 속에서 동유럽 공산당은 동유럽 국가들을 핵심민족과 비핵심민족으로 구분하며 평등해야하는 시민들 속에서 1등 시민과 2등 시민으로 나눠지는 공평하지 못한 양상을 보인다. 사회주의 국가는 사회의 동질화, 균일화를 제창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1989년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동유럽의 유고슬라비아와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라자체가 붕괴된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 동유럽에서 민족 구성이 제일 복잡한 유고슬라비아에서 제2민족으로 취급받던 크로아티아는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1민족으로 특권을 누리는 세르비아에게 느끼는 피해의식은 상당했다. 사회주의-민족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민족들을 통합시켜 새로운 민족성을 창조하자는 지도자들의 이상은 오히려 각 종족들 개개인의 민족주의 고취에 영향을 미쳤다. 더 통합될 수 없는 형태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결국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민족청소‘까지 자행된 유고슬라비아 해체 전쟁으로 이어져 수많은 희생 끝에 막을 내렸다.

  사회주의-민족국가 체재의 건립과 붕괴 과정 속 동유럽 국가들은 어떠한 위치였는지 살펴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동유럽이 사회주의 국가로 바뀌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서유럽의 자유를 위해 동유럽을 담보로 소련에게 내준 것이지 않았는가. 동유럽 공산당 지도자들은 사회주의와 같은 낯선 체제를 수용하면서도 동유럽이 역사 속에서 지켜온 민족성을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회주의-민족국가 체제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또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함에 따라(이마저도 동유럽의 의지는 아니었던) 사회주의-민족국가 건립과정의 부작용마저 껴안아야했다. 애초에 사회주의, 민족주의라는 두 개의 큰 이념의 축에 의해 국가 건설을 도모한 것이 어려웠고, 사회주의 위정자들과 한 민족주의 지도자들의 맹목성도 주요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열강들이 쳐놓은 베르사유 체제 속에서 승전국만 특권을 누린 민족자결주의의 테두리 내에서 동유럽 국가 스스로의 선택지가 없었던 점도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역사도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어떠한 선택지도 부여받지 못했던 근현대사였다. 그 와중에 한반도가 타의에 의해 사상적으로 나뉘며 나라가 두 개로 갈라졌고, 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는 민족주의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며 변질 되었다. 서대문형무소의 이념논란이 대표적이다. 서대문형무소는 독립투쟁의 현장이라는 민족성과 반독재, 반군부 투쟁이라는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대문형무소는 군부정권시기에도 나라의 민족성을 고취시키기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도 독립의 이미지가 더 강한 편이다. 이에 서대문형무소에 씌여진 민주주의 이념을 제거하라는 극우 민족주의 보수단체의 주장도 생겨났다.    https://news.joins.com/article/16666890

  이처럼 극우 민족주의 지도자 혹은 세력이 만들어내는 부작용들이 동유럽의 사회주의-민족국가 건립과정에서 만들어진 부작용과 유사상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민족청소’를 자행한 동유럽,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4.3 사건’ 피해 수감자들의 기록을 삭제하는 서대문 형무소. 결국 이 두 국가 모두 극우 민족주의, 포퓰리즘의 부작용으로 인해 스스로의 자아성찰, 뼈아픈 역사에 대한 반면교사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동유럽 근현대사]를 통해 알게 된 동유럽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외로움을 이해한다.

  사이에 끼인 유럽이라는 오명 속 아직까지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유럽연합의 최후이자 최신의 식민지인 형태에 공감한다. 한국의 역사와 지독히도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안에서 민족주의의 고취만이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는 유일한 방안으로서 사용된 것도 한국의 역사성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극우 민족주의의 부작용은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지 않은가. 2010년 이후 동유럽에서 극우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이 급속도로 강화되고 있다. 한국의 극우 민족주의 세력도 사회 구성원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민족주의가 강화되면 가장 중요한 ‘자아성찰’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와 닮은 동유럽이 그러한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현상에 매우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극우 민족주의 강화의 기저에도 분명 열강, 주변국의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1990년 이후 서유럽 발전과 자유를 위한 수단으로서만 사용된 ‘동유럽’과 일본의 식민지배 이후 소련과 미국의 냉전체제에 이용된 작은 국가 ‘한국’은 이 끝이 안보이는 간섭 속에 자유를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자민족 최우선주의를 선택하게 된 것일지 모른다. 우리도 주권을 갖고 있는 국가라는 점을 열강에 끊임없이 외치는 모습인 것이다. 이 텍스트를 통해 무엇보다 공감하게 된 것은 동유럽과 서유럽의 관계가 민주화가 되어야 동유럽도 민주화가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생각이다.

  한국도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가 민주화가 되지 않는 이상 한국이라는 나라의 민주화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주변국과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극우 민족주의라는 부작용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 점에 대해 매우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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