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친구라는 이름의 도박

by margins

“우리는 정말 아무 사이 아니야. 같이 목욕을 해도 무덤덤할 만큼 편한걸.”


이성 친구와의 관계를 정의하며 이토록 당당하게 결백을 과시하는 이들을 마주할 때면, 나는 그들이 가진 도덕적 강단보다 오히려 ‘관계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을 먼저 읽는다. 자신의 무감각함을 당당함으로 포장하는 그 태연함 속에는, 정작 그 관계를 지켜보는 연인이 겪어야 할 정서적 허기와 불안에 대한 지독한 방관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한가라는 오래된 논쟁에 대해 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성적인 긴장감 없이 지적인 교류나 정서적 연대를 나누는 관계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그 ‘우정’이라는 그릇이 언제든 다른 온도로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공간이라는 점이다. 우정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는 균형이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이성 친구 사이에는 억제된 성적 긴장감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인간의 본능은 상대가 보내는 우호적인 신호를 이성적인 가능성으로 오독하곤 한다고 분석한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말처럼 진정한 친밀함은 엄격한 경계 위에서만 성립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우정은 선을 허무는 무분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선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고 지켜낼 때 비로소 그 순수성을 보장받는다는 뜻이다.


결국 우리는 두 가지의 상충하는 진실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한다. 남녀는 친구가 될 수 있지만, 그 우정은 언제든 연애의 감정으로 타오를 수 있는 불씨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우린 절대 그럴 일 없어"라고 단언하는 것은, 마치 카지노에 들어서며 "나는 절대 돈을 잃지 않을 것이며 도박에 중독되지도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하는 초심자의 맹목과 닮아 있다. 자신의 의지가 굳건하다고 해서, 본능과 상황이 만들어내는 결과까지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오만에 가깝다.


중요한 건 이성 친구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 관계를 다루는 나의 태도다. 내가 느끼는 편안함이 연인에게는 날 선 불안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알아채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연애는 두 사람이 서로의 불확실성을 담보로 쌓아 올리는 신뢰의 기록이며, 그 신뢰는 거창한 서약이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배려와 행동의 누적으로 견고해진다.


마라토너를 멈춰 세우는 건 눈앞의 거대한 장애물이 아니라 신발 속에 들어간 작은 모래알이다. 연인의 불안을 외면한 채 이어가는 ‘경계 없는 친밀함’은 바로 그 모래알과 같다. "그냥 친구일 뿐"이라는 말이 진심일 수는 있겠으나, 그 말이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무시해도 좋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성숙한 관계는 나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용기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적절한 거리를 두는 책임감에서 완성된다. 우정이라는 명분으로 연인의 마음을 도박판에 올리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랑을 선택한 자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